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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25. 2023

명절 끝에 결국 싸우고 말았다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남편과 와인을 한 잔 마시며 기분 좋게 연휴를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나는 이번 명절이 매우 즐거웠다고 말했다. 전을 부치다가 잠든 사이에 전이 다 부쳐져 있었고, 설거지를 남편이 도와줘서 정말 편했다고. 그랬더니 남편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좋았냐? 나는 아주 민망해서 혼났다. 잠깐 잔다더니 어떻게 끝까지 자냐? 그럴 거면 미리 언질을 해 주던가..."


"아니, 내가 계획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지. 어머니도 나 깨우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던데?"


"너한테 그런 거 아냐. 재민이 깨우지 말라고 한 거지."


아.. 내가 착각했구나. 어머니가 깨우지 말라고 한건 내가 아니라 같이 자고 있던 아들이었어...


억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명절 때마다 늘 했던 전 부치는 , 한번 안 했다고 이렇게까지 원망받을 일인 건가. 전만 안 부쳤지 저녁밥도 내가 했고, 다음 날 아침에 떡국도 내가 끓였고, 설거지도 매번 내가 했는데... 난  집에 노예 계약서라도 썼단 말이냐!


남편은 시댁을 가기 전부터 내가 예민했다고 말했다. 그래, 난 조금이라도 늦게 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댁 가서 먹어도 되는 점심을 굳이 중국집에서 먹고 가자고 했던 거다.


"자기 뭐 쌓인 감정이라도 있는 거야?"


편의 질문에 결국 , 말하고 싶지 않았던 묵은 이야기를 쏟아내고야 말았다. 어머니와 딸처럼 지내고 싶어 자주 찾아뵙고 금전적인 도움도 많이 드렸는데 딸과 너무 다르게 대해서 실망했다.  형님하고 자기는 일 안 시키냐, 형님 일본에서 오고 나서부터 나 혼자 일하는 게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는 왜 친정만 가자고 하면 바쁘다고 하냐. 자기가 그러니까 나도 시댁 가기 싫어졌다 등등.


우리 앞에 앉아있던 두 딸이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몇 마디 반박했지만, 치사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입을 다물고 앉아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어머니가 나 잘 때 깨우지 말라고 한 줄 알고 기분 좋았었다. 그래서 부치다 말고 낮잠 잔  죄송하게 생각했고, 어머니가 형님한테 일 안 시키는 건 내가 더 잘하니까 그러시는 거라고 마음먹기로 했었다. 안 했으면 좋았을 말을 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한 시간쯤 집안에 정적만이 흘렀다.




밖에 나갔던 아들이 들어왔다. 남편이 아들을 불러놓고 학습 관련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들이 국어 학원을 추가로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이 나를 불렀다.


"왜?"


그때 나는 얼굴에 팩을 하고 있어서, 마치 오페라의 유령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남편이 국어학원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웃지 마. 나 화났어."


그렇게 말하는 내 말 끝에도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다. 아들 학원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슬쩍 다가와서 말했다.


"자기야, 내가 잘못했어."


"내가 그냥 용서해 줄 수는 없고, 이거 하나 주문해 줘."


남편에게 낮에 광고에서 본 아이크림 링크를 보냈다. 그리고 명절에만 반짝 효자가 되는 남편을 위한 한마디 조언을 덧붙였다.


남편이 미운데 시부모한테 잘할 며느리는 없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0년 전 아들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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