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캠퍼스
응답하라 1988~1998 학번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캠퍼스
마주 앉은 술잔 사이로 흐르는 열한 자릿수
학번의 기억
가끔 서랍 깊숙한 곳에서 빛바랜 학생증을 꺼내 봅니다. '92'라는 숫자가 선명한 그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34년 전의 공기로 나를 데려다줍니다.
92학번인 내가 대학 문을 처음 열었을 때, 과실(科室)에서 나를 반겨주던 이들은, 88~91학번 선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라는 긴 터널을 지나 복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을 때, 교정에는 96학번 새내기들의 풋풋한 웃음소리가 가득했죠.
나의 20대는 그렇게 88학번부터 98학번까지, 11개 학번의 인연들이 촘촘하게 엮인 한 편의 장편 소설이었습니다.
신입생 시절, 88학번 선배들은 거대한 벽이자 등대였습니다.
최루탄 가스가 채 가시지 않은 교정에서 그들은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했고, 동시에 후배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며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야, 92학번! 이리 와서 한 잔 해." 투박한 그 목소리에 담긴 애정은, 세상 물정 모르던 스무 살의 나를 조금씩 어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선배들과 함께 홍대거리, 신촌거리 그레이스 백화점, 이대거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압구정 로데오, 방배동 카페골목, 강남역 뉴욕제과, 명동, 남대문, 충무로, 퇴계로길, 남산길, 신림동 순대촌, 신당동 떡볶이집, 동해바다, 정동진, 설악산, 등등..., 추억이 많았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동아리 친구들과 떠났던 강원도 무전여행입니다.
돈 한 푼 없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떠났던 길.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어느 이름 모를 마을 이장님 댁 마당에서 얻어먹던 옥수수의 맛을 기억합니다.
밤이면 쏟아지는 별빛 아래 동기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불렀던 민중가요와 유행가들,
"우리 나중에 뭐 해 먹고살까?"라는 막연한 고민조차 예술이 되던 밤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발바닥에 잡힌 물집을 짜주며, 평생 갈 '혈맹'을 맺었습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98학번 후배들이 입학했을 때, 나는 어느덧 '학번 높은 복학생 선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88학번 선배들처럼 든든한 등대였을까?
강의실 뒤편에서 리포트, 졸업논문을 쓰다가 창밖을 내다보면, 삐삐 번호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는 후배들의 모습 너머로 나의 92년 봄이 겹쳐 보였습니다.
시작과 끝, 그 11년의 세월이 그곳에 고스란히 고여 있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1999년, 캠퍼스는 '밀레니엄'이라는 낯선 단어로 들썩였습니다.
이제는 이름 대신 학번으로 기억되는 그대들에게
이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고, 사회라는 거친 파도를 견뎌내는 중견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축제 기간 주막의 시끌벅적한 소음, 동아리방구석에 놓여있던 낡은 기타, 그리고 "선배님!" 하고 부르며 달려오던 그 환한 미소들.
응답하라, 1988학번 ~ 1998학번,
우리는 서로의 청춘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준 목격자이자,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함께 써 내려간 공동 저자들입니다.
그 시절 그대들이 곁에 있어주어 나의 20대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지금은 모든 작가님들과 공감하는 브런치 캠퍼스 친구가 있어서 좋습니다.
https://youtu.be/Dic27EnDDls?si=vfkc_JNCxuH_2Of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