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필 Jul 02. 2024

변절자

   행여라도 이렇게 되어 버릴까 봐 결혼 전 그는 그녀에게 수도 없이 당부를 하고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 산 화장품을 쓰고 싶은 마음에 아직 남아 있는 화장품을 버리듯 자신의 약속을 쉽게 폐기처분했다. 심지어 결혼 전 약속을 결혼 후에도 고수하려는 그를 매정한 냉혈한이라고 비난했다. 그도 절대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자기의 변화도 그런 거라고 옹호했다.

  

   그는 아예 수저를 물지 못하고 태어났다. 흙수저라고 자조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지만 흙수저도 수저다. 그는 헐값으로나마 노동력을 팔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돈을 벌어 집의 빚을 갚는 데 보태야 했다. 여러 수저를 입에 문 친구들이 갓 움트는 이차 성징의 예후를 서로 공유하며 키득거릴 때였다. 악착같이 공부해서 상위권은 될 수 있었지만 최상위권은 될 수 없었다. 그의 머리로 최상위권이 되려면 학원이든 과외든 보완재가 필요했지만 그는 돈을 버는 존재였지 쓰는 존재일 수는 없었다. 서울의 중위권 대학 정도는 갈 수 있었지만 사 년 장학금이 가능한 지방국립대에 입학했다.

   

   인생의 첫 휴가는 군대였다. 자유만 내어 주면 뭐든지 주는 군대. 밥도 먹여 주고 잠도 재워 주고 옷도 공짜짜로 주고 월급도 공무원처럼 제 날짜에 따박따박 들어왔다. 월급날이 공휴일이면 하루든 이틀이든 빨리 입금되었다. 그리고 군대에 있는 동안은 아무도 그에게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몸 건강히 제대하라니, 세상에 그런 쉬운 기대만 짊어지고 살 수 있다니, 군대에 한 오 년쯤은 있고 싶을 정도였다. 군대 밖에 있을 때도 혹서, 혹한 아래서 무방비로 일했던 그로서는 군대에서 가장 힘들다는 훈련조차도 가뿐했다.


   대학 졸업 후 돈만 벌게 되자 그는 해방감을 느꼈다. 학교를 졸업하기가 두려워 남에게 내세우기에 근사한 이유 뒤에 숨어서 졸업을 유예하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돈만 벌면 된다니, 심지어 이제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어엿한 직장을 가질 수 있다니 행복했다. 평범해져서 너무 행복했다.


   그는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는 허황된 꿈을 갖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 남을 부러워하며 살아야 할 처지라는 것을. 스타트라인이 너무 뒤져서 아무리 노력해도 앞에서 출발한 또래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행복했던 것은 공부를 할 때는 돈 걱정을, 돈을 벌 때는 공부 걱정을 하며 더 이상 애달프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고 비록 지방의 지사였지만 어엿한 대기업 사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집의 빚을 갚아야 했지만 인생 목표의 절반은 이룬 셈이었다. 그의 인생 목표는 심플했다. 남들이 쉴 때는 그도 일하지 않는 것, 자신 같은 삶을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는 것. 그의 인생 목표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작은 사무실의 경리였다. 그처럼 집에 돈을 보태느라 늘 돈에 허덕였지만 소박하고 순수했다. 삼 년 연애하는 동안 기념일 한 번 안 챙기고 선물 하나 안 했지만 그런 그를 이해했다. 그녀도 그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까. 삼 년 동안 그녀를 생각한 만큼 이별을 생각했다. 헤어지지 않는 한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할 테니까. 아무리 오래 앓아도 결국 죽듯이 연애만 하고 결혼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결혼을 결심한 후 그녀가 질릴 만큼 당부하고 약속을 받았다.

   “절대 아이는 낳지 않는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는 낳지 않아. 아이를 낳으면 우리 삶과 아이 삶이 동시에 위태로워져. 동시에 가난해진다고. 내가 어떤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왔는지 잘 알지? 우리 인생의 가장 위험한 뇌관은 아이야. 생각이 바뀔 것 같으면 지금 헤어지자.”


   결혼 후 삼 년이 지나자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언지하에 이혼을 요구했다. 실제로 두 명의 변호사와 이혼 상담을 했다. 삼십 분 상담에 육만 원씩 쓰고 나서 다른 변호사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둘의 멘트는 어젯밤 전화해서 입을 맞춘 것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아내분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히 이혼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결혼 전에 아무리 약속했어도 마찬가집니다.”


   양가 어른들이 벌떼처럼 그를 공격했다.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지, 부부가 아이 없이 살면 불행해진다고 했다. 그는 양가 어른들께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아이를 낳아서 행복했냐고. 또 그 아이들은 행복했냐고. 그는 통보했다. 아이를 낳는다면 그와 그녀가 각자의 집에 보내던 돈을 끊겠다고. 벌떼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임신을 했다. 지우자고 했지만 들을 리 없었다. 수술대로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강력하게 요구했다. 아이를 낳고 딱 두 달만 쉬고 회사에 복귀해야 한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더 열심히 일해서 가정의 수입을 늘려야 한다, 낳는다면 그 아이가 남을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게 해서는 안 된다, 스타트 라인을 최대한 앞쪽으로 당겨 주어야 한다.... 그녀는 충분히 이해했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오늘 자정이 넘어 퇴근한 그는 두부와 버섯이 충분히 들어간 된장찌개에 야무지게 똘똘 말린 계란말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 한 토막, 알맞게 데쳐진 파릇한 미나리 무침과 냉장고에서 갓 꺼내 썬 아삭아삭한 김치가 접시에 담긴 저녁 밥상을 받았다. 집은 말끔히 정리돼 있었고 차곡차곡 갠 빨래가 소파 위에 놓여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빨래 건조대에서 그냥 옷을 집어다 입었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통을 그대로 꺼내 밥을 먹곤 했었다. 그때는 밥이 달았는데 지금은 입맛이 썼다.


   이제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그에게 진수성찬을 차려 대령한다. 빨래도 청소도 그녀가 다 한다. 애를 돌보는 일도 그녀가 다 한다. 그녀가 다 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행복한 주부 코스프레를 하는 동안 그는 퇴근 후와 주말까지 쓰리잡을 뛰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복직하지 못했다. 복직을 약속했던 그녀의 사무실은 호떡 뒤집듯 약속을 뒤집었다. 그녀가 그랬듯이 쉽게 변절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까지만 집에 있겠다고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자 몇 군데 면접을 본 그녀는 가방 끈이 길지 않은 애 딸린 여자가 취직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했다. 식당 서빙이나 설거지라면 몰라도. 식당 서빙이든 설거지든 뭐든 하라고 소리치자 그녀는 울었다. 그에게 너무하다고 했다. 약속이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이혼은 절대 못한다고 했다.


   그도 아이가 예쁘다. 계속 예쁠 수 있게 해 주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 남들이 쉴 때 그도 일하지 않는다는 인생의 목표는 진작 포기했다. 하지만 자신 같은 삶을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목표는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 남은 그의 인생 목표까지도 포기하라고 한다. 그녀는 변절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한심한. . .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