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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Living next door to
Alice

by 청아 Mar 01. 2025

  요즘 겨울인데 날씨가 정말로 이상하다. 예전에는 '3한 4온'이 전통적이었는데, 지난달 말에는 서울의 기온이 영하 14도 이하인데 남부지방은 낮에 20도를 넘기도 했다. 기상청에서는 기후 변화로 인해 기온의 진폭이 커지면서, '9한 11온' 또는 '15한 12온'과 같은 불규칙한 패턴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는 갑자기 날씨가 따뜻한데 하루 종일 비가 오다가 말다가 했다.

조용히 비가 오는 날에는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가 생각나고 불현듯 그날이 떠 오른다.





  벌써 40년 전, 1985년 한 여름이었다.

남편과 나는 캠퍼스 커플로 대학 졸업 후, 나는 첫 발령을 받아 직장에 근무하고, 남편은 전방에서 장교로 군 복무 중이었다. 군 입대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전화로 휴가 온다고 하는 날은 번번이 비상이 걸려 못 오고, 그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온다고 약속을 했었다. 


  조그만 소 도시의 ‘반도 음악 감상실’은 다방이지만, 극장처럼 좌석이 되어 앉아 있으면 뒷사람의 머리만 보였다. 음악을 신청하면 뮤직박스 안에서 DJ가 음악을 틀어주고 조용히 차를 마시는 그런 곳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남편은 아침에 출발하기 때문에 늦어도 6시까지는 반도 감상실에 도착한다고 했었다.

  퇴근하여 기다리기 시작하여 시곗바늘은 6시, 7시, 8시...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음악 감상실은 10시에 문을 닫는데, 9시 반이 지나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앞으로 30분 후면 무조건 나가야 되는데....  부대에 또 비상이 걸렸나? 혹시 오다가 무슨 사고가 났나? 초조하고 불안한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물었다. 

     

  이제 감상실에는 아무도 없고 나 만 있는데 거의 10시가 다 될 무렵 장교 제복 위에 카키색 우의를 걸친 남편이 나타났다. 그때 음악실 뮤직 박스 안에서 강렬하게 나오는 노래가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였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갑고 기쁜 마음과 그동안 걱정한 마음이 섞여서 눈물이 막 나려고 했고, 남편의 모자 위에는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멋있었다.      

  마치 영화 ‘애수’의 첫 장면 로버트 테일러가 제복을 입고 워털루 다리 위에서 마스코트를 만지며 회상할 때처럼, 감상실을 들어오는 남편의 옆모습이 로버트 테일러처럼 느껴졌었다. 

2년 3개월 군 입대 기간 남편이 보내 준 600여 통의 편지와 27개의 칸이 그려져 있는 둘이 똑같이 만든 카드를 갖고 다니며, 몇 달 만에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서로 도장을 찍으며 그 칸이 하루빨리 다 채워지기를 기다렸다. 

  교통편이 불편하여 한번 만나려면 남편이 오고 가는데 이틀이 걸렸다. 남편 근무지가 원통, 인제를 지나가기 때문에 친구들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어예 오나?”라고 많이 놀리기도 했다.     

      

  그때 그 노래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를 남편도 무척 좋아했는데, 가사 내용은 Alice가 떠나가니까 군대 있을 때 들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Smokie는 영국의 록밴드로서, 우리나라에 앨범이 백만 장 이상이나 팔렸고 공연은 항상 매진이었고, 우리 대학 다닐 때 무척 인기가 있었다.      

가사는 ‘Alice와 어릴 때부터 나무에 이니셜도 새기며 친구같이 놀았지만, 무려 24년 동안 이웃으로 살며 사랑 고백도 제대로 못했다.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뒤늦게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리무진을 타고 Alice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다.  

  가사에는 Alice가 결혼 때문에 떠나는지, 아니면 이사를 가는지 확실히 모르지만 이사 트럭이 아니고 리무진이니까 다른 남자의 차를 타고 떠난다고 예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숙소에서 그 노래를 들으면 그 남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슬프다고 했다.   






  올해 결혼 37주년!     

20대에 들은 노래를 지금 60대가 되어서 다시 들으니 느낌이 다르다. 


나도 남편도 퇴직했으니 몸은 그때와 다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순식간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마음이 풋풋해진다. 


특히 이렇게 온종일 비 오는 날에는 왠지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가 다시 듣고 싶고, 그때의 애틋한 마음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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