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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방패

콩알이에게 준 2개의 방패

by 콩알아빠

부적과 보험의 공통점은
돈을 내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간직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위안을 얻는다는 점도 닮아 있다.

요즘 세상에서 부적은
서명 하나로 완성되는

종이보험인지도 모르겠다.

콩알이와 함께 봄을 지나
어느새 반팔을 꺼내 입는 계절이 되었다.
그 사이 나의 숙제는 태아보험이었다.

12주 전에 가입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몇몇 보험사에서 견적서를 받아두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평일엔 쳐다보지 못했고,
주말에 잠깐 펼쳐보려 해도 수십 페이지의 서류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덮어버렸다.

결국 병원 가기 이틀 전 밤,
와이프와 마주 앉아
와이프의 친구가 가입한 보험과
우리가 받은 견적서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피보험자 : 태아

콩알이를 위한,
우리가 처음 쓰는 계약서다.

상해, 질병, 골절,

우리의 시선과 함께
한 줄 한 줄 따라가는 볼펜은
병명마다 방지턱을 만난 것처럼
턱, 하고 멈췄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혹시 모를 일들을 상상하며
보험을 가입한다는 것.
그 자체가 와닿지가 않았다.

결국 그날 밤, 우리 부부는
무엇을 할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다음 날, 보험 상담사를 만났다.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가 망설이던 항목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어젯밤의 막막함은 조금 가라앉았고,
판단은 그제야 또렷해졌다.

‘그래도 할까.’
‘너무 과한 건 아닐까.’
‘나중에 커서 보장받는다고 하니까…’

결국 우리는,
긴 시간 끝에 종이방패를 만들었다.

이제 막 손발이 생긴
12주 차 콩알이를 위한
우리가 쥐어준 두 번째 방패였다.

얇은 종이 한 장.
하지만 그 안엔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보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종이방패가 쓸모없는 것이길 바란다.

우리가 건네준 종이방패보다
더 단단한 건,
아무래도 엄마, 아빠라는 이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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