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쓰여졌고, 표면적으로는 순수한 서정시이지만, 그 이면에는 민족의 독립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다. '모란'은 단순한 꽃이 아닌 해방과 독립에 대한 염원을 상징하며, 모란을 기다리는 화자의 모습은 곧 광복을 기다리는 민족의 모습과 겹쳐진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각자의 '모란'이 필 때까지 인내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말하고 있다.
불행에도 로또가 있다 1.
마흔 해를 살며 많은 불행의 순간을 맞이했다.
그 불행을 모두 기억한다면 나 또한 지금의 순간을 감사로, 기쁨으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 지지 않는 날이 있다.
2020년 8월 8일
우리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아름다운 섬진강이 흐른다.
자연적으로 생긴 습지가 있어 새벽에 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운치를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고,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꼭 들르는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사는 삶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이곳에 정착한 지 2년 되는 어느 여름,
갑작스러운 집중폭우로 섬진강댐과 주암댐을 비롯한 주변 댐들이 일제히 긴급 방류로 인해
전라도 몇몇 지역이 수해를 입었다.
그날, 뉴스 특보를 통해 소식을 듣고 걱정스러워 하루 동안 여러 번 강가를 오가며 확인했다.
어스름해진 밤,
차를 타고 강과 작은 천이 만나는 지점에 물을 보러 갔다. 지면과 닿으려면 3미터쯤이나 남았을까,,,
“그래도, 설마 저기가 넘치겠어?”
남편과 나는 넘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늦은 밤까지도 계속되는 뉴스 특보에 약간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과 지대가 높은 곳으로 대피해 잠을 잤다.
8월 9일 아침,
남편은 눈을 뜨자마자 동네로 갔다.
전화가 왔다.
“빨리 와서 물건을 챙겨 나와야 할 것 같아.”
당황스러움과 다급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급하게 도착한 우리 동네 골목길,
골목길 사이사이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무엇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누전 차단기도 내리지 못했다.
집을 가린 통유리창을 제외한 바깥과 연결되는 모든 문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짐을 들고 주차장에 있는 차까지 왔다 갔다 옮긴 지 10분 정도 되었을까,
물은 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앞집 어르신은 귀가 안 들려서 정황을 모르고 나오지 않고 계셨다.
우왕자왕,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시는 어르신을 모시러 가야 했다.
대피하라는 소리는 울리고, 물은 들어오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골목길에서 벗어나 주차장에서 물이 차오르고 있는 골목길을 보며 나는
주저앉고 싶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았다.
다행히 하루 만에 물은 빠졌다.
그날의 하늘은 너무도 맑았다.
그토록 머금은 설움을 다 쏟아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 야속하게도 푸르렀다.
물이 빠진 집은 난장판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남편과 나는 닥치는 대로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끝에 나는 발을 다쳤다.
처음엔 아픈지도 몰랐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선명한 피를 보고 신랑이 놀라며 발견한 것이다.
바로 병원으로 갔고, 결국 몇 바늘을 꿰매야 했다.
발을 치료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신신당부하듯 말씀하셨다.
“발이라서 자꾸 움직이면 염증이 금방 생겨요. 절대 조심하세요.”
몇 바늘 꿰맨 발에 더러운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장화를 신고, 목발을 짚고 집을 정리해야만 했다.
도움을 주시기 위해 오신 많은 천사들을 보고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160cm인 내 키로 비하면 귀 밑가지 물이 찼으니, 족히 145cm까지는 집이 잠겼었다는 말이다.
호스를 가지고 온 집안에 샤워시키자 그래도 말끔해진 고마운 집이었다.
방 내부는 완전히 새롭게 고쳐야 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그렇게 집 안에 모든 가구, 집기, 도구, 생활용품을 버리고 정리하기만도 몇 일이 지났을까?
내 발은 쉴 틈이 없었고, 당연히 새살이 돋을 기색이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우리 첫째는 7살, 둘째는 5살이었다.
여전히 엄마 곁에 있고 싶고 요구사항도 많은 한창때.
정리하랴,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랴, 아픈 발을 치료하랴,
내가 지쳐 보였는지, 보다 못한 신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갔다.
불행은 먼저 입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막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