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보다 6개월 먼저 퇴직했고, 나는 최근에 퇴직했다.
덧붙여서 어떤 지인은 “오전에는 내가 밖으로 나가고, 오후에는 집 사람이 밖에 나간다.”며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귀띔을 하였다.
어휴! 서로 바빠서 얼굴도 안 쳐다보고 용건만 이야기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는데 다시 싸운단 말인가?
생각해 보니 결혼하고 거의 십 년 차가 될 때까지 치열하게 싸운 것 같다.
진짜로 연애시절과 결혼생활은 많이 다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동거를 해 보고 결혼한다.”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남편과 한 도시에서 살았으나 생활을 같이 안 해서 남편의 생활 습관이나 버릇, 특히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군 시절 3년을 포함하여 연애 7년 동안 경치 좋은 곳으로 구경도 하고 영화관이나 전시회나 다방으로 데이트를 해도 우리는 술집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쿵쾅쿵쾅 요란한 예의 그 발자국 소리. 자정 무렵 5층 계단을 올라오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
“민아! 사랑하는 아빠다. 아빠! 빨리 문 열어.”
“어휴! 무슨 수를 내야지. 내가 동네 창피해서....”
12월 들어서 사흘이 멀다 하고 되풀이되는 일과였다.
한 해를 결산하는 동창회다, 직장 친목회다, 테니스회다, 송년회다, 각종 모임의 총무직을 맡고 있는 남편은 “남자는 20대에는 사랑에 미쳐 사랑을 얻고, 30대는 일에 미쳐 성공의 기틀을 잡는 시기이다.”
라는 지론을 펴며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했다.
우리 집 통금은 10시. 달력의 X표 수가 매달 불어나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언젠가 미장원에서 본 잡지에 쓰여있는 충격요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일단 큰 애를 먼저 재우고 스프레이 물통 속에 포도주를 넣어서 현관 입구에 흠뻑 하게 뿌리고 현관문을 살짝 열어 두었다. 담배도 3개비 정도를 한꺼번에 타도록 해서 방 안에 자욱하게 연기를 만들고 조용하고 슬픈 음악을 틀어놓았다. 상 위에는 포도주, 맥주, 오징어를 올려놓고 마시는 척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12시쯤 되어 이윽고 예의 그 쿵쾅거리는 남편 발자국 소리. 조금 열어 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은 흠칫 놀라는 표정이더니, 말 한마디도 없이 씻지도 않고 조용히 옷을 벗고 TV를 켜고 누웠다. 난 슬쩍 눈치를 보며 베란다 옆에서 뒤돌아 앉아서 반 컵쯤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지금쯤 잡지 속의 각본대로라면 남편이 “자기! 왜 이래. 정신 차려! 내가 안 그럴게!”하면서 나에게 매달리고, 난 울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하면서 소리 질러야 하는데... 너무 반응이 없으니까 좀 싱겁고, 갑자기 울려니까 울음이 안 나왔다.
더 강하게 나가서 뭔가 깨뜨려야 하는데 나중에 피해가 없는 걸로 우선 맥주병을 베란다 쪽으로 던졌다. 간이 약해서 그런지 맥주병을 너무 고이 던져서, 병은 베란다 벽에 갔다가 다시 뒤로 굴러서 깨어지지 않았다. 다시 일부러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서 다른 맥주병을 세게 던졌다. 또 포도주 병도 베란다 쪽으로 세게 던져서 깨어졌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되는데...’ 싶어서 일부러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테니스 채를 베란다 밖으로 쿵 하고 던졌다.
계속 반응이 없다. ‘이것 참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데...’ 내 주량은 반 컵인데 벌써 거의 두 컵을 다 마셨다. 정말로 진퇴양난이다. 눈앞이 핑 돌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민이 옆으로 가서 누웠다.
눕자마자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이상하더니 결국 저녁 먹은 것까지 토하고 쓰러졌다. 저절로 타는 담배 연기를 억지로 마시고, 평소 못 먹는 술을 마신 데다가 신경을 써서 그런지 정말로 토해 버렸다. 얼핏 잠결에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이 밖에서 테니스 채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아침. 베란다와 욕실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고 남편은
“자기! 어제 무섭던데... 난 생명에 위협을 느꼈어. 정말로 미안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효과가 장기간은 아니었지만 단기간은 있었다. 그 이후 음주할 때 그때의 충격으로 꽤 조심하는 표정이 역력했었다.
충격요법은 일생에 한 번은 사용할 만 하지만 자주 사용할 방법은 아니다.
100%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 한번 사용하면, 그 충격 효과는 조금 있었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남편은 좋아하던 술도 퇴직하니 몸이 안 받아주니 자연히 덜 마시게 되었다.
남편은 퇴직하고서 나를 아침에 차로 직장까지 태워주고, 반찬은 못하지만 아침밥이나 설거지를 하였고 청소나 빨래 등도 많이 하였다. 하지만 나도 막상 퇴직하니 실생활은 달랐다. 아침부터 같은 시공간에 계속 있으니 사소한 것이 부딪히기도 하였다. 말로는 ‘40년 직장생활’에 고생 많았다며 립 서비스를 자주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기 방식대로 하였다.
가령 설거지 후 그릇이나 냄비 쌓는 것도 남편은 각이 잡히고 자기 원하는 순서대로 되는 것을 좋아하였다. 내가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행주를 걸어 놓으면, 남편은 꼭 밑으로 안 보이게 달아 놓았다.
생활 습관과 가치관이 다시 보이고, 물건에 대한 중요도가 서로 다르고 미묘한 차이를 느꼈다.
우리는 화나면 서로에게 존댓말을 한다. 편하게 대화하다가 한 사람이 존칭을 사용하면 재빨리 알아차린다. 뭐니 뭐니 해도 솔직하고 부드럽게 대화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대화를 하는 것이 제일 중요다고 느꼈다.
1. give up - 지나친 욕심을 포기하라
2. show up – 차려입고 나가라
3. muscle up –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
4. pay up – 지갑을 자주 열어라
5. catch up – 기회 도전을 잡아라
6. shut up – 말을 적게 하라
7. look up – 상대방을 존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