메추리알 장조림을 맛있게 먹으려면?

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열여섯 번째 이야기

by 이현기

저는 아내의 음식 솜씨가 대한민국 주부 중 상위 5퍼센트 안에 자리한다고 믿습니다. 따로 요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결혼 전부터 장모님께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은 것도 아닌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끼니를 차리다 보니 세월에 상응하는 노력이 자연스럽게 요리 내공을 끌어올려 준 듯합니다.


무엇보다 아내의 음식이 특별한 이유는 요리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들어도 껍질이 까져 알몸으로 판매되는 메추리알은 안전한 먹거리가 아니라며 굳이 팩에 담긴 메추리알을 사서 삶은 뒤에 일일이 껍질을 벗깁니다. 처음엔 아내의 행동이 상당히 비효율적이라 생각되었지만, 사랑은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기에, 사랑은 때론 불편함을 동반한 비효율에 있을 수도 있기에, 무엇보다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아내의 지극한 마음이 애틋했기에 아내가 정성스레 만들어 주는 메추리알 장조림을 맛있게 먹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여태 메추리알 껍질 까는 일을 한 번도 도와주지 않았군요. 전 좋은 남편이 되기엔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요리와 담을 쌓고 살았던 막내 처제도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요리란 것을 하게 되더군요. 어느 날은 막내 처제가 맛 좀 보라며 직접 만든 메추리알 장조림을 가져왔습니다. 반찬통에 담긴 메추리알 장조림은 가히 혁명에 가까웠습니다. 소고기와 꽈리고추, 마늘이 듬뿍 들어간 메추리알 장조림은 아내의 것과 다른 차원의 비주얼을 뽐냈습니다. 간장 양념이 밴 메추리알의 감칠맛, 소고기의 담백함, 꽈리고추의 적당한 매콤함, 마늘의 알싸함이 모두 들어간 장조림은 반찬 가게에서 파는 상품 같았습니다. 웬만해선 아내에게 반찬 투정을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도 처제의 메추리알 장조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보, 메추리알 장조림만큼은 처제 것이 더 맛있네.”

“그래? 동생한테 꼭 말해줘야겠다. 형부가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진정한 고수는 하수의 잡기술을 시기하지 않는 법입니다. 아내는 처제의 음식 솜씨를 질투하기는커녕 우리 막내가 이제 다 커서 음식도 만들 줄 안다며 대견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처제의 메추리알 장조림이 맛있다고 해서 아내의 메추리알 장조림의 맛이 떨어진 건 아닙니다. 아내가 차리는 음식은 마쉐린의 5대 평가 기준에 의거하여 별을 주는 성격이 아니라 제 삶을 풍족하게 채우는 단면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음식의 간이 싱거워도, 혹은 짤지라도 아내의 음식이 늘 맛있었던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식재료 위주로, 늘 건강을 생각하는 식단 위주로 식탁에 내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과 정성을 뿌린 아내의 음식에 뭔가 기준을 두고 기대치를 설정해 놓는다는 것은 그 음식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제 혀 자체도 고급이 아닌데 어떻게 음식에 대한 기준치를 높일 수 있겠습니까. 기대감과 기준치를 버리니 아내의 음식은 늘 맛있었습니다.


메추라기는 낮게 비행하고 오래도록 날아오르지 못해서 비교적 쉽게 잡히는 조류라고 합니다.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서로의 사랑을 쉽게 붙들 수 있도록 낮게 비행하기.

메추라기의 비행처럼 사랑의 눈높이를 낮추기.

기꺼이 사랑의 그물망에 걸려서 포획당해 주기.


사랑은 거창함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막내 처제의 메추리알 장조림보다 심심한 아내표 메추리알 장조림도 제가 받는 사랑의 일부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가족을 위해 부단한 밥상을 차려주는 일도 아내가 표현하는 사랑의 방법입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채우는 일이 아닌, 사소한 충족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일은 어쩌면 사랑의 눈높이를 낮추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조금만 사랑의 눈높이를 낮춘다면, 우리의 삶이 온갖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