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자취하는 동네에는 돈가스 맛집이 있다. 배달의 민족이 사는 나라에서 일절 배달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매장 판매만 하는 특이한 집이다. 그가 그 집을 애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대단히 맛있다는 것, 다음으로는 포장을 하면 30%를 할인해 준다는 것.
그 돈가스집 맞은편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극장 같은 가게가 있다. 오리지널, 카라멜, 치즈, 갈릭, 어니언, 콘소메, 뿌링클, 카레, 치즈어니언, 치즈 앤 카라멜, 허니버터 등 온갖 수식어가 붙은 팝콘과 오징어 버터구이, 나쵸, 핫도그 등 영화관 내에서 파는 거의 모든 메뉴를 판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관의 매점 같은 가게다. 영화관에는 분명 외부음식 반입 불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겠지만 영화관 매점의 간식 가격이 워낙 악명이 높은 터라 팝콘을 사 가지고 들어가는 손님들이 많아 이 가게는 늘 붐빈다. 다행히 팝콘 포장이 영화관 매점의 것과 비슷해 적발될 위험은 적어 보이지만 언젠가 영화관과 팝콘 가게가 시비를 걸어올 것만 같다.
비가 몹시 내리는 날 그는 돈가스와 팝콘 조합이 먹고 싶어졌다. 돈가스를 먹으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배달은 없다! 그러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불든 직접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팝콘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배달이 있다! 게다가 요즘 무슨 일인지 무료 배달이 늘었으니 혹시 팝콘 배달이 무료일 수도 있다.
배달앱을 열었다. 팝콘집을 찾고 보니 오오, 역시 배달료가 무료다. 다만 최소 주문 금액이 팝콘을 두 봉지쯤 사야 하는 정도다. 까짓 거, 두 봉지 샀다가 한 봉지는 저녁에 먹지 뭐. 화면을 휙휙 내려 그가 좋아하는 팝콘을 찾았다. 매장에서 사면 3800원인데 배달로 사면 4500원이라 두 봉지를 담으니 최소 주문 금액이 맞춰졌다.
매장 판매 가격과 배달 가격이 다르다는 것쯤은 배달앱을 애용하는 고객으로서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고객이 배달비를 별도로 지불하는데도 배달을 시키면 같은 음식이 더 비싸지는 이유를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배달비를 내면서 음식에 웃돈까지 얹어 주는 이상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들 그러니까, 억울하면 매장에 직접 가서 먹으면 되니까, 라고 생각한다. 또 경제에 문외한인 평범한 그가 모르는 어떤 합당한 이유나 원리가 있겠지 싶었다. 애덤스미스나 케인즈보다 명석한 경제학자가 정립한 이론에 따른 가격 책정일지도 모른다. 부당하거나 불법이라면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나 기획재정부나 뭐 그런 국가 기관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또 대한민국 국민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3800원짜리 팝콘이 배달일 때는 4500원, 웃돈의 비율이 꽤 높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배달비가 없어진 것만 해도 어딘가. 감지덕지해야 한다. 가만, 그렇다면 배달비가 있던 시절에는 팝콘 한 봉지에 19% 정도의 웃돈을 얹어 주고 배달비도 지불했던 건가.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인터넷 뉴스에서 본 신기한 사건이 떠올랐다. 어느 김밥집에서 햄이나 단무지 같은 재료를 빼달라고 요청하면 2000원을 더 받는다는 뉴스였다. 어느 네티즌이 폭로하면서 가게 사장님이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었는데 사장님은 재료를 하나 빼면 다른 재료로 더 꽉꽉 채워 주기 때문에 그렇게 판매해 왔으며 그런 방식이 문제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가게는 신규 오픈점도 아니었고 몇 년 동안 영업을 해 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만약 햄이랑, 단무지랑, 뭐랑 뭐랑 김밥 속 재료를 다 빼달라고 요청한다면? 김밥값 4천 원에서 1만 2천 원이 추가되어 흰 밥으로만 돌돌 말린 김밥이 16000원?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대단히 신기한 계산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몇 년 간 그렇게 팔아도 문제가 없었다니 이상하다고 여기는 그가 이상한 건지도 모른다. 세상에 김밥집이 얼마나 많은데 못마땅하면 안 사면 그만이고 사장님에게 그만한 자유는 정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그 김밥집에 대한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집요하고 끈질겨 마침내 탈탈 털고 마는 대한민국 네티즌들의 표적이 된 모양이다. 라면 메뉴가 있는데 면을 빼 달라 하면 3000원의 추가 요금이 붙는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신박했다. 면을 빼면 추가 요금이 붙는다? 김밥처럼 다른 재료를 꽉꽉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물을 많이 부어 주나? 수프를 두 봉지 넣어 주나? 파를 한 뿌리 넣어 주나?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라면을 주문하면서 면을 빼달라는 사람이 있냐는 것이었다! 저 신기한 옵션이 존재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남의 말을 할 계제가 아니다. 그도 특이한 옵션을 주문하는 일이 있다. 노상에서 십원빵을 사 먹을 때 치즈를 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십원빵은 크고 둥그런 쌀빵 안에 치즈가 가득 들어서 한 입 물면 반원 모양을 그리며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나는 치즈가 매력적인 빵인데 그는 치즈를 싫어한다. 그래서 혹시 치즈를 빼고 만들어 줄 수 있냐고 여쭈었더니 사장님이 흔쾌히 승낙하셨다. 3천 원을 내밀었더니 여러 번 사양하시면서 2천 원만 받아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다. 이후 종종 그 십원빵을 사 먹고 있다. 그렇다면 붕어빵에서 팥을 빼달라고 하거나, 호떡에서 설탕을 빼달라고 하거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에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도 어디까지가 상식인지,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