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계란밥 마스터하기

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여섯 번째 이야기

by 이현기


저희 집은 토요일 아침이면 요란한 알람 소리가 집안 곳곳을 들썩이게 합니다.

“오빠! 밥 차려 줘!!!”


전날 직장 회식의 여파로 침대 위에서 좀 더 미적거리고 싶었지만, 제가 일어나야지만 알람이 꺼지는 가혹한 현실은 체념의 기지개를 켜게 합니다. 알람은 제 역할을 다했는지 다시 숙면 모드로 전환합니다.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아내의 이마를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끓었지만, 근미래를 떠올려보니 비극적 결말이 올 게 자명한지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침대에서 내려옵니다. 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흐리멍덩한 눈을 부릅떠 가며 주방으로 가 냉장고의 문을 엽니다. 냉장고 상단, 중앙, 하단을 면밀히 훑었으나, 텅 빈 공간엔 냉매 가스만이 허기 진 유령처럼 나부낍니다. 그나마 에그 트레이에 계란 몇 알이 남아 있는 게 다행입니다.

‘쳇, 이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는 말이군.’


무기력한 심정으로 계란 다섯 알을 집어 가스레인지 앞에 섭니다. 삼발이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포도씨유를 두 바퀴 두른 후 가스불을 켭니다. 팬이 달아오르는 틈을 타서 간밤에 내려앉은 눈곱을 마저 뗍니다. 달구어진 프라이팬에서 기름이 튀는 소리가 왠지 저의 시름을 튀기는 소리만 같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토요일 아침마다 밥상을 창조해야 하는 슬픈 전설은 신혼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내는 일과 가사를 병행하면서 매일 정성스럽게 아침밥과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가 안쓰럽고 또 애틋하기도 하여 어느 날은 아침밥을 거르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내가 고생하는 일은 나의 무능이나 무심함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콧방귀를 뀌며 제 결재판을 내동댕이쳤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장인어른의 아침 식사를 꼬박 챙겨 온 장모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아내는, 남편이 배를 곯아가면서 바깥일을 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조식 예찬론자였습니다. 자고로 남자가 아침도 못 먹고 직장에 나가면 배가 고파서 맥을 못 쑨다고 하더군요. 저야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가는 일이 나쁠 건 없었습니다. 감명 깊었던 점은 아침을 안 먹고 출근하면 장부의 기개가 꺾인다는 아내의 지론이었습니다.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얻었을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차려 주는 족족 얻어먹기엔 염치가 없어 호기롭게 기획한 아이템이 '토요일 아침은 남편이 요리사'였습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아내가 이불속에서 서서히 김밥 재료가 되어가는 사이, 전 주방으로 출근하여 일일 아침 셰프가 되었습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친 다음, 유튜브를 켜서 그날 당기는 음식 레시피를 검색한 후 제법 흉내를 내며 그럴싸한 음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찌개 요리 하나와 밥상에 중심을 잡아주는 반찬 요리 하나를 뚝딱 만들고 나선 이불에 돌돌 말려 있는 아내를 몇 바퀴 굴려 꺼냈습니다. 두 공기를 먹지 않곤 못 배기는 참치고추장찌개와 스팸 구이를 맛본 아내의 눈에선 감탄과 의외성의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오빠, 진짜 맛있는데? 어떻게 만들었어?”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은 없어.”


아내가 맛있게 먹으니 뿌듯했고 멋있는 말로 대꾸해서 알량한 자부심이 들었으나, 한편으론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심장을 조였습니다. 아내를 위한 밥상이라는 기획 의도는 좋았으나, 자칫 이 과정이 자충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함은 결국 '목요일 저녁도 남편이 요리사', '남편은 요리왕', '집밥 이선생' 시리즈로 계속 확장되고 말았습니다. 제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켜면 온통 요리 영상만 뜨던 시절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이 이렇게나 무섭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하지만 밥상을 차리는 일 자체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제가 정성껏 만든 요리를 누군가 알차게 먹어주는 일은 제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눈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아들 두 명이 생겼습니다. 아들들은 엄마를 닮았는지 먹성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한 끼 한 끼 아이들 밥을 챙기는 일은 아내의 고역 중에 하나였고, 쟁여 놓은 간식거리는 금세 자취를 감췄습니다. 전 자극적이고 몸에 안 좋은 음식만 만들 줄 알았기 때문에 자녀가 생기고부턴 아내 혼자 힘으로 싱겁고 담백한, 하지만 몸에 좋은 식단을 내놨습니다. 운 좋게 요리 노동에선 벗어나긴 했지만, 그동안 길들었던 미(味)의 쾌락과는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매콤얼큰했던 된장찌개가 슴슴한 된장물로 바뀌었으니까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자극적인 맛을 포기한 대신 달콤한 휴식을 얻었으니까요.

