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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자 Aug 29. 2021

[그림책 여행지 4] 레스토랑 Sal

글과 그림 사이 감추어진 내용

글그림 소윤경

문학동네

2013


어느 날 ‘당신께 최상의 맛을 통해 최고의 시간을 제공해 드립니다.’라며
 레스토랑 Sal에서부터 초대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네 번째 그림책 여행지에서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매우 반갑습니다. 지난 여행에서 다른 생명과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신사아 알론소의 글 없는 그림책 <아쿠아리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여행도 비슷한 테마를 가진 여행을 떠나 볼 텐데요. 이번에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란 다른 생명들과 지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소윤경의 <레스토랑 Sal>은 생명에서 음식으로 그리고 소비로의 연결을 글과 그림이 병치하되, 글이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독자가 글과 그림 사이의 간극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독자 스스로 찾아내게 합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옵티클 패턴으로 꾸며진 레스토랑 속 음식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는 푸드 커버, 다소 괴기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집게와 후크 모양의 간판 걸개. 고급 레스토랑처럼 보이지만 음습하게 느껴지는 이 레스토랑의 비밀을 파헤치는 오늘의 여행을 시작해 봅니다. 


이번 책은 타이틀 페이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보라색 옷에 올린 머리를 한 여성이 파란 스카프를 맨 요리사가 나오는 잡지를 읽고 있습니다. 본 내용이 전개되면 붉은빛 하늘과 검은 아스팔트 길 위 강렬한 불길함이 느껴지는 그림 속, 글은 1인칭 서술이 아닌 3인칭 서술로 ‘환영합니다. 레스토랑 Sal입니다.’로 쓰여있습니다. 등장한 인물의 목소리로 느껴지지 않는 이 텍스트를 말하는 화자가 화면 밖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화자의 서술 방식은 다음 장에서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속표지에 등장했던 보라색 옷의 여성이 주인공의 엄마이고, 잡지의 소개글을 통해 이 레스토랑에 방문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어지러운 패턴이 벽과 바닥으로 펼쳐져 시각적으로 혼란한 이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기대가 되는 시간’을 화려하게 차려진 음식을 통해 대접받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이라고 생각되는 이 레스토랑의 고객은 예상외로 다양합니다. 그들의 옷차림과 생김새, 연령 등을 자세히 살펴보지요. 기대했던 것처럼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초록색 옷에 빨간 모자를 쓴 여성과 정장을 입은 대머리 남성이 왼쪽 페이지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위 쪽으로 상투를 튼 머리에 민소매의 갈색 상의, 끈으로 동여맨 종아리까지, 아예 다른 시대에서 온 것 같은 두 남성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렇듯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면 레스토랑 Sal의 방문객은 인종, 나이, 계층, 시대를 다양하게 담았습니다. 이만큼 식(食) 문화는 인간의 역사와 지역을 불문하고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행복한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를 탐욕적으로 즐기는 사람들. 화장실을 포함한 레스토랑의 모든 공간에서 보이는 과도한 패턴이 어딘가 석연치 않음 또한 느껴집니다. 


주인공이 화장실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환기구에 낀 고양이와 함께 들어간 레스토랑의 내부에서 우리는 호화롭고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이 레스토랑 Sal의 이면을 알게 됩니다. 숨겨진 내부는 레스토랑과 시각적 다름을 표현하기 위해 흑백 연필 드로잉에 포인트 색만 물감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커다란 통들과 파이프들이 가득한 이 곳은 어두운 공장 또는 화학실을 연상하게 합니다. 어둑한 공간을 지나 주인공은 좁은 철창 안에 갇힌 수많은 동물들의 모습을 마주하지요. ‘공개할 수 없는 맛의 비법’의 재료로서 '완벽하게 보관' 되고 있는 동물들은 ‘행복’과는 무관했음이 주인공은 물론 보는 독자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레스토랑 Sal에서 동물들은 생명이 아니라 철저히 음식의 재료로서 다루어 짐을 ‘완벽’이라 표현하는 무자비한 텍스트와 함께 내용은 클라이맥스로 향해 갑니다.

 

주인공과 함께 숨어 들어간 고양이는 재료로 쓰일 아기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요리사를 공격하고, 예기치 못한 습격 상황에서 침착하게 총을 쏘며 대응하는 요리사. 긴급한 순간에 주인공이 우리에 갇힌 다른 동물들을 모두 풀어주면서 ‘맛있는 요리 완벽한 과정’에 결함이 생깁니다. 추격 속 막다른 길에서 주인공이 잡힐 듯한 순간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진 주인공과 동물들. 책의 결말은 비이성적인 왈츠, 혼돈의 오케스트라가 아닌 행복한 구원일까요? 



                                                                               . . . . . . . . .



