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둘은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데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문제가 터졌다. 이 문제가 짜증 나는 것은 누구에게 하소연하기에는 치졸하고 그렇다고 그냥 받아들였다가는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 모두 초임 교사 시절 선배 교사들의 결혼식에서 눈살도 찌푸리지 못하고 어색하게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광경을 여러 번 보았다. 담임 교사의 결혼식에 반 학생들이 몽땅 찾아와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고 환호를 지르는지 예식 분위기가 엉망진창이었다. 사회자가 결혼식에 어울리지 않는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좀 조용히 해 달라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교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용이 없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을 애써 감추며 사회자는 힘겹게 예식을 이끌어 갔다. 홈쇼핑에서 파는 짙은 파운데이션에 흔적도 없이 잡티가 덮이듯 신부 입장을 알리는 피아노 소리가 싹 사라져 들리지 않았고 주례 선생님은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거의 샤우팅 하듯 어렵사리 주례를 마쳐야 했다. 신랑신부가 양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눈물을 닦는 경건한 장면 역시 '이뻐요'나 '잘생겼다'는 학생들의 외침에 둘러싸여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어색해 보였다.
그뿐인가.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 간 학생들이 한 테이블에 두 명, 세 명씩 앉아 열 개도 넘는 테이블을 점령했다. 어른들이 한 테이블에 네 명씩 모여 앉도록 타일렀으나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좋은 날 화를 낼 수도 없고 신랑 혹은 신부의 제자들을 함부로 꾸짖을 수도 없는 터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빈 접시를 수북하게 쌓으며 양볼이 터지도록 음식을 먹고 음료수를 마셨다. 하얀 식탁보에 얼룩이 지고 포크와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따지는 게 치사하긴 하지만 경제적 손실도 상당할 것 같았다. 학생들이 축의금을 내 봤자 얼마나 내겠는가 말이다.
그래선지 언제부턴가 교사들은 결혼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게 되었다. 동료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소문이 나지 않도록 같이 쉬쉬해 주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다. 그와 그녀의 신혼여행으로 인한 결근도 병가를 내는 것으로 양쪽 학교 모두 입을 맞춰 두었다.
그런데 오전 수업을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려던 차에 그의 전화가 걸려 왔다. 난감한 목소리로 그가 전한 내용은 이랬다. 그녀 반의 학급회장이 그의 반 학급회장에게 연락해 둘의 결혼식 장소와 시간을 알려 주었단다. 그러면서 두 반이 합동하여 결혼식장으로 가자, 자기네 반은 천 원씩 걷어서 선물을 살 테니 너네 반도 비슷하게 준비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매우 이성적이고 차분한 그의 반 학급회장은 담임인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골치 아프게 되었다. 그는 남녀공학에 재직 중이지만 그녀의 학교는 남고다. 만약 두 반 학생들이 모두 결혼식에 온다면 육십 명 남짓한 하객이 추가되는 것이요, 그중 사십오 명 정도가 남학생인 것이다.
그녀는 종례를 마치고 학급회장을 교실에 남으라 했다.
"회장, 선생님 결혼식에 오려고 한다며?"
회장은 놀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했다.
"우리 반 애들이 다 오는 거야?"
회장은 아마 그럴 거라고 했다. 중간고사가 수요일에 끝나는데 마침 결혼식이 그 주말이라 학원들도 한 주 휴강하여 모두들 시간이 된다고 했다. 그렇겠지. 그와 그녀도 중간고사가 끝나면 성적처리를 재빨리 마감하고 신혼여행을 갈 계획이었으니까.
"회장, 미안하지만 결혼식장이 좁아서 너희들을 다 초대할 수가 없어. 선생님이 결혼식 끝나고 우리 반 따로 맛있는 거 한 번 쏠게. 그러니까 결혼식에는 안 와도 돼."
안 와도 된다고 완곡하게 말했지만 오지 말라는 명령문으로 들리기에 충분하도록 말했다. 그런데 회장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저희는 식장에 안 들어 가도 돼요. 밥만 먹고 와도 돼요. 그리고 뷔페 먹으면 되니까 나중에 따로 맛있는 거 사 주실 필요 없어요. 저희 선물 사려고 벌써 돈도 걷었어요."
느낌이 좀 이상했다. 그녀는 정을 주는 담임이 아니었다. 몇 년 교직에 있으면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 교사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 그녀였다. 심지어 담임을 맡은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담임이지만 학급 학생들과의 친분이 교과 선생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싱글벙글 웃으며 굳이 오겠다고 따박따박 말하는 회장을 보니 결혼식에 온다는 것이 선의인지 문득 의심이 들었다.
돈을 걷었다고? 겨우 천 원씩? 너희들 친구 선물 살 때도 만 원은 쓰지 않아? 삼만 원을 갖고 무슨 선물을 산다는 거지? 천 원씩 내고 몇만 원짜리 뷔페를 먹겠다는 거야? 내 결혼식은 뒷전이고 모두들 모여서 공짜로 실컷 먹고 놀겠다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