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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기다림/무심(無心)/아쉬움/빈자리

2부 : 홀로 사랑, 앓이는 성숙이다

by 김덕용

[ 이별/기다림/무심(無心)/아쉬움/빈자리 ]


[ 이별 ]

살아온 시간이 두렵기도 하다

가면 오고 오면 가는 그게 아니라

마주하는 인연들이 무섭게 한다

속내 모르는 타인이지만

인사치레 정도 나눌 수 있는

아량 정도는 베풀었건만

무정히 가버린 겨울 여인이여

오늘은 따스한 봄기운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내겐 스산한 찬바람이 맴도는구려

할 말을 잊고 서서

허공을 쓸쓸히 허우적거리며

짤따란 인사도 못 함을 아쉬워한다

그리하여 순이의 형상을

지우개로 지울 수만 있다면

깨끗이 지워내고 싶어

만남을 위한 작별을 부르짖고 싶다

지난날 유양과의 이별처럼

정양과의 헤어짐이

조용한 안녕(安寧)이 되어 반갑다






[ 기다림 ]

기약도 없이 떠나버렸네요

갈길 잃어 구슬픈 외기러기인가요

거리의 쓸쓸한 풍경은

기다림에 지친 겨울나무이지요


그러하더라도 말입니다

너무 지체하진 말아요

한 번쯤은 훈훈한 함박눈이라도

후련하게 펑펑 나려 주시구려


이날이 슬픔으로 내처 가버리면

진눈깨비가 내 마음 적실 때

덩달아서 울어버릴 겁니다


짜릿한 번개 빛 정열보다

감미로운 그리움에 촛불을 태울 수 있는

사랑의 반석을

내 머리 위에 얹어 주시어요






[ 무심(無心) ]

그냥저냥 하염없이 살아가렵니다

왜 이래야 하는지도 모르게

그저 목숨 줄이나 연명하면서

멀건 눈망울만 깜빡거릴 것입니다


인연 자락에 내재한 눈물일랑

목젖 너머로 삼키어 버리고

이 내 가슴앓이 심장에 이르도록

긴 호흡만 잔잔히 드리우렵니다


이르게 봄이 찾아왔음에도

벌써 맹아가 무력하게 떨어집니다

어젯밤의 때늦은 눈보라를

견뎌 내지 못한 흔적이랍니다


눈망울에 아롱지어 머물다가

볼을 타고 연달아 내리는 형상들

무슨 여한이 그리도 많음인지

샘이 마르도록 스미어듭니다





[ 아쉬움 ]

짤따란 인사말도 없이 가버린

아이야! 보고 싶구나

이 밤이 다 살도록 잠 못 이루고

흐릿하게 그려지는 영상에

애석한 구슬픔 흠씬 적시었지


이파리 떨어져 자취조차 없는

나뭇가지 황량함같이

쓸쓸히 돌아서는 뒤안길이

야속도록 초라하건만

처음 만났던 사무실 난로 옆으로

훈훈한 열기 듬뿍

간간이 눈길이 마주하였지


은근히 젖어 든 그리움

삭이어줄 그대 오랄 길 없어

그저 살든가 아니 살든가?

아쉬운 여운만 남겨 둔 채

스쳐 간 그이를 위하여

두 손 모아 상생의 기도 하리라






[ 빈자리 ]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

계시리란 믿음으로 마음 두었건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취조차 남아 있지 않더이다


당신에 대한 애틋한 심정이야

이미 진즉부터 사무침으로

다가와 여울졌기에

심장 박동이 빨라져만 갑니다


줄달음이 불편스럽지 않음도

오직 거기에 그대가

다소곳이 미소를 머금고서

반기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지요


화사한 자귀나무꽃을 바라보면서

밤마다 왜 오므라드느냐고

바람결에 묻고 또 물으니

빈자리가 너무나도 커서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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