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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훈아의 라스트 콘서트-

by 청아 Feb 22. 2025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서울 공연도 끝났으니 스포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 해도 되지 않을까?

남편은 나훈아의 열렬한 팬이다. 나는 조용필, 이선희, 이문세 콘서트 세대이니 ‘트로트는 나의 결이 아니다.’라며 짐짓 고상한 척했다.

남편은 이제 마지막 콘서트이니 다시는 보고 싶어도 못 본다며 나를 데리고 원주콘서트와 대구 콘서트까지, 한 해 두 번이나 라스트 콘서트를 갔다.     




 

 콘서트에 입장하기 전 폰의 보안을 철저히 통제해서 불편했지만, 팬들의 열기는 더 엄청났다. 그날 원주 콘서트는 장대비가 쏟아졌는데 우리가 주차할 때 앞의 분은 인천에서 오셨다고 했다. 빗속에서 매번 첫 시작은 1초도 지각없이 카운트 다운으로 알려주는데, 팬들의 뜨거운 함성과 박수 호응도에 따라 로켓이 발사되고 막이 열렸다. 5분 동안 열렬한 손뼉 치기 대회에 나가는 것처럼 소리 지를 때 막이 올라갔다. 내 지인도 젊은 두 딸을 데리고 왔으며, 부모님과 함께 온 젊은 세대들도 함께 콘서트장이 떠나가도록 함성을 질렀다.      


나의 공연 소감은 한 마디로 최고의 격려사 엄지 척, “끝내줍니다!”

  사람들이 왜 나훈아를 ‘가황’(歌皇) ‘전설’이라 부르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콘서트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울고 웃은 팬들에게 한 시대를 함께 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와도 같았다. 그가 무대에서 내려오더라도, 그의 노래와 메시지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라스트 콘서트는 트로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없애 주었고, 너무 다재다능하신데 전문가가 아닌 나의 짧은 소견으로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훈아는 연예인이라기보다 진짜 진짜 프로예술가이다.      

  194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8세이신데, 59년간의 노래 인생이고 지난 한 해만 해도 전국 14개 도시에서 총 38번이나 공연을 하였다니 정말로 대단하다.

자신이 직접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로 만든 곡이 1200곡 이상이라고 했다. 트로트라고 하지만 다양하게 발라드, 록, 팝, 국악 느낌이 나는 곡들도 있다.

인기를 끈 ‘테스형’은 트로트와 록이 결합되었고 ‘홍시’는 부드러운 발라드 느낌이 난다. ‘기장 갈매기’ ‘체인지’ 이런 노래들은 현재 트렌드에 잘 맞아서 젊은 사람들도 매우 좋아한다.    

 

노래 가사에는 삶의 철학과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남편은 ‘영영’ ‘남자의 인생’ ‘사내’ ‘공’ ‘무시로’ ‘잡초’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를 좋아한다.

나는 ‘홍시’ ‘사랑’ ‘명자’ ‘친정엄마’ ‘가시버시-부부 옛말’ ‘아내라는 여자’를 좋아한다.

인생, 운명, 세월, 청춘, 사랑도 있고 남편이 특히 좋아하는 ‘사내’ ‘무시로’ ‘잡초’ 이런 노래에는 강한 남성미가 느껴지고 절대로 인생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보인다.

노래 가사말도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철학적인 깊이와 인생의 교훈도 느껴지고 라임도 예쁘다.

홍시에는 ‘눈 맞을세라’ ‘넘어질세라’ ‘울먹일세라’ ‘뒤처질세라’ 등 다양하게 나오고 사내에는 ‘긴가민가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요런 가사들은 콘서트에서 떼창으로 소리 지를 때 진짜 감칠맛이 난다.

  목소리가 어떻게 저럴까 싶을 정도로 파워풀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쏟아낸다. 특히 고음에는 아름다운 미색으로 바뀌면서, 약간 콧소리 나면서, 살짝 팬들에게는 눈웃음을 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명필이 붓을 안 가린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마이크도 화려하고 독특한 금색이어서 목소리가 더 특별하게 들렸다.     


 독보적인 무대 퍼포먼스는 아무도 당분간 따라오기 힘들 것이다.

  콘서트를 대하는 태도에 팬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보인다.

78세의 연세로 화려한 팔색조의 면모를 보여주며, 초대 가수 없이 2시간 반 동안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못하게 혼자 무대를 장악하는 힘이란 어마어마한 것이다. 대단한 에너지와 열정이 팬들에게 온몸으로 소름 끼치게 전달되었다.

거의 열여덟 벌의 옷을 초시계로 시간이 가는 소리를 들려주며, 갈아입는 모습을 검은 그림자로 팬들에게 보여주며 비호같이 옷을 갈아입었다.

전통적인 무대 의상뿐만 아니라 시스루 한복, 흰색 한복 두루마기 같은 것도 다양하게 입었다. 아마 치밀하게 시간을 계산하여 다음 입을 옷을 미리 안에 입었지 않나 싶다.

