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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May 08. 2024

잘못된 식사

   어제는 어버이날이었고 모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근사한 고깃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가 하는 일은 마치는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터라 예약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집 근처의 비싼 가격 때문에 손님이 많지 않은 투뿔 한우 고깃집을 가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그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아홉 시. 간만에 멋을 내어 차려입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고깃집으로 향하면서 그는 흥흥 혼자 웃었다. 고기 냄새가 잔뜩 밸 텐데도 모처럼 아들과 외식한다고 분위기를 한껏 낸 부모님의 마음이 그를 즐겁게 했다. 고깃집은 집에서 오 분 거리였다. 도착해 보니 날이 날이니만큼 평소보다 손님들이 많았지만 거의 식사를 마쳐가고 있었다. 막 일어서는 손님들도 여럿 보였다. 어른들을 모시는 식사를 시작하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긴 했다.


   "지금 주문 가능한가요?"

   "그럼요, 저희 열 시까지 영업합니다."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투뿔 한우 오인 분과 육회 두 접시를 시켰다. 평생 노동으로 단련된 굵은 손마디를 가진 그의 부모님은 일흔이 넘은 지금도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식사량이 많으시다. 한우는 일인 분이라고 해봤자  고작 130그램이니 넉넉한 양은 아니지만 된장찌개와 공깃밥 혹은 냉면까지 다 하면 육십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왜 고기를 오인 분씩이나 시키냐, 비싼 육회까지 뭣하러 두 접시나 시키냐는 행복한 잔소리를 들으며 그의 어깨는 유행이 지난 재킷처럼 한껏 봉긋해졌다.  


   음식은 총알같이 세팅이 되었다. 종업원이 고기를 굽는 동안 부모님과 그는 육회와 밑반찬을 맛있게 먹었다. 육회는 연하고 싱싱했으면 얹힌 배는 아삭아삭하고 단물이 많았다. 밑반찬은 개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정갈했다. 그가 좋아하는 풍성한 샐러드에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간장 게장이 있었고 밑반찬이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고급스러운 육전도 한 접시가 나와 충분히 흡족했다.


   고기가 다 구워졌을 때, 넓은 고깃집 안에는 그의 테이블을 포함해 단 두 테이블만 손님이 남아 있었다. 조금 불안한 감이 들긴 했으나 열 시까지 영업한다는 종업원 말을 분명히 들은 터라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다 같이 맥주로 목을 축인 후 알맞게 구워진 야들야들한 한우를 막 집어 들기 시작한 것은 아홉 시 이십 분쯤이었다. 늦은 식사라 시장했던 탓에 고기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때 종업원이 와서 물었다.


   "혹시 식사 주문하실 거면 미리 하셔도 될까요? 주방은 곧 마감을 해야 해서요."

  "아, 그래요? 이제 막 고기 먹기 시작했는데.... 그냥 미리 시키죠 뭐. 식사는 뭐 드실래요? 냉면? 된장찌개?

  "냉면은 지금 시키면 불어서 못 먹지. 된장찌개야 집에서 맨날 먹는데 뭘. 돈 아깝게 식사는 안 시켜도 돼. 고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럴 수야 있나. 모처럼의 외식인데 완벽해야지. 된장찌개도 총알처럼 나왔다. 맥주도 두 병 더 시켰다. 그럴 즈음 시계는 아홉 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한 테이블 더 있던 손님들도 식사를 마치고 나갔다. 너도 이제 장가를 가야지, 아이고 또 그 소리 하며 티격태격하는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던 중 거슬리는 장면이 그의 눈에 띄었다.


   부모님 등 뒤쪽으로 화장실이 있었는데 출입문을 활짝 열어 둔 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대걸래를 든 종업원이 나오고 있었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테이블 아래를 빗자루질 하고 있는 종업원도 있었다. 또 분무기를 뿌려 대며 테이블들을 박박 문질러 닦는 종업원도, 주방에서 그의 집 쓰레기봉투만 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 종업원도 있었다. 그의 표정이 사나워지는 것을 본, 청소일과 식당일로 잔뼈가 굵은 어머니가 얼른 말씀하셨다.  


