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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피아노쌤 Jul 21. 2024

대학강단에 서다


나는 내 발로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내 의지로 내 행동으로 초래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자초'라고 부르지요.    - 오렌지와 빵칼, 청예 -




"열심히 공부하면 훌륭한 사람 된데이~ 사람은 그래야 된데이~" 귀에 못이 박혔다. 듣기 싫었다. 훌륭한 사람은 이순신 장군, 강감찬 장군, 을지문덕 장군이나 세종대왕인데 어찌 감히 흉내라도 내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못 박힌 귀에 굳은살이 베겼다.



어제 방송대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고 왔다. 두 시간 난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른다. 그들은 웃었다. 박장대소. 그들은 울었다. 몇몇은. 그리고 조는 이도 있었다. 나의 오프 무대 강의 데뷔 날이다. 꽉 찬 강의실, 이웃 지방에서 온 방송대 동문들... 응원하러 꽃다발 들고 온 아들, 며느리, 내 나이 60, 우레 같은 박수와 함성들... 행복하고 감동이다. 훌륭하라는 아버지 말이 '자초'한 일이다.



"여보세요, 큰딸이제 내 자랑할끼 있는데 딴사람한테 하몬 용심 낼 끼고 내 딸한테 말 하몬 개안을끼라 내 자랑하나 할란다"

"엄마~ 무슨일입니꺼? 해보이소~"

"우리 승엽이가 또 1등 했단다. 아이고 이쁜 기 이쁜 짓만 한다고 또 1등 했단다. 하하하"

"와~~ 또 과 톱인가베요. 울 엄마 손주 자랑 할만한 더~ " 하하 호호 울 엄마 목소리에 행복이 가득이다. 

"내는 요새 느그들 잘 되는 거 보는 기 최곤기라. 막내는 과학고 갔고 울 승엽인 1등해뿌꼬 너무 좋데이~" 

하하하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엄마 내가 하나 보테줄끼 있는데요"

"뭐꼬?

"내 지금 방송대 후배들한테 강의하러 갑니더~"

"울 딸 교수됐나?"

"아니 아니 엄마 그게 아니라 여름방학 특강이 있는데 우째하다보니 내가 강사가 되뿌써요"

"뭐든 해봐라 잘 할끼구먼"

"대학 강단에 서서 강의하는 건 첨이라 좀 긴장되는데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한결 조씸더~"

"웅변도 하고 그랬는데 무신 소리고 잘할끼구만~ 개안타 맘 편히 해봐라, 잘할끼구만~"

엄만 자꾸 "잘 할끼구만~" 하하하 울 엄마 마구 기분이 좋다. 나도 따라 좋다.


얼마 전 재학생 대표에게서 강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 동문들에게 하는 건데 뭐 부담스러울 것도 없이 가볍게 오케이~ 답사 때 버스 안에서 하듯 하면 되지 뭐~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근데 일이 점점 커졌다. 우리 과 동문들 몇 명만 모이는 게 아니란다. 방송대 여름방학 토요 특강 4번 그중에 한강의가 내 강의란다. 3분의 교수님 사이에 낀 강의. 방송대 성남 학습관 전체 카페에 소개가 되어버린 강의란다. 이게 아닌데 ... 그럼 가볍게 생각한 내 맘에 부담이 턱~하고 다가온다. 준비를 단디해야겠다. 


온라인 줌 강의는 하도 많이 해서 하나도 부담 없이 해왔던 터긴 하지만. 이건 생각하고 다르잖아.

재학생 대표의 말은 타 학습관에서도 온다고 다른 과 동문들도 온다고.... 어라? 점점 일이 커지고 있다.  다행인 건 날씨가 도와준다. 호우주의보다. 물 폭탄이란다. 아싸~ 많이 안 오겠구나. 다행이다.



토요일 아침

이다. 비가 부슬거린다. 오후 되면 쏟아지겠지? 얼른 PPT를 마무리하고 학원으로 향했다. 복사를 해가야지...








5장의 복사물을 칼라 인쇄하는데 1시간 30이 지나도 다 못했다. 이고고~ 안되겠다. 흑백 복사로 바꾸고 학교로 출발했다. 40부만 준비하면 되겠지? 비 올 텐데 뭐~


근데 비가 안온다. 에나꽁이다...이게 아닌데... 뭐~ 할 수 없다. 일단 가보자. 뭐 그리 오려고? 내가 유명인도 아니고 말이야. 애써 위로한다.



학교에 도착하고는 깜짝 놀랐다. 입구부터...




포스터에 붓글씨까지 옴마나~ 이기이기 무신 일이고~~






강의실 안팎으로 후배님들의 섬세한 손길이 ...


보자마자 감동의 도가니탕에 일단 퐁당한다. 그리고 부담이다. 준비해온 복사물을 전해줬다. 40부라 했더니 '모자랄걸요'한다. 이런 우짜지...몰러~ 이제 와서~ 설마 뭐 그리 올라구~



10년 만에 온 강의실은 새 책상으로 교체되어 있다. 새삼스럽다. 이곳에서 강의 들었는데... 이제 강의하러 오는구나. 만감이 교차한다. 몇몇 낯익을 후배님들과 찰칵 시간으로 긴장을 푼다. 







PPT 강의 지료도 확인하고, 총동문회장님이 빌려준 '프레젠터 리모컨'도 테스트해 본다. 히히 난생처음 사용해 본다. 나 강의한다고 필요하다고 빌려주는 선배 강사의 센스 쌩유~


점점 사람들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고 난 좀 긴장되고~ 시간은 다가온다. 멀리서 와주신 동문들이 뭐라도 하나 건져가셔야 할텐데... 준비한 후배들이 서운하지 않은 강의를 해야할텐데...속 걱정은 접어두고 강의를 시작한다.


좀 차분하게 침착하게... 막상 시작하니 긴장감이 사라진다. 1부가 휘리릭 지났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잠시 휴식 후 2부 강의하던 대로 방방 뛰면서 갱상도 표준말까지 해가며 웃다 울다 한다. 시간이 순삭 지나갔다. 몰입해 주는 동문들 덕분에 빨려 들어오는 에너지를 맛본다. 










역시 차분한 1부 강의보다 내 스타일대로 방방 에너지 뿜뿜한 게 더 편하고 좋다. 덕분에 책권자님은 "김미경 학장님 강의 같아요" 대박~ ㅎㅎㅎ 이런 말도 듣다니... 연예인처럼 나도 그렇게 사진 한방 찰칵해본다.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후배들의 손길과 정성에 감사하고 무명의 나를 만나러 와준 후배들에게 감사하다. 와서 보니 후배들의 정성 가득하고 세심한 배려에 감동이다. 강의 후 ㅇㅇ학습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당연히 가야지... 이 재미있는 일을 안 할 수 있나. 강의하는 내가 신이 났다. 나 강사 체질인가? 캬캬캬



강의를 마치고 아들과 예비 며느리가 준비한 꽃다발을 받았다. 와~ 감동이다. 이 녀석들이 나의 첫 데뷔 무대에 응원차 와서 함께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기특하고 이쁘다.



아직 사진을 다 전송받지 못했다. 어떤 사진들이 올지 궁금하다. 어제의 기억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있을 거다. 아주 오랫동안~


#방송대강의 #강의데뷔 #대학강단 #후배님감사 #와주셔서감사 #글쓰는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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