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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n 06. 2024

직장생활이 꼭 괴로워야 하나요?

시간에 능동성을 가미해 보자.

 직장인의 하루   시간 지분이 가장 큰 대주주는 무엇일까?

 인정하기 싫지만 근무시간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난 평일에 최소 9시간에서 최대 14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있다. 동료들과 밤 10시까지 야근을 마친 후 퇴근길에 "좀 이따 봅시다."라는 소름 끼치는 인사까지 나눌 정도이니 실질적으로 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가정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직장인이 공감하듯 직장생활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생계를 위한 자발적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직장생활은 고된 노동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시간이어야만 할까. 고됨 속에서도 삶의 활력과 기쁨의 자양분을 얻을 수는 없는 걸까.


 최근에 3학년 부장교사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고3부장이라는 직책은 감히 소홀히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막중했고, 형용할 수 없는 부담감으로 내 마음에 두꺼운 쇠사슬을 채웠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눈코뜰 새 없이 하루는 바쁘게 돌아갔고 과한 업무는 내 삶과 시간과 자아를 잔인하게 잡아먹었다. 그렇게 부장으로서의 첫 1년을 억압적인 상실의 감정에 종속된 채 온갖 스트레스를 안고 스스로 병들어 갔다. 직장생활이 전혀 즐겁지 않았고 할 수만 있다면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출처 : 픽사베이


 이듬해에도 같은 직책이 주어졌다. 똑같은 상황과 감정을 바보같이 반복할 수 없었기에 작년의 생활을 되돌아봤다. 주어진 업무를 피할 수 없는 이상, 직장 동료들과 업무적으로만 엮인 딱딱한 관계성이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문제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교제를 해본다면 어떨까? 직장을 부정적 감정이 싹트는 텃밭이 아닌, 사소한 즐거움이 군데군데 숨어 있는 보물찾기 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제일 처음 한 일은 학년 동료 교사의 생일 때마다 깜짝 생일 파티 이벤트를 해 주는 것이었다. 사비를 들여 케이크를 사서 동료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생일 당사자 선생님의 깜짝 놀라는 모습과 감출 수 없는 옅은 미소, 작디작은 케이크를 한 포크씩 나누며 교제하는 장면은 케이크 구매 비용 이상의 뭉클한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나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을 발견했다.


 한 번은 심리테스트를 가장한 커피 이벤트를 한 적도 있었다. 동료들에게 모 커피숍의 메뉴를 보여주면서 가장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선택하면 선택한 메뉴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심리테스트라고 어설픈 사기를 쳤다. 동료들은 황당해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가 제안한 심리테스트에 기꺼이 속아주었다. 그렇게 모든 메뉴가 정해지자 아내와 비공식작전을 펼쳤다. 아내에게 메뉴를 전달했고 아내는 고맙게도 커피숍에 방문하여 주문한 음료를 몽땅 사서 직장으로 배달해 주었다. 난 포스트잇에 심리테스트 결과지를 손수 작성하여 각각의 음료에 붙이고 동료들 자리정성스레 올려놓았다.


'당신은 밀크티 같이 부드러운 사람'

'당신은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이 청량한 사람'

'당신은 핫초코 같이 따뜻한 사람'


 동료들은 이런 뻔한 이벤트에도 적잖이 감동한 눈치였다. 교제의 자리를 마련하니 교감의 깊이는 날로 깊어졌고 이젠 회식 자리까지 스스럼없이 함께 하는 사이로 관계성은 확장되었다. 딱딱하기만 했던 서로의 감정들은 이젠 진득함으로 끈적거렸다. 나의 사소한 노력과 용기로 인해 일 년의 시간은 작년에 비해 업무 협조가 훨씬 잘 이루어졌고 단합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직장생활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출처 : 픽사베이


 흘러가는 시간에 그저 수동적으로 내 삶을 맡겨버리기에는 우리의 인생 시계는 너무 짧다. 직장생활이 고되고 지루하다고 생각된다면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다가가 본다거나 뭐라도 시도해 보자. 처음은 힘들 수 있겠지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과감히 용기 내어 감정의 물꼬를 터 보자. 단순한 직장 동료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의 직장 동지를 하나둘씩 만들어가 보자. 껄끄러운 상사가 있다면 시원한 박카스 한 병 자리에 놔드리면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한마디 슬쩍 건네보자. 피로 회복은 물론이고 관계 회복이 될 수도 있다. 내게 주어진 전체의 시간 속에서 틈틈이 능동성을 가미해 보자. 삶은 더욱 조화롭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직장'보단 '직장in'으로서의 삶을 기대하며.


용기와 의지의 색종이를 잘만 오려 붙이면 시간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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