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인딩으로 보는거울속으로,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거울속으로
글그림 이수지
비룡소
2009
파도야 놀자
글그림 이수지
비룡소
2009
그림자놀이
글그림 이수지
비룡소
2010
안녕하세요! 새로운 그림책 여행지에서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지난 여행지 <하이드와 나>에 이어서 그림책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인 바인딩을 중심으로 여행지를 살펴볼 텐데요. 책등이라는 책 고유한 물성이 이야기 전개 방식으로 잘 활용된 이수지 작가의 세 작품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각각의 책 모두 나름의 재미를 가지고 있지만 세 책을 한데 놓고 보면, 같으면서도 다른 새로운 점들을 발견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세 책의 바인딩과 내용 서술 방식 그리고 왜 이 책들을 함께 보면 좋을 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세 책을 나란히 두었을 때 보이는 눈에 띄는 특징은 책의 판형은 동일하지만 책등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종이의 크기가 같으니 내용이 표현되는 면적은 동일하나,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는 방식에 따라 내용을 담는 법을 다르게 한 것이지요. 이는 독자들을 서로 다른 세 개의 세상을 경험하게 해, 세 책을 나란히 놓고 보지 않으면 종이의 크기가 같다는 것도 알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각각의 책의 바인딩이 어떻게 내용을 담아냈는지 살펴보지요.
1. 거울속으로
<거울속으로>는 종이의 긴 면이 바인딩된, 정사각형 펼친 페이지에 좌우로 넘겨보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의 발단 단계에서부터 주인공의 모습을 양 페이지에 대칭으로 둠으로써 책의 중심, 즉 책이 바인딩된 공간을 거울이라고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대칭성으로 인해 한쪽은 현실 세계 다른 한쪽은 가상 세계임을 유추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 거울 공간인지는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거울 속 자신과 즐겁게 놉니다. 작가는 이 대칭성을 데칼코마니 기법을 이용하여 한층 더 부각하였으며 수채화 물감으로 표현된 무늬는 차콜 드로잉의 주인공과 조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거울의 상은 바인딩 속으로 들어가 책이 빈 페이지가 되는 완전한 합일을 이루지요.
하지만 그 이후 주인공과 거울의 상 사이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즐겁게 놀이를 하던 주인공은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하지 않는 거울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움츠러들지요.
이대로 상상 친구의 상실이라고 마무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깊게 읽어보겠습니다. 거울이 깨진 것은 오른쪽 페이지이므로, 왼쪽이 현실 세계 그리고 오른쪽이 거울 속 세계입니다. 바인딩 부분이 현실세계와 상상세계의 경계라고 보았을 때, 주인공은 상상세계와 어울려 놀지만 그 둘이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이분화된 세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됩니다. 그리고 후반에 깨진 거울이 오른쪽 페이지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처음 주인공이 등장하였던 페이지가 오른쪽이었음으로, 시작점에서는 오른쪽이 현실세계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거울의 상과 뛰어놀며 바인딩 경계로 뛰어들었을 때 세계의 교차가 일어난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화내는 현실의 '나'가 왼쪽 페이지에 위치하게 된 것이지요. 현실의 나를 반영하지 않은 독자성을 띈 상상의 세계 속 모습은 주인공에 의해 파괴됩니다. 이는 갈등 해소가 아닌 좌절로 이어지지요.
책의 특성과 더불어 재미있는 기법으로 그려진 내용 이면에는 삶 속에서 마주하는 상상 혹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 속 갈등하고 좌절하는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2. 파도야 놀자
같은 종이의 크기라는 첫 번째 설명이 무색하도록 종이의 짧은 세로 부분이 제본된 <파도야 놀자>의 그림의 느낌은 <거울속으로>와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인딩한 책등 부분은 서로 넘나 들 수 없는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입니다. 파노라마식 긴 해변 배경으로 오른쪽과 왼쪽은 완벽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서로를 오고 갈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있는 오른쪽은 흑백의 육지, 왼쪽은 파란 파도가 몰아 치는 바다로 그림의 매체도 각각 차콜과 푸른 물감입니다.
<파도야 놀자>의 눈여겨볼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 외에도 내용을 전개하는데 도움을 주는 캐릭터가 갈매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갈매기는 주인공과는 직접적 연관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선두로 푸른 파다의 세계로 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주인공이 바다의 푸르름을 온몸에 느끼고 돌아온 후, 육지와 바다 사이에 더 이상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라고도 해석되는 육지와 바다의 관계성으로 보았을 때, 파도는 현실세계에서 부서지고 현실 세계에 아름다운 푸르름과 함께 여러 가지 바다의 선물을 남겨 줍니다. 푸른색이 되어버린 주인공의 옷과 하늘, 온갖 불가사리와 조개는 상상의 세계로부터 온 작은 선물들이죠. 바인딩이라는 뚜렷한 경계가 무너지고 나서는, 바인딩이 이미지를 분절시켜도 한 공간으로 인지한다는 인식의 변화 또한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대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안녕! 다음에 또 같이 놀자'입니다. 주인공이 돌아간 현실 세계까지 파도는 끝없이 넘실거리고 갈매기들은 저 멀리 날아갑니다. 상상의 세계로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듭니다.
3. 그림자놀이
이번에는 종이의 긴 면이 바인딩되어 있지만 아래서 위로 넘겨서 보는 방식으로 읽어 가는 <그림자놀이>입니다. <거울속으로>와 같은 화면 크기임에도 보는 방식이 옆이 아닌 아래위가 되어 그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이번에는 바인딩된 부분을 기준으로 윗부분은 현실 세계, 아랫부분을 그림자와 상상의 세계로, 두 세계를 구별하기 위해 표현방식이 다르게 하였습니다. 위는 연필과 차콜 드로잉에 부드러운 텍스처를 입혔고, 아랫부분은 스텐실 기법을 이용했습니다. 주인공의 상상력이 커져갈수록 그림자들은 상상의 공간은 채워지고 현실세계의 물체들은 줄어듭니다.
이번에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주인공이 처음 손 그림자로 만들어 낸 새입니다. 이 책에서 새는 주인공의 상상력의 산물이자 상상의 공간을 넘어 현실 속 주인공에게 날아오는 매개자입니다.
새와 함께 온 늑대 또한 무서운 존재라기보다 주인공과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친구입니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두 모든 화면이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뒤덮인 상상의 세계가 극대화된 시점에 '저녁 먹자'라는 목소리는 빠르게 주인공은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떠난 후에도 그의 상상력은 이어져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세 책에서 책등은 세계를 단절시키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물리적으로 다른 두 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문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분리된 세계로 둘지, 넘어가고 통합된 공간으로 만들지는 온전히 작가의 몫이지요. 책등을 펼친 페이지로 그려진 이미지를 자르는 성가신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닌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면 작가들이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이 더욱 넓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이수지 작가는 각 그림책에서 분리된 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와 그 의미를 다양하게 시도하며 각각의 특색을 잘 살려냈지만 종이 크기와 바인딩의 의미를 고정시키면서 세 작품을 의도적으로 연결고리를 갖게 했습니다.* 정말로 세 책은 시리즈인 것이지요.
상상의 세계를 현실세계에서 분리된 저 멀리 존재하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닌, 다양한 해석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 주는 그림책이라면 그 상상의 세계는 책을 덮고 나면 사라지는 책 속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느낄 수 있는 이수지의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였습니다. 조금 호흡이 긴 여행이지만 즐거우셨길 바라며, 저는 다음 주 일요일에 또 뵙겠습니다.
*비룡소 (2010) 이달의 작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 그림책 작가 - 이수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