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르트를 챙기는 뽀로로 아빠

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아홉 번째 이야기

by 이현기

학교 급식소에는 이삼일에 한 번꼴로 간식이 나옵니다. 빵류, 과자류, 음료류, 과일 등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입가심을 할 만한 것들이지요. 식사를 끝낸 동료들이 간식을 먹고 있는 사이 저는 그것을 가만히 주머니 속에 넣습니다. 퇴근하는 아빠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제 위장 안으로 삼킬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료들이 간식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침샘에서 분비되는 침을 몇 번만 꿀떡 삼키면 끝날 일입니다. 그렇게 제가 챙겨온 간식을 아이들이 받아먹는 모습을 볼 때면 흡사 새끼 새의 입속으로 먹이를 하나씩 넣어주는 어미 새의 책임감을 알 것도 같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간식 중 하나는 뽀로로 캐릭터가 그려진 요구르트였습니다.


자녀가 하나였을 때는 비교적 간식을 챙겨오는 일이 수월했지만, 둘째 아이 녀석이 어느 정도 커서 간식을 먹을 수 있는 나이에 다다랐을 즈음엔 사소한 딜레마가 찾아왔습니다. 간식은 하나인데 자녀는 둘. 솔로몬왕이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솔로몬왕에 비해 지혜가 없었던 학교에서 챙겨온 간식과 최대한 비슷한 것을 사서 기어이 두 개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를 간파한 아내는 앞으로 간식 같은 거 싸 들고 오지 말고 그냥 학교에서 먹어버리라며 채근했지만, 제 입보다 자식 입안에 넣어야 제 마음에 영양제를 투여한 것 같은 느낌은 쉽게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료들 옆에선 그리 흥건했던 침샘도 자녀들이 먹는 모습 앞에서는 금방 건조해지고 말았으니까요.


아무튼 첫째와 둘째 아들의 간식을 공수하는 작전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비슷한 간식을 사 오는 일도 제 용돈 회계를 고려하면 한계가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이 문제를 타개할 방안을 궁리했습니다. 하나였던 간식을 두 개로 만드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솔로몬왕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을 향해 그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각자 가져가라는 지혜를 발휘해서 친모를 찾아냈는데 성공했는데 말이지요. 전 그만한 지혜가 없으니 제 캐릭터에 가장 잘 맞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밖에요. 제가 잘하는 것 중 하나, 그것은 구차함이었습니다.


“오 선생, 왜 식판에 빵이 없어? 빵 싫어해?”

“저, 체중 관리 때문에 밀가루 끊어야 해서요.”

“그래? 그러며 오 선생이 안 먹는 빵 내가 챙겨도 될까?”

“그러셔요. 저는 어차피 안 먹으니까요.”


이런 걸 전문 용어로 윈윈이라고 하죠. 다만 문제가 있다면, 간식을 챙기지 않은 교사가 나타나는 빈도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제겐 더 구차한 플랜 B가 있었으니까요. 하루는 식사를 빨리 마치고 배급받은 간식을 계속 쓰다듬고만 있었습니다. 다소 억지스럽고 과장스럽게 말이지요. 이런 제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선배 교사가 제 기이한 행동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현기샘, 자네 왜 그걸 안 먹고 계속 만지작거리고만 있어?”

“먹고는 싶지만, 집에 있는 아들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먹을 수가 없네요.”

“캬! 훌륭한 아빠고만. 자, 내 것도 가져가서 애들 주게.”

“아니, 안 그러셔도 됩니다. 선생님 드십시오.”(예의상 한 말이니 제발 그 간식을 제게 던져 주세요!)

“그러지 말고 내 것도 챙겨 가.”


제 부성애에 감동한 선배 선생님은 본인의 간식을 기꺼이 내주셨습니다. 일명 ‘부성애 프로젝트’가 먹힌 셈이지요. 남들과 식사 자리에서 먼저 계산서를 낚아챘던 허세남이 고작 요구르트 하나를 더 얻으려고 눈물겨운 부성애 연기를 펼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들들은 이런 아빠의 처절한 분투기를 알기나 할까요?


1인 가족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해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제 곁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저와 아내의 장단점을 그대로 물려받은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그런 자녀를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돌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일푼에 내 집 하나 없었던 청춘을 지나 안정된 직장을 얻고 주택담보대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며 은행이 사준 아파트에서 제 영역을 차츰차츰 늘리는 재미, 빚에 허덕이면서도 월급 당일에는 4인 가족이 외식하는 즐거움,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비싼 재롱을 공짜로 구경하는 기쁨, 받아쓰기 백 점을 받아올 때 넌 역시 엄마보다 아빠를 닮았다는 데서 오는 희열, 무엇보다 이런 가정을 만들어준 아내에 대한 감사와 행복.


이렇듯 사랑하는 가족이 제 곁에 있는데 삶에 성실을 더하지 않고 다른 무엇을 더하겠습니까. 개구리는 일부 종을 제외하면 물에 알을 낳고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면 수컷 황제펭귄은 혹한의 추위 속에서 알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발 위에 올려놓고 배의 주름으로 덮습니다. 점프력은 개구리가 우위일지 몰라도 부성애만큼은 수컷 황제펭귄의 압도적 승리네요.


뽀로로 요구르트를 챙겨오는 뽀로로 아빠로 사는 일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 더 큰 비참함과 구차함을 요구하는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제가 구차해지는 일이 가족을 구원시키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든 구차해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가족들을 언 땅이나 강풍 속으로 내모는 대신 제 작은 발과 미흡한 주름이나마 그들을 가만히 덮어 줄 것입니다. 저는 비록 궁색한 모습으로 추위에 떨고 있을지 몰라도 그들을 감싸는 그 마음만은 따뜻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