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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May 03. 2024

옷을 못 입게 해 주세요

   오늘 메이저 지상파 방송국에서 취재를 요청하는 공문이 학교에 도착했고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한 통의 전화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평범이 엄마예요. 말씀드릴 게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뭘 잘못한 거지? 그의 생각은 학생들이 엄지손가락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밀어 올리는 속도로 빨라졌다. 기억의 화면이 휙휙 넘어간다. 급식 지도하면서 나물 반찬을 한 젓가락씩은 먹으라고 윽박지른 것 때문인가? 학원 가야 한다는 아이들의 청소 순서를 바꾸어 주지 않은 것 때문인가? 또 뭐가 있지? 그 와중에 평범이 엄마의 목소리 톤이 평범이처럼 평범하다는 것에 슬그머니 안도감이 들었다.


   "저, 선생님. 우리 반에 명품이 있잖아요."

   명품이? 뜻밖의 서두에 그는 어리둥절했다. 명품이는 어떤 문제도 일으킬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명품이는 또래보다 체격이 작고 소심한 아이다. 학기 초 총회도 하기 전에 부모님 두 분이 함께 찾아오셨었다. 일학 년 학부모들은 원래 걱정이 많은 법이다. 명품이가 시험관 시술로 얻은 완전 늦둥이 아들이고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몹시 허약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혹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다고 점잖게 말씀하셨다. 온몸으로 여유와 예의를 발산하는 분들이었다.  십 분 정도 짧은 면담이었고 교사로서 매우 존중받는 느낌이 드는 유쾌한 자리였다.


   그 후 명품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는데 뛰는 놀이에는 잘 끼지 못했지만 급식 시간에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는 것을 보면 교우관계에 문제는 없었다. 또 부모님을 닮아선지 태도가 온화하고 말투도 상냥했으며 친구들에게 뭐든 나눠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명품이가 뭐가 문제인 거지?


   "명품이가 매일 명품옷을 입고 온다는데 그게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 같아서요. 명품이, 명품 옷 좀 안 입고 오도록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의 사항이었다.

   "아, 네...... 그런데 평범이 어머니, 혹시 평범이가 그러던가요? 명품이가 매일 명품옷 입고 오는 게 부럽다고요?"

   "아니요, 일학 년 애들은 명품이 뭔지 알지도 못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 학교에 형제자매가 같이 다니는 애들이 꽤 많잖아요. 요즘 애들은 고학년쯤 되면  어른들보다도 명품을 많이 알거든요. 걔네들이 동생들한테 얘기한대요. 너네 번에 명품 옷만 입는 애 있다고, 부럽다고요. 고학년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짜하대요. 엄마들도 학교에 오며 가며 많이 봤고요.


   명품이가 명품 옷, 명품 신발, 명품 가방을 입고 신고 메는 것은 맞다. 몇 달씩 모은 월급으로 명품을 하나씩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그의 눈에도 단박에 띄었다. 그가 아는 명품 브랜드가 아닌 옷이나 신발을 명품이가 착용한 것을 보고 그 브랜드를 검색해 보면 매장이 우리 나라에 두 세개밖에 없는 신흥 명품이었다. 사실 그도 명품이가 부러웠다. 명품을 사 줄 수 있는 재력을 가진 부모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커서도 명품 인생을 살 확률이 높다진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검증된 사실이니까. 넥타이나 카드 지갑 같은 자잘한 소품들만 겨우 명품으로 구입하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명품 옷을 입지 못하게 한다?


   "평범이 어머니 말씀은 충분히 알겠는데요, 교사가 학생에게 어떤 옷을 입어라, 입지 말아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건 너무 사적인 부분이라서요."

   "네, 알아요. 선생님. 저도 이런 말씀드리기 전에 많이 고민했어요. 열등감 가진 학부모로 보일까 봐 걱정도 했고요. 그런데 엄마들 말 들어보니까 큰애들이 명품이를 보고 명품 갖고 싶다, 명품 사달라 조르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저의 집 큰애도 5학년인데 얼마 전에 이름도 못 들어본 메이커 신발을 사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마냐고 물었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런 건 네가 좋아하는 아이돌들이나 신는 거라고, 네가 그런 신발을 어디서 봤냐고 물으니까 명품이 신발 보고 검색해서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저도 돈이 없어서 그런 신발을 안 사주는 건 아니에요. 어려우시겠지만 명품이 부모님께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만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꼭 입어라, 입지 마라가 아니라요. 명품이 부모님들 다 좋은 분들이시니까 이해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는 평범이 어머니와의 통화 이후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국 명품이 부모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담임의 관할에서 벗어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어느 유명한 인터넷 게시판에 그의 학교 학부모가 글을 올렸다. 평범이 어머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격정적이고 신랄한 어조로 고작 일학 년짜리를 명품으로 도배하는 몰상식한 학부모가 학교에 있다고 비난했다. 네티즌들의 열띤 토론에 힘입어 그 게시판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조회수와 댓글수를 기록했다.


   처음에는 유튜버들이 학교 정문 앞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등하교 하는 아이들을 잡고 1학년에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다니는 아이가 누구냐고 마구잡이로 물어댔다. 어떤 아이들은 겁을 먹었고 어떤 아이들은 신이 났다. 보안관 아저씨가 제지하다 안 되니까 교무실로 연락을 해 왔고 선생님들이 뛰어 나가 제지해도 안 되니까 교감 선생님이 뛰어 나갔고 그래도 안 되니까 마침내 경찰이 출동했다. 그 난리통을 찍은 영상의 조회수가 또 기록적인 수치를 찍었다. 영상의 어설픈 모자이크 처리는 걸그룹의 무대의상처럼 가리려는 의도보다 드러내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넘버 3 안에 드는 메이저 지상파 방송국에서 그의 학교를 찾아와 취재를 하고 싶다는 공문이 날아왔다.

 

   "김 선생, 취재를 거절할 수가 없어요. 거절하면 거절했다는 뉴스가 나갈 거니까. 그러면 괜히 잘못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는 인상만 준다는 게 교장 선생님의 판단이예요. 잘못 대처했다가는 일이 더 커진다는 거지요. 대신 인터뷰는 명품이 담임인 김 선생만 하는 걸로 방송국하고 합의를 봤어요."

   "네? 저요?"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벌써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처럼 식은 땀이 흘렀다. 유튜브 영상의 학생들 얼굴처럼 내 얼굴도 모자이크 처리는 해 주는 건가. 나의 방송 컨셉이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초딩을 제지하지 않은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담임으로 정해진 건 아닐까. 그런 인터뷰는 학교를 대표할 만한 자리에 있는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를 편들거나 비난해서는 절대로 안 돼요. 그냥 객관적인 팩트만, 오로지 팩트만 짧게, 아주 짧게 말해야 해요. 불필요한 말이나 김 선생의 생각은 절대 말하지 말아야 해요."

    팩트? 무엇이 팩트인가도 사실 주관적 판단 아닌가. 명품이가 명품으로 도배하고 다닌다는 것도 팩트고 그것이 초등학교 담임이 제지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팩트인데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후자도 팩트라고 인정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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