여성 주인공의 실패, 동물권 그다음


이 책은 보기 드물게 실패한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를 실패하게 만드는 자가 여성인 것으로 끝이 납니다. 슈퍼히어로같이 초인적 힘 또는 능력, 혹은 그에 준하는 조력자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를 거머쥐는 여타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과 다르게 <레스토랑 Sal>의 주인공은 학대받은 동물들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하지요. 그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 음식으로서 식탁에 올려졌고 한 점도 남지 않은 그릇을 통해 완벽하게 실패했으므로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우선 이 이야기의 끝에 기쁨을 느낀 사람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마지막에 등장한 맛있는 음식을 즐긴 파란색 물방울무늬 무늬의 블라우스를 입고 손에 반지를 낀 여성입니다. 그는 주인공을 생명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음식으로 바라봅니다. 그가 레스토랑 Sal의 비극을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음식을 깨끗이 비운 것을 보았을 때 글자에서 처럼 '즐거운 시간' 보냈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스토리를 읽어 오면서 식탁 위에 오른 것이 ‘잘 관리된 행복한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가 아닌 ‘작은 철창 안에 갇힌 동물과 그들을 구하려다 실패한 주인공’ 임을 압니다. 그들을 맛있게 즐긴 여성은 요리를 즐긴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비윤리적인 묵인하는 관성적 식습관으로 읽어져, 독자들에게 좌절감을 줍니다. 그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부족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이끌어냈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가 모든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일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 이야기의 다른 핵심인물을 파헤쳐보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에 기쁜 다른 한 명,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화자, 제목 페이지에 등장한 남성 셰프, 바로 레스토랑의 주인입니다. 그는 모든 부조리한 상황을 뒤로 숨기고 화려한 레스토랑과 음식들을 보여주며 고객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합니다. 내용 속 파란 스카프를 한 이 남성이 잠시 등장하지만 그를 화자로 지목해내는 것은 책을 더 찬찬히 들어보야지만 알 수 있지요. 실패한 주인공도 그에게는 자신의 조리 과정인 왈츠의 일부이고, 이를 묵과하는 여성 손님은 만족스럽기까지 합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부조리한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글 속에 숨어 마지막 단어까지 책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똑똑한 화자로 남습니다. 이는 그를 막기에는 부족한 어린 여성 주인공부터 그의 음식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무지한 성인 여성까지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의 실패와는 대조됩니다. 하지만 텍스트와 분리된 그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기에, 책 속에 표현된 메타포와 짜임으로 일궈낸 부조리한 동물권의 책임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소비자인 여성에게 전가가 된듯한 씁쓸함이 남습니다. 


작가는 제목 또한 Sal [살, Flesh]이라고 표현하며 레스토랑 Sal을 음식문화에서 비롯된 동물권의 유린을 꼬집는 장소로 보여줍니다. 완벽한 서술로 마무리되는 글에 반해 그 완벽함이 무너지는 그림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식(食)이 다른 동물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맛있는 음식 먹고자 하는 욕구를 추구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으면 좋았을 테지요. 이 책은 나약한 "여성" 주인공, 문제를 외면하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책의 출간 연도를 고려했을 때 작가가 특정 성별에 대해 부정적 역할을 부여했다고 생각하긴 어렵지만, 2016년부터 꾸준히 높아져 온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은 <레스토랑 Sal>을 다른 시각으로도 접근 가능하게 합니다. 이야기 전개 흐름과 관계없는 여성의 노출 장면과 여성성이 부각된 무지한 자의 묘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으로 말이죠. 특히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삭제되더라도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고양이를 만나는 장면으로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필요에 의해 넣은 이 장면의 구도는 매일 티브이를 틀 때마다 볼 정도로 사회에 만연하게 퍼진 불법 촬영 범죄를 연상케 합니다. 또한 자주 불필요하게 들어 올려지는 미성년자 주인공의 치마는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품위를 위해 입고 온 것이라고 넘기기엔 화면 속 불필요한 노출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결국 실패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주인공이 나약한 "여성"이기 때문인가로 연결될 가능성까지 남겨둡니다. 그리고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소비자인 성인 여성도 그 나약함의 연장선일 뿐이지요.


실제 사회에서도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여성에게 지구를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지우며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특정 물건에서 비건 소비, 착한 소비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여성의 소비로 이득을 보는, 그들을 타깃으로 한 판매자나 제작자에 대해서는 경제 사회에서 추구해야햐할 명석함 또는 당위성을 들며 그 실상을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사실 지구의 환경을 훼손시키는 주체는 여성의 소비와 다른 지점에 있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해양생물에게 가장 크게 위협을 가하는 것은 어업이며, 해양쓰레기로 버려지는 그물의 비율은 플라스틱 빨대(0.03%) 보다 훨씬 높다(46%)라는 것이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밝혀져 많은 이들에게 경악을 주었지요. 지구 위에는 남성 여성 모두가 살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체에 대한 보호의 책임과 결단이 여성성이 부각된 캐릭터들에게 대표되어 물어져야 했는지, 2021년에 살고 있는 이 책을 쓴 작가와 이 책을 동물권 이야기다라고만 생각하고 책장을 덮은 독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Sea conspirac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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