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온 초보 올레꾼 2명

2023 올레

by Cielo

2023.7.21(금)


올레 첫날이 시작됬다.

새벽내내 호텔의 습함때문에 아침부터 꿉꿉하게 시작했으나 왜인지 모르게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길은 진짜 상쾌 했다. 보통 제주도의 동쪽인 1코스부터 시작하는게 정상이긴 하나 일분일초가 아까운 우리는 제주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18코스를 기점으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었다. 우리의 올레길의 첫코스는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길이었다. 우선 18코스의 첫 스탬프부터 찾는게 일이었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니 모든 사람들이 가방 멘 두사람을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래 외국인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배낭도 매고 꼭두새벽부터 제주도 시내를 걷고 있으니

나도 쳐다볼것 같긴하다.


첫스탬프 장소에 도착해서 스탬프를 찍던 와중 어떤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알고보니 그분은 올레길 센터분이셨고 출근길에 우릴 마주한것. 인상도 너무 좋으시고 우리 둘의 사진도 찍어주셨다.

너무 정중하게도 나와 짝궁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어봐주시고 (난 대놓고 한국사람 같지만, 사실 이게 더욱 멋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기분좋게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셨다.

인상 깊었던건 "오늘은 오늘 하루 뿐이다." 라는 멋진 말씀을 해주시며 그렇게 길을 시작했다.


도심에서 지나는걸 느껴가며 걸어갔을때쯤 사라봉을 마주했다. 그 수많은 계단들과 아직 풀리지 않은몸. 나는 그 순간 얼마나 많은 후회와 욕을 했는지 모른다. 왜 내가 어쩌자고 또 제주도까지와서 걷는건지 남들처럼 이쁘고 좋은데 신혼여행이나 갈껄. 사람은 왜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건지. 이제 서른이넘었는데 무슨 패기로 내가 10키로 가방을 매고 걷고 있는건지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쏟아지고 있었다.


짝궁에게도 제대로된 짜증을 내가며 잔뜩 예민해져있었지만 올라가는길에 마주친 아저씨가 "다 왔어요!!" 라며 힘내라고 응원해주셨다.


근데 알고 보니 다온게 아니었다. 아저씨.. 다온거 아니잖아요..




정말 온갖 땀을 다흐를때쯤 바다를 보니 너무 상쾌하긴 했다. 조금 더 가고 있는 와중에 앞서 걷던 올레꾼 2명도 볼 수 있었다. 두분다 큰 가방이 없다는게 너무 부러웠다. 하지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모두 올레길을 묵묵히 걸어가는게 잠시 까미노의 추억이 생각나더라. 중간지점인 삼양해수욕장은 서핑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서핑 구경에 정신이 팔려 다시 찬찬히 보아하니 웨딩촬영을 찍었던 곳이었다. 작년 12월 겨울에 추운해변에서 미친듯이 뛰어다녔는데 6개월만에 다시 돌아와 배낭을 매고 걷는게 좀 신기하고 웃겼다. 짝궁과 촬영을 추억하며 장난을 치다가 중간 스탬프가 있다는걸 깜빡하고 부랴부랴 뒤로 다시 돌아가 스탬프 박스를 찾아냈다.


아무래도 올레의 첫날은 아직 모든것에 서투른거 투성이다. 가방의 오른쪽 주머니에 필름카메라를 넣은것도 같은 의미로 초보였다. 필름카메라의 네모진 부분이 어찌나 나의 치골을 때리던지 나중엔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돌아 눕지도 못했다.


또 하나, 출발하기 급급해서 아무것도 안먹고 올레길을 시작했고 어차피 어디에나 카페는 있겠지 하는생각은 제주도에서 한참 틀린 생각이었다. 바닷가 쪽에 은근 문을 닫은곳도 의외로 많았고 아침 10시부터 열지도 않은 카페들이 꽤나 많아 허탕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다행히도 기대도 안한 곳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찾아 빵과 커피를 든든하게 해결하니 우리가 배고픔에 눈이 멀어 루트를 빠져나왔다는것도 나중에 알았다. 정석중에 정석인 짝궁은 다시 길을 찾아가자 했고 결국 우린 돌아서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역시 달콤하고 맛있는것들은 나를 잠시 길의 다른곳으로 이끌지만 잠깐 즐기다 돌아가면 그거면 되는거다!


신촌포구 쪽에는 우리가 12월에 묵었던 에이비엔비와 가까워 추억여행을 할수 있었고 그리하야 바다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던 그 스팟에서 이번엔 맥주 대신 배낭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당시에도 카페 옆에서 발견한 올레 리본을 보고 " 우리 나중에 올레길 와보자" 라고 우연 찮게 말햇었는데 진짜 오게 될줄은 몰랐지. 결국 우리를 제주도로 이끌었던 올레 리본과도 다시 사진을 찍어보았다. 사진은 정말이지 땀에 절어 힘들어보였다. 조천만세 동산쪽에 도착하니 올레센터분께서 너무 친절히 반겨주시고 우리둘의 사진도 찍어주셨다.


바로 옆 편의점에서 맥주도 한잔 찐하게 하고 오늘하루의 목표를 완주한 맥주의 맛은 순간 10년 전의 스페인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것같았다. 그래 오늘은 19.8KM 를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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