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열세 번째 이야기
여러분은 스마트폰 자동 완성 기능을 즐겨 사용하시나요? 아내는 모르는 비밀이지만 저는 이 기능을 은밀히 잘 사용하는 편입니다. 저희 부부의 아침 루틴 중 하나는 사랑의 메시지를 교환하는 일입니다. 제가 아침에 집을 나서면 얼마 안 있어 스마트폰이 가벼운 몸서리를 칩니다. 여지없이 아내의 메시지가 온 것이죠.
‘여보 사랑하고 축복해요.’
그러면 저도 의례 답장을 보냅니다.
‘나도 사랑하고 축복해.’
이러한 형식의 메시지를 주고받던 초창기에는 성심성의껏 일일이 글자를 입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를 입력할 때 자동 완성 기능이 활성화된다는 유레카적 사실을 발견한 이후론 방아쇠수지 질환(손가락을 많이 사용하여 손가락 건초에 염증이 생기는 병) 예방 차원에서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렇듯 자동 완성 기능은 터치 몇 번에 문장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가 뛰어납니다. ‘나’만 입력하면 ‘나도’가 자동 완성 목록에 뜨고 그것을 터치하면 줄줄이 비엔나로 ‘사랑하고’가 맨 앞에 뜨고 또 그걸 터치하면 ‘축복해’가 뜹니다. 마지막으로 ‘축복해’만 터치하면 사랑이 듬뿍 담긴 문장 하나가 완성되는 셈이죠. 자동 완성 기능이 없었더라면 띄어쓰기 포함 서른아홉 번 정도 터치를 해야 하지만, 자동 완성 기능을 활용하니 터치 여섯 번이면 끝납니다. 만세.
스마트폰의 자동 완성 기능은 학습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특정 단어를 자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동 완성 목록에 뜬 단어를 직접 선택(터치)하는 것이 가장 학습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자주 사용하고 터치한다. 왠지 정감 있지 않나요? 이를 사랑에 대입하면 그만큼 사랑의 언어를 자주 쓰고 애정의 스킨십을 수시로 하면 자동 완성 목록에 ‘사랑’이라는 의미를 띄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내만의 고유한 체질인지, 혹은 여성분들의 전반적인 성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아내는 제 사랑을 자꾸 말과 행동을 통해 확인하려고 합니다.
“오빠, 나 사랑해?”
“응.”
“그럼 말로 표현해 줘.”
“에이, 우리가 같이 산 세월이 몇 년인데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난 말로 해야 알아.”
“(속삭이듯) 사랑해.”
“뭐라고? 방금 모기가 지나간 거야?”
“사랑한다고.”
“그래, 그렇게 자주 표현해 줘.”
사랑을 자동 완성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터치가 필요합니다. 아내는 몸이 차갑고 저는 몸이 뜨거운 편이라 가끔 아내가 얼음장같이 차가운 발바닥을 제 허벅지에 살포시 갖다 대면 저는 기겁을 하지만, 이내 냉파스를 붙인 셈 치고 마냥 참아야만 했습니다. 뭐, 아내가 따뜻하면 됐죠. 저흰 아직도 길을 걸을 때 아이들이 없으면 서로의 손을 맞잡고 걸어갑니다. 누가 부추긴 것도 아닌데 익숙한 관성처럼 서로가 서로의 손을 끌어당깁니다. 요즘 각방을 쓰는 부부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지만, 저흰 부부싸움을 해도 한 침대에서 자자는 약속을 했던지라 각방을 쓰지 않습니다. 제가 글에 몰입하는 시즌이면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챙겨 들고 옷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잠들곤 했지만, 합방에 대한 기본 원칙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내 곁에 없으니 아들 두 명이 원래 제 자리를 꿰차고 엄마 옆에서 잔다며 행복해 하더군요. 아내를 위한 합방, 아이들을 위한 각방. 무엇이 옳을까요?
우리의 삶과 사랑에도 사랑을 자주 표현하면 상대방의 마음은 그것을 학습합니다. 이 사람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자동 완성 목록에 ‘사랑’이라는 의미를 슬며시 띄웁니다. 거죽뿐인 표현만으로도 사랑의 자동 완성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겠지만, 영혼이 담긴 표현은 사랑의 자동 ‘완성 기능’을 넘어서 진짜 사랑을 ‘완성’시켜 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해’를 터치해 왔을까요?
그나저나 문득 드는 생각인데, 설마 아내도 저처럼 여지껏 자동 완성 기능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던 건 아닐까요? 가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답장을 보내올 때가 있어 칸트적인 의심이 듭니다. 이 점은 필히 확인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