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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Jul 12. 2022

엄마라서 괜찮아. 괜찮아졌어

아이에게 말 하고 내가 듣는 위로.

아이들이 아프다.

하나가 아파도 골이 지끈거리는데

둘이 같이 아프다.


심지어 장. 염.


아이가 없었을 땐 그냥 좀 굶으면 낫는 이 병명에 소름이 돋는다면 나와 비슷한 상황이리라.



장염이 걸리면 등원을 할 수가 없다.

전염병이니까!

적당한(?) 감기는 눈 꼭 감고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장염은 다 나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해야 등원할 수 있다.


지난주 목요일

작은아이가 설사를 했다고 지켜봐 달라는 키즈노트를 받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괜찮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주말에 심해지면 안 되니까 약이라도 받아두자 싶어 금요일에 둘 다 병원을 데려갔다.

(마침 큰애가 금요일 아침에 묽은 변을 봐서)


야간진료가 걸리길래 약간 고민하다가

그래도 진료를 봤는데..

큰애가 심하고 작은애는 그래도 덜하다고..

그날부터 작은애는 설사를 좔좔 해댔고

손빨래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금토일 식이 조절하면서 약 먹이면 낫겠지.


장염이 오면 보통 아이들은 식음을 전폐한다고 한다.

그래서 수액도 맞고, 입원도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고맙게도 잘 먹는 아이들이라서 수액도 필요 없다 하셨다. 기름진 음식이랑 과일만 먹이지 말라고.

근데.. 이것들이 편식을 한다?!

안 먹진 않는데 먹으면 안 되는 것만 먹겠다고 고집..


미역국도 싫어. 달걀죽도 싫어. 싫어 싫어

쿠키 먹을래 젤리 먹을래 사과 먹을래


실랑이 끝에 그래 뭐라도 먹어라 싶어 다 줘버렸다.


이노무 요거트 귀신들 ㅋㅋㅋ

뚜껑까지 야무지게 먹는 거 보면 다 나았는데 휴.


주일 교회에서 둘째가 묽은 변 한 번 보고 나선

둘 다 소식이 없길래


눈 질끈 감고, 등원시켰다.


그 당시엔 월요일 오프라고 했던 동료들이 떠올랐고, 내 아이들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비 오던 월요일.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등원을 했다.


마음이 쓰여 점심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평소엔 바쁘실 시간이라 피해서 거는데 ㅠㅠ)

첫째는 평소처럼 먹고 잘 놀았단다.

둘째는 음식을 좀 뱉어내긴 했지만 괜찮다 하셨다.


온전치 못한 컨디션에 태권도 두타임 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일찍 마치고 5시에 아이를 받았다.


엄마랑 시장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마음에 꽂혀있어서 시장 갔다가 둘째 데리고 오자! 하고

20킬로가 넘는 아이를 안고, 그 아이가 우산을 들고 꽁냥꽁냥 시장을 갔다.


큰애가 너무 좋아하는 시장 두부를 앞집과 나눠먹으려 사고 있는데 아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쉬 마렵냐니까 그렇다고 해서 다급히 화장실을 여쭤보니 쓰시는 화장실을 알려주셨다.

뛰어가는데 응가가 마렵단다.

가까스로 도착하니 화장실이 자물쇠로 잠겨있다.

비밀번호 좀 알려달라고 소리쳤더니 옆 가게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화장실 개방 안 하신단다.

정말 죄송한데 아이가 급하다고 부탁드렸더니

청소를 안 하고 가서 안된다 하셨다.

청소 제가 하고 갈 테니 부탁드린다고 조아렸다.

정말. 고개를 조아리고 부탁드렸다.

떫떠름하게 열어주셔서 아이 바지 열었더니

이미 아이는 실수를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참았을 아이.

그럼에도 어른들 실랑이에 결국 실수하고, 그 수치심을 다 느꼈을 내 아이.


괜찮아- 아픈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엄마랑 있을 땐 얼마든지 실수해도 괜찮아.


주문처럼 아이가 듣든 듣지 않든 중얼거리며

팬티, 바지, 양말, 처음 신은 새하얀 운동화까지 난리가 난 아이의 뒤처리를 했다.


다행히 아침에 비가 와서 우비가 가방에 있었다.

그 와중에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으니, 나도 참 많이 컸다.


바닥에 묻은 것을 휴지로 닦고 있으니

계속 문 열면서 확인하시던 옆 가게 사장님이 내가 치울 테니 가라고 하신다.

물청소 제가 하겠다고 했더니 됐다고 하시며

두부가게 사장님께 하소연하신다.


여차저차 쌓인 게 있으셨었나보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두부를 챙겨서 집에 돌아왔다.

민망한지 괜히 딴소리하며 늦게 걷는 아이에게 화낼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집에 와서 아이를 씻기고 버린 옷들을 빨고

운동화를 담가놨다.


여유가 생기고나니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괜찮아- 아픈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엄마랑 있을 땐 얼마든지 실수해도 괜찮아.


어쩌면 난 지금도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스스로에게 가장 모진 내가 가까운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주문 같은 말.

어릴 적 아빠 친구 댁에서 변기가 막혔는데, 부모님이 그걸 놀리신 이후론 집 이외의 공간에서는 소변도 못 보던 나, 집에서도 식구들이 없을 때 혹은 모두 잠들 때까지 참았다가 화장실을 갔던 그 아이가 너무 듣고 싶었던 말.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데

그때 일을 다시 얘기하지 않는 걸 보니 잘 넘어간 듯싶다.

우리 아이는 본인이 꽂히는 에피소드는 누가 듣던 말던 계속 얘기하는 걸로 해소하기 때문에.


다행이다.

그래도 아이에게 내가 받은 상처를 그대로 물려주진 않았구나.


혹시나 해서 화요일인 오늘 연차를 썼다.

오전 반차만 부탁드렸는데 아이 챙기라며 그냥 쉬라고 하셨다.

(내가 수쌤 때문에 일을 못 그만둔다 진짜..)


오전 진료로 아이 둘 다 진료를 봤다.


갑자기 콧물이 심해진 둘째는 항생제를 또! 다시! 먹게 됐지만

둘 다 장 소리가 좋아져서 받았던 약만 마저 먹이고

과자만 너무 많이 주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오늘 쉬는데 싶어서

둘째 어린이집 보내고 첫째 보고 데이트하자고 했더니..

여울반 가셔야겠단다..

친구들이 자기 기다린단다..


야. 엄마도 너랑 데이트하고 싶거든?!

휴. 봐줬다.

차로 등원시켜주니 뒤도 안 돌아보고 쌩- 가버린다.


조금 내린 기름값에 흡족하며 기름을 넣고

집에 돌아와 아침에 출근하며 신랑이 만들어줬지만 아이들은 입도 안 대고 간 에그 스크램블을 먹고

며칠 전부터 날 괴롭히는 두통에 누웠더니

내 고양이들이 옆에 와 엉덩이를 들이밀고 눕는다.


더운 여름

따뜻한 체온

다 좋다. 너무 좋다.

거슬리는 두통도 내가 누워있을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주려는 것 같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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