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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Nov 12. 2022

누구나 가슴에 사직서 한 장쯤은 품고 살잖아요.

사람 때문에, 사람 덕분에

2015년부터 다닌, 내가 20대에 와서 아이 둘을 낳고 키운 이 병원을 떠나려 사직서를 품었다.


이 글을 적다 지우고 적다 지우길 수차례.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쌓여있다는 새로 올라간 간호부장과 우리 수선생님의 앙금이 만든 단순 해프닝으로 그치길 바라는 마음에 완성했던 글도 지웠다.

하지만 지어진 매듭은 나와 우리 동료들이 바랐던 방향이 아니었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우리 수선생님은 쉽게 설명하면 불같은 사람이다.

목소리도 크고, 성격도 급하고, 화끈하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들도 분명 많다.

하지만 누구보다 병원 일에 진심이셨고, 수 간호사로써 병원에 수술실 직원들(청소 여사님까지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에 힘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도 처음 몇 년은 수선생님이 어렵고 무섭기만 했는데,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육휴 후 돌아와 일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동안 몰랐던 선생님의 다정함과 세심함에 감동을 받았었다.


둘째를 낳고, 돌아왔는데 병원에 내 자리가 없었을 때.

정말 너무 서러워서 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날 잡아줬던 분.

다정한 말투가 아니었지만 항상 너와 네 가족의 행복이 1등이라며 아이 키우며 생기는 변수들을 다 커버해주셨던 분.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둘째 낳고 돌아갈 수 있었을까? 내 자리가 없는데 부서를 옮겨가며 새로 일을 배울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니. 난 정말 수선생님에게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기에 서러워도, 공부할 시간이 없어 출퇴근 지하철에서 해야 했어도 지난 5개월을 버틸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청춘을 갈아 넣어 일 한 직장이 한순간에 나에게 등을 돌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결국 선생님은 퇴사하셨다.


간호부장은 그저 보직이동을 명령했을 뿐이지만, 우린 스페셜 파트이고 (즉, 병동 300년 차도 수술실에 오면 신규와 다름없고,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 마치 선심 쓰듯 옮겨준다는 부서는 얼마 전 마취과 후배가 6개월에 걸쳐 고민하고, (그 아이는 그 부서장과 같이 운동하며 언니 동생 하던 사이라 그분이 추천해서 이루어짐) 본인이 가겠다 결정한 후 옮겼던 부서였다.

그 아이도 처음엔 새로 다 배워야 하는 일이 막막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수선생님께는 이틀 뒤 당장 옮기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책임 간호사들이 면담하며 이 인사이동에 강력히 반발했지만 결국 철회되지 않았다.

간호부장이 수술실에 상주하고 이사장님도 내려와서 분위기를 살피시기에 희망을 가졌던 내가 순진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만 돌아오는 해피엔딩은 없었고, 수선생님과 책임간호사들이 한꺼번에 사직서를 쓰는 상황에만 이르렀다.


이렇게 단체로 움직이면 병원이 우리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직서는 받아들여졌고, 책임 간호사들에게만 다 같이 당장은 안되니 차례로 그만두라는 개소리만 돌아왔다.


병원은 우리 사정에 관심이 없는데 왜 우리는 병원 부탁에 귀를 기울여야 하나?

남겨진 동료를 생각하라고? 너희는 우리를 그저 부속품 하나로만, 언제든지 얼마든지 갈아 끼우면 그만인 것으로 대하면서 왜 우리에겐 인간다움을 강요하나.


어이가 없다.


일주일도 안돼서 휘몰아친 이 사건으로 언제나 자랑스러웠던 나의 직장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곳이 되었다.


12월까지 일하면 육아휴직기간 동안 떼고 받았던 육휴 비를 받을 수 있는 내가 같이 사직서를 쓰겠다 생각만 하고 있을 때, 선생님들은 먼저 받을 건 받고 나가라고 한 달만 더 버티면 쉬면서 버틸 수 있는 돈이 나오는데 아이 키우면서 냉정하게 생각하라고 날 말리셨다.


결국 난 내 이익때문에 다 같이 소리 내는 이번 일에 빠졌고, 그저 다음 달에는 꼭 내리라 다짐한 사직서를 가슴이 품었다.



이틀 전 저녁을 먹고, 힘이 빠져서 멍하게 있는데 한참 폰을 보던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담담히 써 내려간 그의 감사에 고장 난 눈물 버튼은 또 눈물이 쏟아냈고, 이걸 받으실 때 함께 있었던 동생 말로는 이 카톡을 엄청 크게 자랑하셨단다.



이 병원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금요일에 출근을 했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침 첫인사부터, 중간중간 지나가며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응원하고 같은 방이 여유가 있으면 모여 수다 떠는 이 일상이 이렇게도 귀하고 소중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 떠나지만

사람 덕분에 행복했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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