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하기

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일곱 번째 이야기

by 이현기

아내와 연애할 당시 그녀의 핸드폰 주소록에 저장된 제 이름은 ‘칸트’였습니다. 이성과 합리의 틀 안에 갇힌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죠. 저는 낭만을 애정하고 감동을 주체 못하는 감정의 노예일 뿐인데 아내는 무슨 근거로 저를 이성적인 인간으로 분류했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저 데이트를 할 때 식당의 분위기 따위는 코 풀어 던져 버리고 가성비를 따져가며 맛집을 물색했을 뿐인데요. 미스터리입니다.


말수가 적은 제 기준으로 봤을 때 아내는 말이 많은 편에 속했습니다. 원거리 통화를 하거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아내가 99%, 저는 1% 정도의 말의 지분을 가졌으니까요. 저는 아내가 설명문의 한 문단쯤 되는 분량의 한 꼭지 말을 쏟아내는 걸 묵묵히 듣고 있다가 잠깐의 휴지기가 찾아왔을 때 '응, 아니, 그랬구나, 저런, 맙소사' 같이 짤막한 호응으로 반응했습니다. 막 연애를 시작할 때는 미처 상대에 대한 파악이 덜 된 상태라 아내의 이야기 뒤에 '그래서?, 그다음은?' 같이 적극적인 응대를 해오다가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내의 말에 함부로 물음표로 맞장구를 쳤다간 아내의 단편 소설이 대하 소설로 바뀐다는 사실을 말이죠. 아내의 말에 간단한 대꾸를 해 가며 그녀가 제풀에 지쳐 조음기관의 배터리가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최선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직장이나 사람 이야기를 잘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나쁜 이야기는 더더욱 입에 튼튼한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감정이란 건 전염성이 강한지라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사람에서 오는 분노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고스란히 아내에게 옮기는 게 싫었던 탓입니다. 불순물 같은 감정은 그냥 나 혼자 삭이고 말자라는 주의로 말을 아끼고 아꼈습니다. 아내가 자고로 부부는 그 어떤 삶이나 감정일지라도 서로 공유해야 한다며 따지고 들어오면 할말이 없긴 하지만요.


하지만 아내는 직장에서 상사가 이러했다, 동료가 저러했다, 아이의 학부모가 그러했다 등, 아내의 하루가 선명한 영상으로 재생될 만큼 모든 사건과 거기에서 비롯된 감정들을 뱉어냈습니다. 하루는 아내의 말을 듣다가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성싶어 꾸벅꾸벅 조는 연기를 해봤지만, 오히려 아내는 저의 장난을 재미있어하면서 더 신나게 재잘대더군요. 괜한 짓을 해서 역효과만 났습니다.


얼핏 보면 아내의 이야기를 지긋지긋해하는 무심한 남편 같아 보이지만, 사실 저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의 정화 작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소한 정보는 걸러서 듣고, 검증되지 않은 가십거리는 흘려보내되, 제가 개입해야 할 사건과 감정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뭐, 직업병인가 봅니다. 아내가 직장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내면 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런 식으로 응대하곤 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그 사람이 한 말에 악의는 없는 것 같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그 상황에선 여보가 그 일을 해주는 게 옳아.”

“제3자적인 시선으로 따져봤을 때... 내 생각엔 둘 다 잘못했어.”


아내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 경청의 표시로써 말한 것뿐인데 경청의 대가는 절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맹수의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돌아왔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아내의 공격 방향으로 뒤늦게 노를 틀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말은 아내의 정서적 갈증을 채우는 데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감정의 시행착오를 참 많이도 겪었습니다. 달달한 로맨스물에 발 연기인 저로선 아내의 가르침을 따르며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제게 바란 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공감으로 감싸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하소연 속에 숨겨진 함의는 지지와 옹호였습니다. 저로선 그런 게 정말 위로가 되냐며 반문하고 싶지만, 아내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아내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 말 함부로 하네? 그걸 그냥 내버려두었어?”

“아니, 사람들이 왜 당신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당신은 잘못한 거 없어. 내가 당장 거기 쳐들어갈까? 깽판 놓아줘?”


이런 식으로 과장스럽게 열불을 토하면 오히려 아내는 자기가 공격했던 대상을 동정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오빠가 생각한 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업무 상관성을 따져봤을 때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이긴 했어.”

“뭣 하러 직장까지 쳐들어 와. 나나 그 사람 둘 다 잘못이 있는데.”


기껏 같은 편이 되어줬는데 아내의 반응은 결국 제가 처음에 꺼냈다가 잡아먹힐 뻔한 말들이랑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란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아내가 풍기는 고유한 말의 향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제게 바라는 건 적확한 논리를 짚는 것이 아니라, 저의 따스한 동조를 토대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입에서 단조의 음표들이 쏟아져 나와 제 전전두엽에 박입니다.

음표 수집을 마친 전전두엽은 심장에게 보낼 곡 구상에 골몰합니다.

구상이 끝난 전전두엽은 정박자 장단의 처연한 악보를 심장에게 전송합니다.

심장은 그 악보의 리듬과 멜로디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심장은 굳이 엇박자와 밝은 음색을 섞어가며 불협화음을 만듭니다.

그 불협화음은 놀랍게도 아내에게 감동적인 오케스트라로 들립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고급 제철 해산물처럼 시가(市價)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서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론 제가 건넨 백 원짜리 위안이 몇십만 원짜리 VIP 티켓으로, 혹은 몇십만 원짜리 충고가 걸레 조각으로 둔갑하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