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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n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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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 고독하구만."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경영 배우가 연기한 정치인 장필우. 허름한 여관에서 초라하게 깡소주를 까며 본인의 고귀한 입에서 '고독'이란 단어가 나올 줄을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삶을 살다 보면 고독해지는 순간이 문득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찾아오는 걸 보면 고독은 바쁜 삶과는 별개의 차원임이 틀림없다. 주로 관계의 단절에서 고독이란 녀석이 찾아오는 것 같지만 그것도 확실한 변인은 아닌 듯하다. 가까이 누군가가 있지만 문득 외로워지고, 혼자라고 생각될 때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고독은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어려운 난치병과 같다.


 도대체 고독은 왜 찾아오는 것일까. 존재라는 것은 어쩌면 원형적으로 고독을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독은  평온했던 마음을 어지럽게 휘저어 놓는 못된 버릇이 있다. 고독에 저항하기 위해 버둥버둥 몸부림을 쳐 봐도 도무지 쉽게 떨어져 나갈 생각을 안 한다.

 

 몇 번을 되뇌어봤다. 어떻게 하면 고독을 떨쳐낼 수 있을까.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고독을 떨쳐낼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없어 보였다. 고독이 우울증으로 전이, 확산되어서 내 삶을 망가뜨리기 전에 자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고독에 대항하거나 고독을 억압하는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다. 고독을 승화시키는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오히려 고독하기 때문에 해 볼 수 있는 것이 은근히 많다. 


 고독해졌을 때, 지난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자. 진짜 '자기'의 모습과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독해졌을 때, 평소 연락을 안 했던 사람에게 연락해 보자. 관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고독해졌을 때, 혼자 여행을 간다거나 산책해 보자.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개운해질 것이다.

고독해졌을 때, 용감하게 혼밥을 시도해 보자. 의외로 혼밥도 나쁘지 않다는 유연함이 찾아올 것이다.

출처 : 픽사베이

 고독의 시간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심연의 내면을 바라있게 해 준. 타인이 다녀 가지 않은, 내 마음속 깊은 연못비춰보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삶이 보일 것이다. 흉측한 몰골인지, 번듯한 모습인지 말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 '내부자들'에서 장필우가 뱉은 "X라 고독하구만." 들어있는 '고독'이란 말은 어찌 보면 고독의 본질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영화 말미 장필우가 겪는 비참한 상황은 본인 스스로 쌓아 온 악의 연대기가 초래한 응분의 대가이기 때문에 고독보단 허무함이라는 감정이 더 어울려 보인다. 권력욕과 퇴폐적 향락으로 지속되었던 삶이 한낱 일장춘몽이었을 테니 말이다. 서사 맥락에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선 "인생, 참 알 수 없구만." 쯤으로 각색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고독한 마음이 든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까진 없다. 고독은 나름대로 즐기면 되는 것이다. 맛은 없지만 몸에 좋은 반찬처럼, 고독은 우리 삶에 더욱 깊고 다채롭고 풍미를 더해준다. 고독은 배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칫 어설픈 독고다이가 되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고다이'가 아닌 '고독이다' 자체를 수용하는 것이다.



 우린 수많은 감정과 가까워져야 해. 고독이란 친구도 그중에 하나야. 고독이 손을 슬쩍 내밀 때 그 손을 뿌리치진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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