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랑

사랑의 대상은 다양하다.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자기 자신. 사랑의 대상과 어떤 관계를 갖든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틀린 것이라며 고치려 든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허상을 쫒는게 아닐까? 다만 사랑하는 대상의 안녕을 바란다면, 그를 위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마음먹게 된다. 또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사랑한다면,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껴주면서 내 안녕을 위해 더 나은 쪽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혹은 자기 자신을 아껴주며 더 좋은 방향으로 향해 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고, 하고 있는 사랑이며, 하고 싶은 사랑이다.


성악설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믿음이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드러나는지를 알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 손 뒤에는 종종 ‘나도 언젠가 도움받을 수 있겠지’라는 계산이 숨어 있다. 선행조차 이익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위하는 일도, 결국 자기 안심을 위한 선택일 때가 있다. 우리는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기심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낸 본능이다. 그것이 악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악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선의는 드물고, 욕망은 언제나 우리를 움직인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자신을 이롭게 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나 성악설은 절망의 이론이 아니다. 인간이 악한 본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도덕과 규범이 의미를 가진다. 법과 윤리는 선한 인간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불완전함을 제어하기 위한 증거다.

선한 행동은 본능이 아니라 의지의 결과다. 욕망을 제어하고 옳은 길을 택하는 선택은 본능을 거스르는 결단이며, 인간의 선함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통제의 산물이다.

나는 인간의 그 본성을 이기려는 의지를 믿는다. 본성이 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를 단련하고 윤리를 세운다.

결국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그 본성을 이기려는 끊임없는 의지다.



토깽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

오래도록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다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고민되지 않는다

더 이상 나를 설명하거나 해명할 필요가 없다

나를 오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편안함이다




시절인연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은 봄꽃처럼 다가온다.

짧지만 강렬하게 피어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또 바람에 흩어지듯 떠나간다.


처음엔 그들을 붙잡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닫는다.

봄이 영원할 수 없듯, 모든 만남에는 시절이 있다.


우리는 인연을 ‘유지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인연의 깊이는 ‘머문 시간’보다

‘서로에게 남긴 온기’로 결정된다.


잠시 스친 인연이라도 그 순간이 진심이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봄은 다시 오지 않지만, 봄의 기억은 다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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