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피아노쌤 Jul 19. 2024

울할매 1학년이다

"고집불통 가스나 어데다 쓸끼고~ 시집 가뿌면 망구 헛일 아이가~" 할매 목소리는 크레센토다. 스포르찬도(sf) 에 엑센트까지 더한다. 쩌렁쩌렁한 홀시어머니의 한마디에 울 엄마 귀가 접히고 입술이 바짝 마른다. 국민학교 밖에 졸업하지 않은 엄마는 맏딸만큼은 대학을 보내고 싶었다. 제법 공부도 잘하는 딸이라 어찌 되던 교육은 시키고 싶었다. 맘 단디 묵고 할매한테 "어무니~ 은미 대학 보냅시더~ " 했다. 엄마 말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불호령이다. 온~ 집 가득 할매 목소리 뿐이다. 여섯식구는 숨죽이고 시선을 여섯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누구 하나 토 달지 못한다.

곳간 열쇠 찰랑거리는 할매는 우리 집 실세다. 자갈치 시장 노점상에서 시작해 생선가게를 키운 건 할매다. 청상과부로 아들 셋 딸 하나를 건사하느라 할매 인생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오로지 밥벌이가 사는 목적이었고 살아야 할 이유였다. "문디같은 영감탱이 새끼만 싸질러 놓고 지만 가뿌먼 우야란 말이고~" 저녁이면 막걸리 한 잔에 할아버지 욕하는 게 안주다. 할매가 막걸리 한 주전자 마시면 난 방으로 들어간다. 동생들도 본능적으로 방으로 들어간다. 방이래야 우리가 함께 쓰는 1.5층의 다락이다. 

엄마랑 아버지는 가게 뒤에 달린 작은 집에서 귀퉁이 방에 잔다. 할매가 안방 차지다. 마당이 훤히 보이는 마루에 붙은 안방은 우리 모두의 거실이고 놀이터다. 할매 방 문을 열면 마루와 연결되 우리 7식구 밥 먹고 함께 테레비 보기에 딱이다. 마루에서 작은 계단을 올라가면 나와 동생들이 오글거리며 지내는 1.5층의 다락이다. 맏이인 내가 일어서도 머리가 닿질 않으니 우린 2층이라 불렀다. 엄마랑 아버지가 서면 머리가 닿아 고개를 숙여야 한다. 할매도 허리를 바짝 펴 보지만 머리가 닿질 않는다. 할머닌 "내가 오그라들어서 그런기라~ 맨날 무거븐거 이고지고 댕기서~ 그 덕에 느그들이 그만치 큰기라. 암만~ 새끼들이 커야지" 할머닌 괄괄하게 소리 질러도 우리들을 보면 좋다고 웃는다. 손주 새끼들이 사는 낙이라고...

할매가 막걸리를 마신다.  주전자 2개째다. 도망가야 할 시간이다. 테레비에선 '웃으면 복이 와요'를 하는데도 피해야 한다. 잘못 걸리면 할매 옆에서 술 냄새 맡으며 자야 한다. 할매는 우리 4남매 중 하나를 끼고 자려고 밤마다 우릴 돌아가며 부른다. "아이고 내 새끼 오데서 이리 조은기 났노~" 얼굴을 비비며 뽀뽀를 하는 통에 우린  할매 옆에서 자는 게 껄끄럽다. 술 냄새에 할매냄새 그리고 생선 냄새까지 아~ 정말 싫다. 

아침이다. 

할매가 고이 모셔둔 하얀 저고리에 파란 한복 치마를 입었다. "할매 오데 가는교? "내 오늘 진~짜로 중요한 거 하러 간 데이~" "무슨 일인교?" 우린 모두 눈이 동그랗다. "가따와서 말해주꾸마. 일생에 중요한 일인기라~" 할매가 웃었다. 정성껏 머리도 빗고 입술에 베니도 발랐다. 할매가 이처럼 이쁜 날은 없었다.

5시. 철거덩 철대문이 열린다. 바스락 한복 소리도 난다. 가벼운 발걸음의 할매가 한 보따리 안고 들어온다. 보자기다. 뭐가 있지? 궁금한 우리는 모두 마루로 모였다. 깔때기 아래도 물이 모여 흐르듯 우리 눈동자는 모두 할매의 보자기로 향했다. 할매의 저리 꼭 안고 오는 거면 진짜로 중요한 건데... 뭐지?

할매는 아버지 엄마도 불렀다. 우리 일곱은 그렇게 마루에 둘러앉았다. 할매가 웃었다. 내도 이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끼다. "에미야. 이거 받아라." 은행 통장 5개와 도장을 내려놓는다. "인자부터 니가 살림 살아라 내는 내 인생 살끼다" 우린 모두 어리둥절이다. 침묵이 흐른다. "할매 오데 가는데" 막내 은경이가 툭 치고 잠시 잠깐의 고요를 깬다. "아무 데도 안 간다. 인자부터 할매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끼라서 그렇다" 난 도대체 무슨 말이지 모르겠다.

할매가 품에 안고 온 보자기를 풀었다. 책이다. 언듯 봐도 국민학교 교과서다. 우린 모두 놀랐다. "엄마 이기 뭔교?" 아버지가 침묵을 깬다. "내 인자부터 학교간다. 공부할끼다.너그들 살림은 느그가 알아서 하거라. 내는 내대로 하고 싶은 거 할끼다." 할매 목소리에 눈물이 베여있다. 아버지와 엄마는 그저 마주 보고 있다. "할매 1학년인가베 내하고 똑같네" 막내가 또 한마디 거든다. 

중략...

할매가 내일 받아쓰기 시험 있다고 연습문제를 내보란다. 마루엔 밥상이 두 개 펼쳐졌다. 할매꺼랑 우리들꺼...우리 마루가 공부방이다. 할매가 공부하러 다니자 생선 냄새도 안 나고 막걸리 냄새도 안 난다. 우린 서로 할매 방에서 자려고 한다. 할매한테서 비누 냄새가 난다. 할매냄새도 난다. 구수하고 따스하다.

울할매 1학년이다. 할매는 학교에서 웃음 꽃씨를 가져왔다. 우리 집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은미 대학 학력고사 날이 다가온다. 



#할매 #1학년 #웃음꽃 #글쓰는피아노쌤 

매거진의 이전글 등짝과 똥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