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열 번째 이야기
저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주 산책을 나갑니다. 체중 관리 겸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 산책만큼 좋은 걸 아직까지 찾지 못했거든요. 특히 저녁 시간 산책이 황홀한 이유는 어느새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저 먼 곳으로 퇴근하는 태양빛의 흔적이 만들어낸 낭만의 광선이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한 감성을 전해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하루 중 개와 늑대의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낮의 경계와 밤의 경계가 부딪치면서 벌어지는 결과가 뻔한 세력 다툼. 어둠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버티고 발악하는 빛과 이를 서서히 집어삼키는 어둠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극적 서사. 저는 이 엄숙한 장면이 만들어내는 오묘하고도 매혹적인 스케치 앞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합니다. 자연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지상 최고의 예술가입니다. 무엇보다 자연이 만든 작품을 보는 일엔 딱히 관람료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공짜를 좋아하는 걸까요? 아니면 넉넉한 자연이 공짜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 걸까요?
산책로에서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소 먹고 살찌고 한우 식당'(가상의 이름입니다)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왔지만 그 식당에서 풍겨 오는 기름지고 향긋한 냄새는 인간 행세를 하며 산책을 하고 있는 한 마리 육식 동물의 코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이런, 너무 먹고 싶은 걸? 마블링이 환상적인 살치살, 입안으로 넣자마자 녹아버리는 새우살, 고소함의 끝판왕 차돌박이... 그런데 어쩌지? 결정적으로 한우 사 먹을 돈이 없잖아.'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한우 식당 근방에 다다르면 육식 동물의 시름은 더욱 깊어집니다.
'정말 돈 걱정 없이 배 터지게 구워 먹고 싶다. 첫 점은 소금에만 찍어서, 다음 점은 고추냉이를 살짝 얹어서, 마지막은 싱싱한 상추 위에 미디엄 레어로 익힌 고기 한 점에 감칠맛 도는 파채와 구운 마늘, 그리고 쌈장을 얹어 입안이 가득 찰 정도로 큰 상추쌈을 만들어서 와구와구. 그런데 어쩌지? 돈도 없거니와 결정적으로 가성비가 좋지 않아. 한우 사 먹을 돈이면 도대체 삼겹살이 몇 인분이야?'
산책로를 두 바퀴 돌고 다시 한우 식당 근처에 도착하면 육식 동물은 그 한 바퀴룰 도는 사이에 원초적인 식욕은 조금 사그라들고 약간은 성숙해진 상태입니다.
'좋아. 하나의 목표가 생겼어. 일명 '돈 걱정 없는 이현기의 한우 플렉스.' 좋은 글을 써서 좋은 책이 나오면 좋은 돈이, 아니 경제적인 수익이 생기겠지. 첫 번째 인세를 받으면 무조건 가장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한우집에 가서 인분에 구애받지 않고 먹고 싶은 부위를 몽땅 시켜 먹을 테다. '소 먹고 살찌고 한우 식당',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5,000~7,000보쯤 걸어서 하루 목표치인 10,000보를 채우면 한우 삭당을 등지고 집으로 향합니다. 만보기 어플에서 오늘 걸음의 대가로 쥐꼬리에 붙은 털만한 현금성 포인트를 줬지만, 한우를 사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뭐 일 년을 꼬박 모으면 1인분의 소고기값 정도야 모이겠지만, 애당초 만보기 어플로 차곡차곡 모아 온 포인트는 책을 사는 '드림 머니'로 사용하기로 다짐했던지라 고작 먹고 싸는 일에 낭비할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합니다. 엎드려 있던 노트북 화면을 90도로 세우고 창작 활동에 몰입합니다. 마침 산책을 하면서 중요한 영감 하나가 떠올랐기에 그 감동이 사그라들기 전에 얼른 글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찾아옵니다. 얼추 초안을 다 작성하면 시간은 벌써 10시를 훌쩍 넘어가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뽀뽀 공격을 한바탕 퍼붓고 다시 글 쓰던 방으로 돌아와 마저 글을 가다듬습니다. 퇴고를 거칠수록 군더더기는 지워지지만, 사유의 체형은 뚱뚱해지는 글의 매력이 참 재밌습니다. 맘 같아선 밤새도록 붙들고 있고 싶지만, 내일 출근을 위해서라도 다시 노트북을 재우고 저도 이부자리에 눕습니다. 그리고 잠시 유튜브를 켜서 돋보기를 클릭하니 글자 입력 패드가 나타납니다. 경건한 심정을 손가락 끝에 결집시켜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합니다.
'한우 먹방'
충격적이고도 허탈한 저녁이었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 산책을 나갔는데 '소 먹고 살찌고 한우 식당'의 조명은 꺼져 있었고 현관 유리엔 임대 광고물이 호젓이 붙어 있었습니다.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다운 고백 한 번 못해보고 헤어진 심정이란 이런 것일까요? 오직 그 집에서 원 없이 한우를 먹고 말겠다는 저의 원대한 프로젝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가 공기 중에서 터져버린 비눗방울처럼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산책하는 발걸음은 평소보다 확연히 무거웠습니다.
저는 웬만한 거리는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저희 동네나 이웃 동네의 구석구석 사정에 약간은 눈이 밝은 편입니다. 최근 들어 유독 임대 광고판이 자주 눈에 밟힙니다.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정말 힘드시겠구나, 하는 생각은 얄팍하게도 월급쟁이의 안정적인 삶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상가의 공실이 발생하는 건 공급은 과잉이지만 실제적인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기 침체 및 상권의 위치 및 형성, 임대료 등등 공실이 발생하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겠지만 건물에 붙은 '임대'라는 두 글자를 볼 때마다 얼핏 참담한 심정이 들면서도 비겁한 안도감이 밀려오는 걸 보면 저도 어쩔 수 없는 소인배이거나 소시민인가 봅니다.
제 사랑의 공실률은 얼마쯤이나 될까요? 아내와 만났을 당시 꽉꽉 들어찼던 그 사랑의 공간에 혹시 임대 딱지가 붙은 곳은 없나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공실률 0%'를 목표로 세워 올린 사랑의 건물이 아직도 '0%'를 유지하고 있나 전수 조사를 나가 봅니다. 안타깝게도 인적이 사라진 공간 이곳저곳에 임대 광고물이 붙어 있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한때 가장 번창했으나 지금은 가장 적막하고 황량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한 공간에 우두커니 멈춰 서서 아련한 옛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조명에 달콤한 음식으로 가득했던 곳.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
다양한 이벤트로 손님들의 환심을 끌었던 곳.
벌건 사랑의 숯불이 화력 좋게 타올라 그 어떤 고기를 올려놓아도 금세 익던 곳.
투박하지만 세련된 인테리어로 내추럴하고도 모던한 분위기를 내풍겼던 곳.
그래서 지금 붙어 있는 임대 광고물이 너무 가슴 저리게 아픈 그곳.
그 가게는 예전에 '초심'이라는 간판을 내 걸었던 맛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