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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Dec 10. 2021

잠투정하는 아이에게 항상 지는 엄마.

공포가 다가올 때 다정한 안정감이 주는 위로

잘 놀다가 얼굴에 잠이 언뜻 스친다.

어플로 낮잠 시간을 확인하니 잠 올 때가 됐다.

얼른 데리고 침대에 누웠다.


젖을 물리고나니 오히려 쌩쌩해진 아기.


휴.. 뭐야 이거 또 속았네 하며 그냥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샤워나 할까 생각을 하는데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오호라. 조금만 버티면 자겠구나!

짜증 내는 아이를 옆에 고쳐 눕히고 팔베개를 해주며 토닥토닥 시작.

짜증이 커지더니 울음이 된다.


그래. 천사처럼 자는 아이가 아니니까.

이 정도 우는 건 감수하자


점점 거세지는 울음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자니

끝도 없이 커져만 간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가고

이유모를 공포가 가득한 얼굴

손으론 닥치는 대로 할퀴고 잡아 뜯으며

머리는 침대 바닥에 쿵쿵 내리 박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다치지 않게 머리를 팔로 받아주는 것.

그리고 괜찮아 아가야 속삭이는 것뿐.


아이가 원하는 것은 하나.

공갈 젖꼭지처럼 찌찌를 물고 자고 싶다.


내가 내주지 못하는 이유는

먼저는 침대에 막 누웠을 때 수유하고 나서 많이 먹었는지 약간 게워냈기 때문이고

또 이렇게 젖을 물고 자는 버릇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분노에 가까운 울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다가

일 할 때 생각이 난다.



나는 수술실에 환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수술이 끝나고 수술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까지 환자의 곁을 지키는 마취과 간호사이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

수술실에 들어올 땐, 많은 환자들이 위축되어있고 긴장하고 계시기 때문에

숨겨왔던 본래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바깥에선 센 척하던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은 아저씨도 혈압 재는 압력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세상 젠틀했던 노신사도 마취 깨거나 잠에서 깨면서 쌍욕을 날리고 심하면 주먹도 날린다.


한 할머니는 환자가 들어오고 병동 간호사 선생님에게 인계받는 1-2분 찰나를 기다리게 했다고 화를 버럭 내셨다.


“요즘 것들은 이래서 안돼. 환자를 기다리게 하고 말이야. 진작 할 말 있으면 하고 환자를 움직이게 해야지 버르장머리 없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인계를 받고, 깡마른 할머니에게 온포를 덮어드리며 “환자분 - 수술실이 감염 문제로 온도를 높일 수가 없어서 따뜻한 포를 좀 덮어드릴게요” 했더니

본인은 열이 많은데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냐고 한다.

그럼 추우면 말씀하시라 하고 온포를 제자리에 두고 환자 확인을 위해 몇 가지를 여쭸다.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너넨 환자 이름도 모르고 수술실에 집어넣어? 전화통화는 왜 한 거야 쓸데없이?”

“알고 있는데, 확인을 한번 더 해야 해서 그래요. 수술 전에도 한번 더 확인할 거예요”

“알면 왜 확인을 해? 사람 귀찮게 하려고 작정했어?”


어르고 달래서 확인하고 들어가니

또 춥다고 화내고, 침대가 불편하다 화내고, 자세가 편치 않다고 화내고,

심지어 만삭이었던 내 배를 보고

임산부가 조심하지 않고 이런 험한 데서 일한다고 책임감 없고 욕심 많은 여자라고 화를 낸다.


할머니의 근본 없는 분노를 다 받아내니

나는 왜 이런 대접을 받으며 일 해야 하나 현타가 온다.

점심시간 교대로 겨우겨우 식사하고 돌아오니

나랑 교대하느라 내 방을 봐줬던 후배가

할머니가 나를 엄청 찾았단다.


밥 먹고 나니 힘도 났고, 수술도 막바지라 힘을 짜내서 할머니께 다가갔다.

“환자분 저 찾으셨다면서요? 나만 보면 화내더니 없으니까 보고 싶었어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피식 웃으신다.

“그래 난 또 내가 지랄한다고 도망갔나 했지”

“어머 할머니 나한테 너무하신 거 아시나 봐.”

하고 같이 웃었다.


그 할머니가 나가실 때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신다.

“내가 너무 무서워서 그랬나 봐. 맘에 담아두지 마. 임신해서 일도 하는데 나 같은 환자는 안 만나야 할 텐데..”

병동에선 그러시지 마시라고. 그렇다고 불편한 건 참지 말고 꼭 말씀하시라고 이야기하고 보내드렸다.




어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8개월 아기는 말을 할 수 없다.

본인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온몸으로 알리는 수 밖에는.


아이의 분노 섞인 울음을 고대로 다 받으며

내가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나 억울 해하는 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더라.


뭐가 불편할까, 뭐가 필요할까

어떻게 해주면 편해질까?

아이를 관찰하면 엄마는 알 수 있다.


30여분의 기싸움

결국 난 또 졌다.


젖을 물리자마자 눈을 감고 조용해진다.

곧 숨소리도 편안해진다.

모유를 먹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젖을 무는 행위 자체가 아이에게 어마어마한 안정감을 주는가 보다.


잠시 잠깐 만난 환자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싶으니

내가 좀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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