아들들이 어느 정도 숟가락질을 하게 됐을 무렵, 아내는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마침내 봉인되어 있던 알람을 꺼내 놓고야 말았습니다.


“오빠! 애들 밥 차려 줘!!!”


오싹한 기시감에 소슬한 닭살이 돋습니다. 좋은 날도 다 갔다는 절망감이 엄습합니다. 전날 친목 모임의 여파로 침대 위에서 조금 더 뭉개고 싶었지만, 꺼지지 않는 알람의 공포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단념하고 몸을 일으킵니다. 알람은 제 역할을 다했는지 다시 코골이 모드로 전환합니다. 아내의 콧구멍에 휴지를 쑤셔 넣고 싶은 욕망이 일었지만, 뒷감당을 생각하니 결의는 쉬이 꺾입니다. 마른세수로 얼굴을 문질러 가며 주방으로 나아갑니다. 냉장고를 열어 요리할 만한 식재료를 훑습니다. 냉매 가스만 가득 차 있는 냉장고지만, 한켠의 계란 둥지가 유일한 위안거리가 됩니다.

‘칫, 물감도 안 주고 그림을 그리라는 말이군.’


속절없이 계란 다섯 알을 꺼내 가스레인지 앞으로 갑니다. 삼발이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얇게 썰어낸 대파 조각을 던져 넣습니다. 포도씨유를 두 바퀴 두른 후 가스불을 켜서 천천히 파기름을 만듭니다. 파기름이 적당히 끓은 프라이팬에 계란 다섯 알을 깨어 넣고 참치액젓과 후추를 약간 뿌려 계란 스크램블에 감칠맛을 더합니다. 전기밥솥을 열어 밥을 다섯 주걱 정도 퍼서 스크램블 위에 투척합니다. 진간장과 참기름, 굴 소스를 느낌껏 넣어가며 제일 약한 불에서 정성껏 비비면 저만의 간장 계란밥이 탄생합니다. 큰아들이 '한 그릇 더'를 외쳐대는 특제 간장 계란밥은 적잖은 수련을 통해 완성된 저희 가정의 토요일 조식 메뉴입니다.

그깟 간장 계란밥 하나로 생색을 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간장 계란밥 자체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전 그 너머를 봤습니다. 제가 서 있는 주방엔 평일 아침에 분주히 아침밥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이 포개졌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졸린 기운을 물리치며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칼질하는 아내의 모습이 주방 곳곳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해 주는 음식을 익숙함이나 관성처럼 받아들였던 제 지난 모습이 옹졸해 보였습니다. 매일 차려지는 아침 밥상 위엔 아내의 쓰디쓴 노고와 땀내 나는 헌신도 함께 차려져 있었던 것임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결코 완벽한 남편이 아닙니다. 삶의 중력을 감당하기 버거울 때는 아내에게 가사를 떠넘기며 그녀를 실망케 한 적도 잦았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의 중심만은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늘 의식하고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가사와 육아는 당연히 여자가 전담해야 하고 남자보단 여자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구태의연한 사고입니다. 부부 사이에 절대적으로 당연시되는 역할 같은 건 없습니다. 남편이 집안일하는 일을 ‘아내의 일을 거든다’, ‘아내를 돕는다’, 혹은 ‘아내에게 베푸는 선심’ 정도로 여기는 태도는, 사랑이라는 포장지 안에 개인의 이기심과 남성의 우월의식을 감춰 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며칠 전 토요일 아침에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간장 계란밥을 만들었습니다. 지친 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알람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사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