     "아들, 괜찮아. 일 마칠 시간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 우리도 거의 다 먹었잖아. 얼른 된장찌개 먹고 일어나자. 이 사람들도 얼른 퇴근하고 집에 가야지."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고 살아온 그의 부모님은 부산을 떠는 무례한 종업원들보다 할 말 다 하는 성격인 아들을 더 불안해하셨다. 얼마 전에도 실수를 인정 않는 동네 프랜차이즈 식당 사장을 본사에 신고해 혼쭐을 내 준 일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과 친분이 있던 식당 사장이 부모님을 통해 잘못했다고 사정사정하는 통에 사과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이 그 사장보다 더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별점 테러나 리뷰 공격도 참았다. 그는 욱하고 올라오는 화를 생선 가시가 걸렸을 때 밥을 꿀꺽 삼키듯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가 다투면 부모님이 불편해하시니까. 일 년에 하루뿐인 어버이날이 아닌가.


   그런데 손님을 보자기나 가마니로 아는지 고깃집 안은 점점 어수선해졌다. 문 열린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계속 들리고 의자들을 거칠게 테이블 안으로 밀어 넣는 소리까지 사방에서 더해졌다. 시계는 아홉 시 사십 오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의 부모님은 서둘러 된장찌개와 밥을 고기와 함께 입속으로 밀어 넣고 계셨다. 고기 굽는 연기보다 더 뿌연 먼지들이 사방에서 떨쳐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그는 투뿔 고깃집을 다시 방문했다. 나름 배려하여 손님이 적은 오후 시간을 택했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자근자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루가 지난 탓에 가라앉았던 뿔따구가 투뿔을 넘어 쓰리뿔, 포뿔로 솟았다.


   "손님,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종업원들에게 사실 확인을 한 부모님 연배의 사장이 허리를 굽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안 됐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가. 십수 년 안면 트고 지내온 동네 식당 사장의 잘못에도 가차 없는 사람이다.

  "어제 일했던 종업원들 사과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어제 낸 고깃값 돌려주세요."

   머리가 하얀 사장이 멈칫했다. 사과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는 굽혔던 허리를 고깃값 환불 얘기가 나오자 펴면서 덩달아 목소리도 꼿꼿하게 높였다.  

   "저, 손님. 종업원들 사과를 원하시면 그건 해 드릴게요. 전부는 안 돼도 어제 근무했던 종업원 중 두 명은 오늘도 근무거든요. 하지만 고깃값 환불은 어렵겠는데요. 불편하게 해 드린 건 죄송하지만 그만한 일로 환불을 요청하시는 건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너무하다고요? 뭐가 너무하죠? 저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만한 일이라뇨? 어버이날이라고 모처럼 부모님 모시고 왔다가 거의 육십만 원을 내면서 완전 시장통 먼지 바닥에서 밥 먹고 기분 망친 것 생각하면 제 입장에서는 고깃값 환불로도 모자랄 정돕니다. 열 시까지 영업한다고 손님한테 말했으면 지켜야죠. 주문 더 받으려고 거짓말 한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니죠. 어쨌든 열 시까지 영업한 건 맞지 않습니까? 영업 마감 삼십 분 전부터 청소를 했다고 해서 영업을 마감한 건 아니죠. 어쨌든 고기 다 드셨잖아요? 저희가 손님께 영업 끝났다고 나가라고 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하십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열 시까지 영업한다는 말을 듣고 어떤 손님이 아홉 시 반부터 청소를 할 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걸 알고도 아홉 시가 넘어서 육십만 원짜리 식사를 주문할 미친 손님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앞으로는 아홉 시 반까지 영업한다고 안내하죠 뭐. 어쨌든 저희는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환불은 절대 못해 드립니다."

   

   '앞머리를 내리는 게 나을까, 옆으로 넘기는 게 나을까'도 SNS로 지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는 세상이다. 누가 나쁜 건지 그도 한번 설문 조사를 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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