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수다, 콩알이
낳는 것보다, 낳고 나서가 더 쫄려
....
사실 제일 쫄리는거는
내가 엄마 할 줄 몰라서 상처 줄까 봐
그게 제일 겁나.
진짜 조금만 게
나만 믿고 세상에 오는 건데
애인생에 실례하면 안 되잖아
-폭싹 속았수다 -
최근에 본 드라마 중
가장 공감이 가는 대사이다.
나도 요즘 비슷한 고민을 한다.
콩알이가 태어나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어떻게 키워야
애 인생에 실례하지 않을지
더욱이 성별이 모르는 상황에서는
나 혼자만의 상상의 바다에 눈을 감는다.
아들이라면,
더운 여름날, 목욕탕에 다녀온 뒤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 나란히 앉아
바나나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
딸이라면,
스무 살까지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쓰고,
“아빠랑 결혼할래요”라는 영상을 남겨
결혼식 날 틀어주고 싶었다.
물론 반은 농담,
반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밤이면,
혼자 소파에 누워
12주 차 초음파 사진을 확대해 들여다보곤 했다.
‘각도법’이라는 것도 배워 분석해 봤고,
심지어 GPT에게까지 물어봤다.
사실 성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딸이 있는 집은 어떨까?’
‘아들이 있는 집은 어떨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혼자 미리 정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던 중, SNS에서 우연히
결혼반지를 실에 묶어 돌려보는
‘실점 테스트’를 봤다.
와이프 손목 위에서 반지가 원을 그리면 딸,
좌우로 움직이면 아들이라는 간단한 테스트.
결과는?
와이프는 딸, 나는 아들.
각도법, 실점, GPT,
그리고 아빠의 직감까지
총동원해 내기를 걸었다.
통계적 근거(?)가 있으니,
일부러 비싼 고깃집으로 정해놓았다.
며칠 뒤,
회사 회의 도중 와이프에게 전화가 두 통이나 왔다.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딸래미 아빠 된 거 축하해!”
“…뭐라고?”
“딸래미 아빠 됐다고! 카톡 확인해 봐.”
딸.
그 단어 하나가
이상하리만치 낯설게
가슴을 건드렸다.
지금도 와이프에게
“오빠는 여자를 몰라...”
소리를 듣는 내가,
이제 여자아이의 아빠가 된 것이다.
그간 재미 삼아했던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모습까지
주책맞게 상상해 버렸다.
그리고 이내,
현실적인 고민이 하나둘 밀려왔다.
‘여자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지?’
‘사춘기에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하지?’
‘와이프랑 딸이 싸우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나는 수염 미는 법은 알아도...
머리는 못 묶는데…’
그날 하루,
답도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마음을 정리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정답이 있는 문제보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더 오래 풀어온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아들이든, 딸이든
그때그때 답을 찾아가면
어떻게든 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법적 효력 있는 계약서 양식부터 하나 구해두자
나, 콩알이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일절 남자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웰컴 투, 딸바보 아빠.
"콩알엄마, 우리 세 식구 고기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