  그 세대들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일본 공연 “쾌지나 칭칭 나네” “독도는 우리 땅”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렸다. 일단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어마어마한 폐활량과 복식호흡, 하얗고 가지런한 건치, 특히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흰색 민소매 러닝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 위를 팔짝팔짝 뛸 때는 20대 청춘들 못지않았다.

한 장소에서 하루에 2회 공연도 있고 사흘 공연도 있는데 평소에 콘서트를 위해서 얼마나 운동을 했는지, 성대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후배 가수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무대 소속사 없이 홀로 활동하며, 음악적 방향이나 스텝에 관련된 모든 일을 최종 결정하며, 콘서트 공연 무대를 위해서 그가 얼마나 고뇌했을지 짐작이 간다.

  양쪽에 큰 모니터로 화면과 가사를 보여주는데 내가 놀란 것은 조명이 압권이다.

입체 무대가 앞뒤로 움직이며 드론도 돌아다니고 화려한 레이저 쇼와 CG. 명화 그래픽, 메타버스 느낌도 나오고, 신기한 것은 조명이 그렇게 많이 움직이는데 완벽하게 가사를 가리지 않게 배려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음악뿐만 아니라 눈으로 볼거리도 많이 제공했다.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야기를 했다.

  작년까지는 콘서트 비용만 두고 마음껏 쓰라고 하더니 라스트 콘서트에는 이제 마음껏 다 쓰고 매일 예쁘게 입고 집을 나가라고 했다. 일기를 40년간이나 써 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책도 많이 읽고, 잠수기에 세계여행도 많이 하고, 공연도 원 없이 보아서 얘기하시는 연륜으로만 보아도 인문학적인 소양이 상당하다고 느껴졌다.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을 피하면서도, 노래 가사나 공연을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 주어서 나는 등을 긁는 것처럼 시원했다.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로 잘난 척하지 말고 화합해야 잘 살게 된다’며, ‘아기를 많이 낳아야 우리나라가 발전한다’고 했다. ‘공’ 노래 가사 중에 ‘살다 보면 알게 돼’ ~ 후렴구에 ‘띠리리 띠리리...’ 하다가 살짝 쉬고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다. 팬들도 맞장구치며 ‘띠리리 띠리리’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중간중간에 ‘으이?’ ‘ 으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그렇지 않니? ’‘맞지?’  이런 느낌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맞는지 모르지만 북한의 김정일이나 삼성 이건희 회장이 초대했을 때도 가지 않고 표를 끊고서 콘서트를 직접 보러 와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마지막 곡 사내를 부를 때 전국 방방곡곡을 따라다니는 팬들도 울고 스텝진도 울었다. ‘훈이답게 살다가 훈아답게 갈 거다.’ 큰 절로 엎드려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내 보다 우리 식구들이 한 장소마다 콘서트가 끝날 때 더 운다.”라고 얘기하셨는데 왜 그런지 이해되었다.

오케스트라, 합창단, 무용단, 록밴드, 국악단 등 식구가 200명이 넘는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함께 했던 공연들을 생각하면 어찌 슬프지 않을까?   


  

  공연을 마치고 나올 때 한정판 ‘나훈아 컬렉션 100’ 이제 딱 두 박스 남았다며 스텝이 홍보하며 판매하였다. 나는 남편이 혹해서 박스째로 살까 봐 미리

“당신 좋아하는 CD 딱 한 장만 사지요?” 살짝 여지를 주었는데 남편은

“여보! 우와! 대단하다. 이것이 한정판이래. 세월이 지나면 굉장히 가치가 있는 거야. 꼭 사고 싶은데 사면 안될까?” 벌써 카드를 긁을 태세였다.

결국 뒷사람에 밀려 샀지만 집에 와서 보니 CD 5장에 USB 1장, 나훈아 화보집, 가사집 등 생각보다 내용이 알찼다.

문제는 차 안에서나 집의 CD 플레이어에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이 노래를 틀어놓으니 본의 아니게 강제주입식 교육으로 노래 가사를 외우게 되었다.

중독성도 강하지만 오래도록 생각이 나고 여운을 남기는 가사말이 많았다.   



  


  

  장대비 속의 원주 콘서트, 달빛 속의 대구 콘서트 집으로 오는 길은 밤이 늦었고 멀었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위로를 받았고 희망을 느꼈고 가슴속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도 되었다.

이제 음악과 관련된 일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이제까지 못 해본 일만 하겠다고 하셨는데....

이제 다시는 피아노도 안 치고 책도 안 보고 40년 이상 써 온 일기도 안 쓰겠다고 하셨는데...

무언가 쏟아내고 싶을 때 나는 글을 쓰는데, 그렇게 감성이 풍부한 분이 일기를 안 쓰면 힘드실 텐데... 정말로 말한 대로 전통시장에서 마주치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제 더 이상 콘서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아쉽다.

그러나 그는 분명 우리의 기억 속에서 우리와 함께 계속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희망 사항은 내년 구정쯤 TV방송에서 ‘나훈아 라스트 콘서트’를 특집으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팬들이 좋아하고 시청률도 분명히 많이 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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