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을 창업하기 위한 팁

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열한 번째 이야기

by 이현기

아버지께서 리모컨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어린 시절에 저만의 소박한 판타지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제 맘대로 티브이 리모컨을 부리겠다고 말이죠. 퇴근 후에 소파 깊숙하게 몸을 묻고 좋아하는 야구 중계를 시청하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 잠드는 것이 제가 그리던 나른한 유토피아였습니다. 소파와 야구를 동경하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평일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거실 소파로 다이빙하여 티브이 리모컨을 그러쥡니다. 스포츠 채널을 몇 번 뒤적이니 제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한창입니다. 엎치락뒤치락 장군이야, 멍군이야, 를 주고받으며 흥미진진한 흐름으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하루 종일 쌓인 노곤함이 자꾸 눈꺼풀을 아래로 잡아당기려 합니다.


티브이에서 봤던 야구장은 어느새 꿈의 야구장으로 변신해 있습니다. 팀이 6:3으로 뒤지고 있는 9회말 2아웃 만루 3볼 2스트라이크 상황.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저는 저 멀리 외야 담장을 훌쩍 넘길 만큼 큼직한 타구로 짜릿한 역전승을 가져옵니다. 베이스를 한 바퀴 돌아 마지막 홈플레이트를 찍는 순간 어느새 모여든 동료들이 미친 듯이 제 등짝을 후려칩니다. 티브이에서 흔히 보던 격한 환영의 인사였지만, 이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픈 감각이 몰려와 저를 꿈에서 빼냅니다. 반쯤 뜬 눈에 아내의 실루엣이 나타납니다. 아내는 제 등짝을 한 대 더 갈기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오빠, 씻고 자.”


큰 아이가 태어나고 돌이 지났을 무렵 아내는 비상 가족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아내의 얼굴에는 사뭇 경건하면서도 숙연한 기운이 서려 있었습니다. 느낌이 안 좋습니다.


“오빠, 앉아 봐. 회의 좀 하게.”

“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티브이를 없애야겠어. 아이한테 교육적으로 안 좋을 것 같아.”


저만의 유토피아가 무너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릇 회의란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합하여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거나, 각자의 주장을 절충하는 의사 결정 방식이기에 저는 당연히 아내의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난 반대일세. 정녕 없애려거든 나를 짓밟고 지나가소.”

“왜? 티브이가 왜 필요한데?”


진지한 기색으로 티브이의 필요성을 따지는 아내의 말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드라마를 티브이로 꼬박 챙겨 보며 눈물, 콧물을 짜내거나 박장대소를 내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티브이에 몰입했던 당사자가 아내였기에 티브이가 왜 필요하냐는 그녀의 말은 코미디가 아니라 비통하고도 결연한 각오였던 것입니다. 존중해줄 건 존중해주자, 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국어 교사는 상대방의 말꼬투리를 잡는 이상한 취향이 있나 봅니다.


“알았어. 여보 의견 존중할게. 그 취지에 도저히 반박을 못 하겠군. 그런데 오늘 상황은 엄밀히 따지면 회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첩에 가까운 것 같아.”

“응? 무슨 말이야.”

“잘 들어 봐. 자고로 회의란 여러 의견을 서로 나누면서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는 일인데, 지금 상황은 묘하게 당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길 나에게 강요하는 것 같아서 이건 회의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것 같아.”


아내는 제 말을 곰곰이 곱씹더니 단순명료하게 대화를 종결시켜 버렸습니다.


“그거나 저거나.”

“…….”


아내는 국어사전 따위 라면 받침으로나 쓸 것 같았습니다. 아주 아주 민주적인 회의와 협상 끝에 결국 티브이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비록 소파에 널브러져 그 좋아하던 야구 중계를 못 보는 것은 솔직히 아쉬웠지만, 자녀를 위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판타지는 마치 잡을 수 없는 질소 풍선이 되어 저 높은 하늘을 향해 하염없이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티브이, 안녕. 리모컨, 잘 가.


그 후로 몇 년이 흘렀습니다. 기술은 더욱 발달하여 이젠 유튜브에서 자유롭게 드라마 숏츠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짬만 나면 드라마 숏츠를 보며 깔깔거리거나, 눈물샘을 터뜨렸습니다. 정말 아내가 대단한 것이 숏츠 특성상 사건의 얼개 및 등장인물의 감정선이 많이 생략되었음에도 아내는 마치 드라마 한 편을 통으로 시청한 듯 숏츠의 감정선에 완벽하게 젖어 들었습니다. 저럴 거면 차라리 티브이를 없애지나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숏츠만으로도 드라마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잘 따라가는 아내에겐 티브이가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힐 겸 넷플릭스로 시간이 꽤 지난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자주인공과 미묘한 기류를 타고 있는 남자주인공이 애매모호한 태도로 그녀와 헤어진 뒤 승용차를 몰아 집으로 가던 중 신호 대기에 걸린 장면이었습니다. 남자주인공의 표정엔 여자주인공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뭉쳐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때 아내가 제 곁으로 다가와 제가 보고 있던 드라마 화면을 쓱 훑어보더니.


“어허이, 이 남자 유턴하겠구만.”

“이 드라마 봤어?”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알아?”

“이 남자 표정이 말해주잖아. 유턴하겠다고.”


아내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이전 장면에서 어떠한 말과 행동을 주고받았는지 전혀 몰랐던 상태였습니다. 그냥 신호 대기에 걸려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주인공의 표정만 본 것이죠. 잠시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자주인공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핸들을 확 꺾으며 유턴을 한 후 액셀을 과격하게 밟았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내의 표정을 살피니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런 클리셰가 원데이, 투데이야?, 하는 미소가 훈장처럼 걸려 있었습니다. 진정한 숏츠 능력자인 아내가 섬뜩할 지경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온 순간에도 아내는 몇 번의 예견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아내의 예감은 대부분 들어맞았습니다.


“오빠, 요즘 만나고 다니는 그 사람 있잖아. 가까이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오빠, 투자 같은 거 안 하지? 절대 하면 안 돼.”


의지했던 사람한테 상처받고 아내 몰래 했던 투자가 쫄딱 망하기 전 분명 아내의 예감이라는 전조 현상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제가 사람에게 상처받을 거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이, 이 남자가 요즘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걸 예감한다는 듯이 제 불길한 미래를 저보다 먼저 가서 보고 왔던 것이었습니다.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아내의 예견을 하나씩 주워 담는다면 방앗간을 창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내는 갱년기라는 신호 대기 상태에서 유턴하여 사랑의 고속도로 위에서 힘껏 액셀을 밟고 있는, 제 마음의 속도와 방향마저도 예측하고 있을까요?


“어허이, 이 남자 유턴하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