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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피아노쌤 Apr 20. 2024

빼딱구두 안녕~


월급을 받은 날 지나가던 쇼윈도에서 이쁜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날 데려가 ~' 유혹하는 구두의 소리가 들린다. 홀린 듯 들어가 앞이 뾰쪽한 아이보리색 구두를 신어본다. 리본 장식이 고운 구두는 굽이 좀 높다. 신어보니 키가 쑥~ 올라간다. 발이 날렵하고 발목이 가는 게 제법 이쁘다. 지갑이 열린다.  친구들에게 새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주일이 되길 기다린다. 밖에 신고 나가지도 않고 집안에서 신어본다. 동생들도 한 번씩 신어보며 새 구두 맛을 본다. 신을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235문이 내 사이즈인데 신발에 따라 종종 끼기도 하고 헐렁하기도 하다. 이번 구두는 좀 낀다. 미리 대일밴드 두 개를 준비해 둔다. 



안 좋은 예감은 어찌 그리 잘 맞는지? 발뒤꿈치가 벌겋게 달아오른다. 껍데기가 까지기 직전이다 이런 대일밴드를 미리 발랐는데도 살이 쓸려 피가 맺힌다. 새 구두를 사면 한 번씩 겪어야 하는 새 구두 신고식이다. 아가씨 선생님인 나는 주일학교 교사 겸 반주자를 맡았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라 주일학교 예배는 신발 벗고 교육관에서 드린다. 발이 좀 쉬는 시간이다. 내 발뒤꿈치에 대일밴드가 붙어있는 건 스타킹을 신어도 다 보인다. 대일밴드 안에 빨갛게 피가 맺힌 것도 다 보인다. 



집사님들이 "은미쌤 신발 개시했는가 보네요~" 한 말씀하신다.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 긍정의 미소를 보내고 아픈 발뒤꿈치를 쳐다본다. 다들 공감하는 여자들의 새 구두 신고식이다. 새 구두 길들이기는 한동안 계속된다.  발뒤꿈치도 대일밴드 덕을 봐야 한다. 그땐 그랬다. 나의 20대 아가씨 시절에는. 



신발장 정리를 하다가 장식이 화려한 새 구두가 보인다. 살짝 이별의 미소를 보낸다. 어제 사이즈를 물어 버길 잘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학원 선생님께 드렸다. 맘에 들어 하시길래 다 나눠줬다. 난 이제  빼딱구두를 신지 않는다. 빼닥구두의 이쁨보다 내 발의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기로 맘을 바꿨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 신발장에서 빼딱구두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신발 사이즈도 240미리로 한 치수 올렸다. 엄마 탓이다. 울 엄만 언제나 한 치수 발 사이즈를 크게 신으신다. 어느 날인가 엄마 신발을 신고 얼마나 편하던지... 



굽 높은 힐을 신고 짧은 치마를 입으면 누구라도 제법 이쁘다. 여성스럽고 고운 자태가 사랑스럽다. 이젠 그 이쁨도 바이바이 한지 오래다. 힐을 신을 자신이 없다. 구두는 특별한 날만 신는다. 굽이 낮은 신발로 다 교체했다. 그래도 버리지 못한 굽 높은 부츠 한 켤레가 있다.  굽이 높아 신으면 계단을 올라간 듯하다. 비싼 돈을 주기도 했지만 아까워서 하나는 모셔두고 겨울이면 꺼내 손질을 다시 해둔다. 그래도 한 켤레는 기념으로 보관해 두었다. 어느 날 맘이 젊어지고 싶은 날 신으려고~ ^^



나이가 든다는 건 멋보다 편안함이다. 옷도 멋보다 일단 가벼운지 체크하게 되고, 신발도 디자인보다 발이 편한지 우선 보게 된다. 나의 경우는 그러하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엄마의 전철을 따라가는 중이다. 엄마 따라 신발 사이즈는 한 치수 크게... 옷은 가볍게... 말은 적게 미소로... 주머닌 가볍게 계산은 먼저... 알려준 적이 없는데 저절로 그렇게 되어간다. 밥상머리 교육, 눈동냥 공부라 하더니 내가 그러하다.



울산 집에 가려고 신발장을 열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신발장 전체를 스캔한다. 구두 라인을 한번 쳐다보고는 눈이 금방 운동화와 단화 쪽으로 두리번 거린다. 몇 켤레 안되는 신발인데 신발장이 가득하다.  지금 신을 신발이 앞쪽에 나란히 줄을 서있다. 손이 가는 신발은 언제나 비슷한 디자인이다. 취향이 쉽게 변하지 않은 건지...  머릿속으로 이미 정해 둔 신발이다. 회전하는 짱구는 "운전해야 하니까. 밭에 가서 일해야 하니까. 음~ 그럼 운동화로~" 언제나 선택은 두 가지다 단화 아니면 운동화. 같은 선택을 하면서도 매일 한 번씩 뭘 신지? 고민한다. 



신발장을 들여다보며 남편도 두리번 거린다. 뭘 신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이다. 매일 신는 신발인데... 우리만 그렇게 신발이랑 인사 나누고 신는 건가? 신발장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하루 움직일 동선을 최종 마무리하는가 보다. 의상과 맞는지 색상도 체크하고. 들고나갈 가방도 미리 정해둬야 한다. 뭘 신을지?  뭘 들지?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구사리 들을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 왔다고 어서 나오라 소리 하기 전에 ...ㅎㅎㅎ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화를 착 신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다. 발이 편한 날은 하루가 편하다. 이제 빼딱구두는 안녕~ 저리 가~라고 당당히 외치고 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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