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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Jun 24. 2022

아무것도 없는 제가 건방지게 둘을 낳았습니다.

맞벌이 부부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죄인

저희 부부는 부산 사람이 아닙니다.

양가 부모님 모두 왕복 네 시간 거리에 살고 계시고, 제 동생도 오빠의 누나도 모두 멀리 살고 계십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외국 속담을 우습게 여기고 도움받을 곳 없는 이곳에서 건방지게 아들 둘을 키우며 일까지 하고 있습니다.


첫째 때도 힘들었습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할 쯤인 15개월부터 면역이 떨어진 탓인지, 어린이집을 보내서인지 감기 한 번 안 했던 아이가 매주 병원을 다니곤 했습니다.

일하는 엄마를 둔 죄로 아파도 가장 먼저 등원해서 보일러도 틀어져있지 않은 차디찬 어린이집에 들어가서 선생님들이 다 퇴근하시고도 한참을 더 있다가 제일 늦게 하원했습니다.

아이가 열이나도, 설사를 해도 데리고 병원 갈 사람이 없어서 폐렴으로 탈수가 진행돼도 어린이집에 가야 했습니다.

지하철부터 동동 발 구르며 에스컬레이터를 뛰다시피 올라가도 야간진료 접수가 마감되어 돌아가 아픈 아이 붙들고 응급실 바로 갈 수 있게 긴장하며 지샜던 밤들.


그렇게 4년이 흐르고

크고 작은 어려움은 으쌰 으쌰 하며

주변 좋은 분들 도움도 받아가며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옮긴 어린이집 적응기간에 낯설어 소변도 못 봐서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 마치고 만삭의 몸으로 쏘다닌 게 부담이 됐던 건지

2주 적응기간만 겨우 채운 토요일 새벽

양수가 터지면서 둘째를 만나러 급히 가게 됐습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분만실) 때문에 무서웠던 첫째가 울음을 그치지 못해서 병원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새벽에 신랑은 시부모님께 연락드려 시부모님께서 큰아이를 받아주시고 나서야 병원에 돌아와 보호자 싸인 칸만 비워져 있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선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아이는 미친 듯이 사랑스러웠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살만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많이, 좋은 걸 해주고 싶어 복직했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어린이집 보내고 나서 7주 연속 항생제를 먹고, 출근하자마자 열이 40도를 넘겨 입원도 했지만 그럭저럭 잘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줄, 내성이 생겨서 끄떡 없어질 만큼 강해졌다 착각했습니다.


둘째 어린이집 여름방학 기간에 연차를 쓰려고 했더니, 이미 두 사람이나 휴가를 써놨다고 합니다.

5일 중에 3일을 신랑에게 부탁하고, 뒤에 이틀은 어떡하지 고민해보자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첫째 어린이집에서 공지가 뜹니다.

둘째 방학이 8월 첫째 주인데

첫째 방학은 7월 마지막 주랍니다.

하필 오늘 쉬는 날이라 똥줄이 탑니다.

(달력에 먼저 적는 순서대로 쉬는 시스템. 보통 하루에 한 명만 쉬는데 혹시 수술 의사가 연차를 쓰거나 수술 개수가 적으면 그 다음번 순서에게 기회가 주어짐)

출근했을 법 한 사람들에게 달력 좀 봐달라고 카톡을 돌렸지만, 수술실에 핸드폰을 들고 들어갈 수 없기에 다들 답장이 없습니다.

결국 수선생님께 바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첫째 어린이집은 방학이 없는 줄 알았는데 방학이 있고, 7월 마지막 주인데 혹시 오프자가 있냐고.

역시나 둘이나 적어놨다고 합니다.

일단은 이름을 적어 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연락을 마쳤습니다.


화가 나고, 서럽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난 항상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족한 사람인 건지.


무거운 마음으로 태권도 다녀오는 첫째를 기다리는데, 같이 다니고 있는 친구를 기다리는 이모와 삼촌이 보입니다.

그 친구 부모님도 맞벌이를 하셔서

등원은 삼촌이, 하원은 친할머니가 해주시는 친구입니다.

미혼인 삼촌과 이모가 조카를 돌봐주려고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친할머니가 오셔서 돌봐주시는.


그래서 그 아이는 아플 땐 이모가 병원을 데려가고

저녁엔 태권도 한 시간하고 가면 할머니께서 맛있는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립니다.


우리 아이들처럼 아파도 엄마 아빠가 연락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고,

저녁에 태권도 두 시간 하고 와서 오자마자 벌컥벌컥 물을 200cc를 원샷 때리고도 배가 고파서 헐떡대지 않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에 내리는 순간부터 집 도착까지 목에 피 냄새나도록 뛰어도 15-20분 남짓.

그 시간에 밥을 후다닥 차리고 아이들을 받아와서 아직 뜨거운 밥을 욱여넣는 아이들을 먹이고

목욕시키고 나면 9시가 넘습니다.

그쯤 신랑이 퇴근하지만 인사 겨우 하고 나는 아이들과 침대에 누워야 합니다.

하루에 점심 한 끼 먹는 날 안쓰러움 반 못마땅함 반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며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눕는 신랑도 피곤하긴 마찬가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데

오늘은 왠지 버겁고, 서럽고, 외롭고, 화가 납니다.


아이가 중학생인 선생님도 아이들이 이만할 때,  초등학교 저학년 일 때 너무너무 힘드셨다고 하셨는데.. 왜 10년이 지나도 그 시기엔 여전히 힘든 건지.

저출산이 큰 재앙인 것처럼 떠들고

애 낳으면 돈을 그렇게 뿌려댄다던데

그렇게 하고 나면 나 같은 사람이 덜 힘들어지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주변에 도와줄 가족도, 일을 그만둘 만큼의 돈도 없는 내까짓게 애 둘을 키우려고 발버둥 치는 이것이 욕심이고 사치였나..

내가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라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와서도 아이들 보면 피로가 사르르 풀리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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