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BIFAN) - 총 6개의 온라인 상영작들.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등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단편. 특유의 기괴하면서 감각적인 스토리는 여전하다. 항상 쳇바퀴를 돌 듯이, <니믹>은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투영한다. 여기에 나의 ‘대체’인 누군가가 들어와도 딱히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세상. 그곳에서 나 또한 누군가의 일부, 결국엔 아무도 개의치 않는 ‘무’의 존재가 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주입한다. 첼리스트인 주인공에 딱 들어맞는 첼로 소리가 배경음으로 등장하는데, 어딘가 아슬아슬한, 왠지 모를 불안감을 조성한다.
시놉시스를 읽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단편. 팝아트를 연상하는 알록달록한 색감과 말 그대로 녹아버리는 연출이 사랑스럽다. 엉뚱한 상상과 약간의 기괴함이 합쳐진 발랄한 작품.
펠리컨이 자신의 피를 흘려서까지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인 희생을 하는 모습에서 착안한 ‘모성’과 공포적 요소를 잘 접목시킨 작품. 보는 내내 아이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과 이를 보고도 끝없이 인내하며 달라질 거라 믿는 어머니의 태도는 왠지 모를 찜찜함을 선사한다. 상황이 나아지는가 하더니 점점 극으로 치닫는 둘의 모습은 불안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나중엔 흑마술까지 동원하여 아이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모습에선 이게 사랑인지, 광기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인 정서이지만, 외국 작품에서 이런 절절한 모성은 처음 접해봐서 굉장히 독특하고 신선하다.
공간이 점차 확장됨과 함께, 다채로워지는 표현 방식과 소재를 보는 재미가 있다. 색을 쌓아서 그리는 표현 특성상 다소 둔탁하지만 역동적인 맛이 있는 유화에서, 아기자기한 카툰을 연상시키는 그림체까지. 시간 흐름에 맞추어 빠르게 변화하는 프레임을 보다가 마지막에 이르는 순간, 그 에너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 단편을 통해 계단을 다양한 방식으로 타고 오르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뿜어내는 형체들에 빠져들 것이다.
스틸컷부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오마주적인 요소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노래까지 같을 줄이야. 예술 작품과 신화를 주인공의 상황에 대입시키는 방식 또한 유사하다. 미를 추구하는 예술대 교수인 아버지가 아들을 완벽한 피조물이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미장센을 추구한다는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극의 흐름은 다소 불친절하다. 명확하게 짚어내는 것 없이 그저 흘러가는 영상을 보다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영드 <블랙 미러>의 팬이자, B급 감성 또한 좋아하는 나로서는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영화. 원제보다 한국어 제목이 훨씬 와 닿는다. <관종의 세계>는 SNS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대참사들을 긴장감 있게 풀어낸다. 처음엔 옴니버스식 전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각각 인물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유튜브 채널 조회수에 과하게 집착하고, 데이트 어플에서 자신을 훨씬 매력 있게 보이도록 조작한다던지. 갑작스러운 개인 정보 유출로 숨겨왔던 비밀들이 들통나는 일들은 누군가의 오늘일 것이다. 현실 속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자신을 겉치레하는 껍데기만 점점 커지는 일상들을 조명하고, 나 또한 이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자각하게 한다. 다소 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어쩌면 현실은 더 자극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