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여덟 번째 이야기
가장 최근에 갱신된 제 별명은 ‘코’와 ‘신데렐라’의 합성어인 ‘코데렐라’입니다. 예정된 시간까지 귀가해야 하는 코 큰 사람이라는 뜻이죠. 마음에 쏙 드는 별명이라고 하기엔 약간 애매모호하지만, 제 인생을 거쳐 간 숱한 동식물 관련 별명들보다는 그나마 사람 냄새나는 별명이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즘엔 고독이라는 친구와 맞팔을 하며 적막한 세계에 갇혀 살고 있지만, 과거의 저는 마음의 백지를 사람 색깔로 채웠습니다. 사람과 어울리는 데서 삶의 행복을 찾았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도 아내의 감정 곡선을 살피며 가끔 사적 모임을 다니곤 했습니다. 신데렐라처럼 인내심이 강한 아내는 남편의 자취가 사라진 저녁을 홀로 참고 견뎠습니다. 모임에 나갈 때마다 아내가 부탁한 건 딱 한 가지였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고 오는 건 존중하지만, 그래도 날이 바뀌기 전엔 집에 돌아와 달라. 늦어도 자정 전까지 기어 들어오라는 당부는 그다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아닌 듯했습니다.
모임의 왁자지껄한 격류 속에 휘말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한창 분위기가 달아올랐어도 과감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집에 혼자 있을 아내를 향한 미안함과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는 무책임한 남편으로 각인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동료들은 자리에서 빠져나오려는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속 좁은 범인들의 말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저는 그들의 만류보다 아내의 당부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자정이라는 시간은 날과 날의 경계선이기도 하지만, 부부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는 갈림목이기도 했으니까요. 아내와 저 사이에 긴밀하게 걸려 있는 새끼손가락이 풀리는 건 곧 신뢰의 빗장이 풀린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지켜오던 루틴을 무너뜨린 건 고작 허술한 의지였습니다. 모임에 나갔다가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부리나케 귀가했지만,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선 날이었습니다. 아내에게선 기다리다가 먼저 잔다는 문자메시지가 와있었습니다. 아내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는 죄책감과 나란히 손잡고 현관문 앞에 섰습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도둑놈처럼 슬며시 문을 열었으나 어느 지점부터인가 더 이상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열린 문 사이로 삐져 나온 현관 걸쇠는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며 절 비웃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 지금 쫓겨난 건가?’
입술이 바짝 마르고 애가 탔습니다. 아내는 그날만큼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왕자님이 온 줄도 모른 채 잠의 저주에 빠진 백설공주였습니다. 다급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안방에선 희미한 벨 소리만 들려올 뿐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조금 열린 현관문 틈으로 애처로운 목소리를 날려 보냈습니다. 여보, 나 왔어. 제발 문 좀 열어 줘. 옆집에서 쫓아 오는 일이 없도록 나지막하면서도 간절한 목소리로 연신 아내를 부르며 전화 거는 일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백설공주는 지독한 저주에 걸려 있었습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아내에게선 희망을 건져 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문을 세게 잡아당기면 현관문 걸쇠가 빠지지 않을까, 하는 오기가 솟았습니다. 그래서 슬쩍 힘을 주고 문을 잡아당겨 봤더니 뭔가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느낌보다 막연한 가능성이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 이거 잘하면 되겠는데?
잡아당겼습니다.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발악하다시피 잡아당겼습니다.
얼어 죽기 싫어서 잡아당겼습니다.
그리고 뚝, 소리와 함께 현관문 걸쇠는 문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라서 현관문 걸쇠가 많이 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왜 자기를 안 깨우고 기어이 현관문 걸쇠를 망가뜨렸느냐며 거센 잡도리를 몰아쳤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아내와의 약속을 깨서 이 사달을 만든 장본인은 저였으니까요. 이 사건 이후로, 약속 시간을 어긴 죄에 현관문 걸쇠를 망가뜨렸다는 죄목까지 더해져 저의 귀가 시간은 자정에서 10시로 앞당겨졌습니다.
제가 망가뜨린 건 비단 쇠붙이로 만들어진 현관문 걸쇠만이 아닐 것입니다. 현관문 걸쇠야 동네 철물점에서 사다가 다시 달면 됩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굳게 걸려 있던 신뢰의 걸쇠가 망가지는 일은 설령 마음의 철물점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온전히 수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한 번 떨어져 나간 걸쇠 자리는 비록 새것을 달았을지라도 눈에 거슬리는 얼룩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의 마음속엔 호기와 객기라는 형제가 상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요물들은 평소엔 잔뜩 웅크린 상태로 숨어있다가 적당한 기회가 왔다 싶으면 나타나서 남자의 이성과 판단력을 마비시킵니다. 아내와 한 약속을 이성이 겨우 붙잡고 있을지라도 ‘그동안 잘해 왔으니 한 번쯤은 눈감고 넘어가 줄 거야.’라는 안이함이 짙은 안개를 흩뿌려 분별력을 흩뜨려놓는 것이 호기와 객기의 간교한 술법인 듯합니다.
혼자 살 때는 몰랐지만 아내와 살다 보니 여자의 자물쇠보단 남자의 자물쇠가 더 허술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내의 울타리 안에는 그 중심에 가정과 가족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지만, 남편의 울타리 안에는 가정 외에 무언가가 더 들어와 있어 자물쇠의 강도를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산시켜 버립니다. 저같이 아내를 추앙하는 남편 역시 가끔 가정에 걸어 놓은 자물쇠의 강도가 약해져서 쉽게 망가져 버리곤 하니까요.
사소하든 거창하든 하나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일은 단단한 신뢰로 이어져 사랑을 더욱 결속시킵니다. 이 명료한 이치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전 번번이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일까요? 약속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하찮음이 쌓이면 곧 저의 정체성이나 본질로 굳어질까 봐 두렵습니다. 전 오늘도 괜찮음과 하찮음의 기로에 서서 호기와 객기 형제가 뿌려놓은 짙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또 길을 잃어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