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경영 배우가 연기한 정치인 장필우. 허름한 여관에서 초라하게 깡소주를 까며 본인의 고귀한입에서'고독'이란 단어가나올 줄을그는상상이나 했을까.
삶을 살다 보면 고독해지는 순간이 문득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찾아오는 걸 보면 고독은 바쁜 삶과는 별개의 차원임이 틀림없다. 주로 관계의 단절에서 고독이란 녀석이 찾아오는 것 같지만 그것도 확실한 변인은 아닌 듯하다.가까이누군가가 있지만 문득 외로워지고, 혼자라고 생각될 때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고독은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어려운 난치병과같다.
도대체 고독은 왜 찾아오는 것일까.존재라는 것은 어쩌면 원형적으로 고독을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고독은 평온했던 마음을 어지럽게 휘저어 놓는 못된 버릇이 있다.고독에 저항하기 위해 버둥버둥 몸부림을 쳐 봐도 도무지 쉽게 떨어져 나갈 생각을 안 한다.
몇 번을 되뇌어봤다.어떻게 하면 고독을 떨쳐낼 수 있을까.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고독을 떨쳐낼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없어 보였다.고독이우울증으로 전이, 확산되어서 내 삶을 망가뜨리기 전에 자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고독에 대항하거나고독을억압하는방법은 효과적이지 않다. 고독을승화시키는 쪽이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오히려 고독하기 때문에 해 볼 수 있는 것이 은근히 많다.
고독해졌을 때, 내 지난 삶을 차분히되돌아보자. 진짜 '자기'의 모습과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독해졌을 때, 평소 연락을 안 했던 사람에게 연락해 보자. 관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고독해졌을 때, 혼자 여행을 간다거나 산책해 보자.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개운해질 것이다.
고독해졌을 때, 용감하게 혼밥을 시도해 보자. 의외로 혼밥도 나쁘지 않다는유연함이 찾아올 것이다.
출처 : 픽사베이
고독의 시간은무의식 속에 잠재된, 심연의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타인이 다녀 가지 않은, 내 마음속 깊은 연못에 날 비춰보면 있는 그대로의내 모습과 삶이 보일 것이다.흉측한 몰골인지, 번듯한 모습인지 말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 '내부자들'에서 장필우가 뱉은 "X라 고독하구만."에 들어있는 '고독'이란 말은어찌 보면 고독의 본질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영화 말미 장필우가 겪는 비참한 상황은본인 스스로쌓아 온 악의 연대기가 초래한 응분의 대가이기 때문에 고독보단 허무함이라는 감정이 더 어울려보인다. 권력욕과 퇴폐적 향락으로 지속되었던 삶이 한낱 일장춘몽이었을 테니 말이다. 서사맥락에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선 "인생, 참 알 수 없구만." 쯤으로 각색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고독한 마음이 든다고 해서절망할 필요까진 없다.고독은 나름대로 즐기면 되는 것이다. 맛은 없지만 몸에 좋은 반찬처럼,고독은우리 삶에 더욱 깊고 다채롭고 풍미를 더해준다.고독은 배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칫 어설픈 독고다이가 되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고다이'가 아닌 '고독이다' 자체를 수용하는 것이다.
우린 수많은 감정과 가까워져야 해. 고독이란 친구도 그중에 하나야. 고독이 손을 슬쩍 내밀 때 그 손을 뿌리치진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