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을 넘은 두번째 한국인

2012 까미노

by Cielo

2012. 7. 25 (수)


아침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거에 꽤나 긴장했다.

혼자 차가운 아침을 맞으며 걷는다는 게 나에겐 익숙하지 않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순례자들이 보이니

괜히 걷는 게 외롭지가 않았다. 아침부터 열려있는 빵집이 보여 바게트도 사보았다. 그 주변의 순례자들도 벌써 가방에 바게트 하나씩은 꼽은 채로 돌아다니는 중이다.


순례길의 초입부에 사람이 많길래 가까이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무료로 빵과 과일, 초콜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바로 오늘이 순례자의 날이었던 것이다. 내가 출발하는 날이 마침 순례자의 날이라고? 이렇게 운이 좋다 내가.


주전부리를 얻고 난 뒤에는 진짜 피레네를 넘어야 한다는 걸 알아챘다. 1400m!

이때까지만 해도 난 1400m의 위력이 어떤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몸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채 걸으니 죽을 것 같았다..

걸으면서 별 생각을 다했다.


내가 이걸 왜 하지?? 아무도 강요한 적 없는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난 여기에 와있을까


끝도 없는 산길에 후회도 해봤다.

하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보이는 탁 트인 전경. 다시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지치면 쉬고 걷고 싶으면 걷고 온전히 나의 의지 하나만으로 이 여정을 이끌어가야 했다.


산을 넘어가다 보면 프랑스 국경에서 스페인 국경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때 문자가 따릭 울리기 시작한다.

겨우 한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 문자엔 이제 스페인요금제로 변경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딱 그 국경의 자락에서 커피와 음료수를 팔고 있는 트럭이 보인다.

여기가 프랑스의 마지막 카페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이런 곳은 놓칠 수 없지. 가까이 가서 주문하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셨다. 트럭에는 여러 국가가 쓰여있고 아저씨는 오늘하루 몇 명이 어느 나라에서 와서 지나가는지 체크하는 듯했다.


내가 두 번째 한국인이다?

당시엔 이 첫 번째 한국인이 너무 궁금했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됐지만!


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훨씬 힘들었다. 감히 말하자면 내가 내려왔던 인생의 모든 내리막길중에 가장 힘들고 잔인했던 내리막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첫 까미노가 그렇게 끝이 났고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서 도착해서는 어떤 남자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알고 보니 트럭에 쓰여있었던 그 첫 번째 한국인 었다!

일명 B 군은 알고 보니 고등학생이었고! 심지어 자전거로 까미노를 걷고 있는 아주 당찬 친구였다. 자전거를 타고 오다 크게 다쳐서 응급실까지 실려가는 스토리를 들려주었고 나에게 너구리 컵라면까지 나눠주었다.

교환학생을 하면서도 돈이 없어 라면을 못 사 먹었던 나에게 라면까지 나눠주는 천사 같은 친구였다. 안 그래도 난 독일에 있기에 한국인이 반갑기도 하여서 우린 같이 걷자고 다짐했고 론세스바예스 시내 구경도 했다.


우연히 들어간 성당에서는 미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미사도 보고 와인도 마시게 되었다. 미사내용은 당연히 하나도 몰랐지만 대충 순례자의 날을 기념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미사 중간엔 각 나라의 이름을 부르는데 성당 안에 모든 국적의 순례자들이 본인들의 나라가 호명될 때 소리쳤고, B군과 나도 코리아! 를 외치는 순간 창피함을 무릅쓰고 환호했다.


알베르게로 돌아가서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어떤 여자분이 있어서 말을 걸어보았는데 역시나 한국인이 맞았다. 짧지만 인사를 나누고 같이 걷기로 약속하고 그렇게 까미노의 첫째 날이 저물어 갔다.


정말 나 혼자 걸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국인 2명도 만나고 아주 외롭지만은 않은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어 괜히 설레기 시작한다.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산인데 그것도 해내다니! 너무 뿌듯하다. 앞으로 더 힘내자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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