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800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온 약속,
마도 1호선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태안의 거친 바닷바람을 뒤로하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거대한 고선박 한 척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차가운 갯벌 속에서 800년을 견뎌낸 마도 1호선. 그 갈라진 나무 틈 사이에는 이름 모를 고려 사공들의 거친 숨소리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화석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1208년의 어느 봄날이었을까요.
전라도 나주와 해남에서 곡식을 가득 실은 배가 닻을 올렸습니다.
목적지는 멀고 먼 개경(개성). 사공들은 서해에서 가장 험하기로 소문난 '안흥량'을 마주하며 정성껏 제사를 지냈을지도 모릅니다.
"제발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소서." 하지만 야속하게도 바다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삼켜버렸습니다.
배는 순식간에 차가운 심해로 가라앉았고, 그렇게 고려의 한 페이지는 어둠 속에 잠겼습니다.
전시실에 정갈하게 놓인 목간들을 바라봅니다. 비록 글씨는 흐릿해졌지만, 그 안에는 "누구에게 이 전복젓갈을 보낸다"는 구체적인 약속이 적혀 있습니다.
800년 전 누군가는 이 배가 도착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겠지요.
볍씨와 보리, 그리고 정성껏 말린 홍합과 전복들... 그것은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누군가의 땀방울이자 누군가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줄 소중한 마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복원된 마도 1호선의 돛 은 이제 바람이 아닌 우리의 시선을 받아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비록 항해는 중단되었지만,
이 배는 '바닷속의 타임캡슐'이 되어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800년 전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배 위에서 장기를 두며 어떤 농담을 주고받았는지,
그 소소하고도 위대한 삶의 기록들을 말입니다.
전시관을 나서는 길, 발굴 당시의 잠수사들 이 겪었을 경이로움이 마음속에 잔잔히 물결칩니다. 어두운 심해에서 이 배의 끝자락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들은 아마 800년을 건너온 뜨거운 악수를 느꼈을 것입니다.
마도 1호선은 단순한 난파선이 아닙니다.
비록 목적지인 개경(개성)에는 닿지 못했지만, 8세기를 돌아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항구에 무사히 닻을 내린 '영원한 항해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