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멈추고 마디를 만드는 대나무의 본심

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열두 번째 이야기

by 이현기

전라남도 담양에 죽녹원이라는 대나무숲이 있습니다. 광주 근교라 이동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가끔 가족들과 방문하곤 합니다. 거기에서 파는 대나무 아이스크림도 명물이지만, 저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대나무숲의 우주적 기운을 좋아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대나무의 위용과 마음이 씻겨 내려갈 듯한 청명함은 삶의 중력 지수를 떨어뜨려 주는 것만 같습니다. 대나무숲을 거닐 때면 소풍 가기 전날 밤과 같은 달뜸이 온갖 스트레스를 훌훌 씻어내는 듯한 흔연스러움이 찾아옵니다.


아내와 죽녹원에 방문할 때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코스 산책길을 한 번도 완주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입구에서 운수대통길을 지나 죽마고우길을 거쳐 철학자의 길에 들어서서 전망대를 오른 뒤 출구로 나가는 정석의 코스를 단 한 번도 밟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와 달리 아내는 걷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기필코 전망대에 올라가서 폐부 깊숙이 호연지기를 들이마시고 돌아오겠노라, 하는 바람은 언제나 죽마고우길이나 철학자의 길쯤에서 꺾이고 맙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억지로 끌고 갈 명분이 없었거니와 제 욕심만 고집하는 비정한 남편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전망대에서 쫀드기 과자를 10개씩 나눠주는 행사가 있다면 평소 쫀드기를 애정하는 아내의 마음이 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담양군 산림정원과에 건의 민원을 넣어볼까요?


‘담양군 죽녹원 관광객 유치를 위한 사업을 제안합니다. 제안 드리고자 하는 사업명은 '죽녹원 전망대에 쌓여 있는 쫀드기는 고독해요’입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죽녹원과 쫀드기를 사랑하는 절세미녀 정XX 드림.'


물론 제 이름이 아닌 아내의 이름 뒤에 숨는 기망 전술을 펼칠 예정입니다. 어떻게 답신이 올 지 정말 궁금하군요.


대나무는 말이 없지만 간혹 댓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낭랑한 소리는 마치 사람을 향해 조곤조곤 말을 건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솨아, 솨아.’


다양한 은유가 영글어 있는 대나무의 언어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지만 공식 대나무 언어 통역사와 동행하지 않아 선뜻 의미가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제 마음을 불러 세운 게 댓잎 소리였다면, 묘하게 마음이 머문 지점은 대나무 줄기에 정갈하게 둘린 마디였습니다. 대나무는 강풍에 흔들릴지언정 절대 꺾이지 않습니다. 그 비밀은 대나무의 마디에 숨어있습니다. 대나무는 잠시 줄기의 성장을 멈추고 자양분을 끌어모아 마디를 만들어 대나무 특유의 강도와 탄성을 엮어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디는 일종의 지지대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견고히 지지하는 마디는 무엇인가요?


제 생각에는 인생의 굴곡을 버티게 하는 지지대는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한 사랑은 고결하고 강인하지만, 영원히 지속되기는 어렵습니다. 지속가능성만 품고 있는 셈이죠. 왜냐하면 굳건했던 사랑에도 빨간불이 들어오는 순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사랑의 위험 신호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면 빨간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떠나가는 일은 심각한 사안입니다. 돈은 언제라도 채울 수 있지만 한 번 상실된 마음을 온전히 채우는 일은 힘들기 때문이죠. 마음은 마치 강둑 같아서 평소에는 감정의 물길을 잔잔히 다스리다가 무자비한 폭우가 와서 둑이 터지고 강물이 범람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무너지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치수 공사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을 향한 갑작스러운 짜증과 불만은 마음의 강둑을 무너뜨리기 위해 퍼붓는 폭우나 다름없습니다. 상대방의 언행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민감하고 예민하게만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마음 상태부터 돌아보는 게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 사람의 ‘무엇’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했다면 말이죠.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역학 작용을 늘 의심해야 합니다. 어쩌면 상대방에겐 잘못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변한 건 바로 자신의 마음일지도 모르니까요. 죽녹원 전망대에 못 갔다고 해서 서운한 불평을 투덜대기보단 아내가 힘들어하는 지점에서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결단이 아마도 제 사랑의 마디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아내는 연애 때도, 지금도 여전히 걷는 걸 버거워했던 사람이니까요. 예전의 저였으면 누구든 붙잡아서 기어이 전망대까지 끌고 갔을 테지만 아내를 만난 이후론 멈춤의 미학을 서서히 익히는 중입니다.


직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먼저 앞서 나가면 뒤따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뒤따르는 사람에겐 앞선 사람의 뒷모습만 보인다는 것.

그렇게 서서히 마음의 간극이 넓어지는 것.

그래서 잠시 멈추는 일은, 상대방의 보조에 속도를 맞추는 일은 마음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라는 것.

결국 나란히 같은 시야 속에 놓이는 것.

멈춤으로써 마음의 마디를 만드는 것.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는 어쩌면 비 오는 소리와도 닮았습니다. 제가 죽녹원에서 들었던 댓잎 소리는 제 마음이 홍수로 얼룩지기 전에, 사랑의 위험 신호가 켜지기 전에 마음부터 다스리라며 넌지시 알려줬던 것은 아닐까요?


“나의 마디는 불결한 감정의 범람을 막는 강둑과 같아. 네 마음의 연약한 줄기에도 마디 몇 개쯤 만들어 보는 건 어때? 마음의 키가 잠시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성장이 멈추는 건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