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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29. 2022

남편은 모르는 이야기

"야, 세상에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어딨냐?"

20여 년 전, 시어머니를 처음 봤을 때 성격이 좀 깐깐한 친정엄마에 비해 편안하다고 느꼈다.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결혼하고 처음 탄 적금을 형님 때문에 진 빚을 갚으시라고 자진해서 드렸고 친정보다 시댁을 더 자주 갔다. 딸과 연락이 끊긴 것이 안타까워 딸처럼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둘째를 낳고 어머니께서 산후조리를 해 주신다고 했을 때 거절했어야 했다. 어머니는 산모가 미역국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기름진 고기를 넣고 한 들통 끓여놓은 미역국과 역시 한 들통 볶으셨을 것 같은 무나물만 매끼 주셨다. 아이 낳고 그렇게 입맛이 떨어지긴 처음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지내다가 며칠에 한 번씩 시댁에 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고기 좀 사 오라고 했다. 남편이 분명 고기를 사 왔는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미역국에 무나물뿐이었다. 며칠 뒤 남편이 오자 밥상에 고기반찬이 올라왔다. 남편 없이 시댁에 있어보니 나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랐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시어머니를 향해 활짝 열려있던 내 마음의 문이 많이 닫혀 버렸다.


4년 전어머니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라 수술만 받으면 완치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신 모습을 확인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남편의 손이 갑자기 눈으로 가더니 흑 소리가 났다. 울고 있었다. 아이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는 얄미운 시어머니 지만 남편에게는 소중한 분이고 몸도 안 좋으시니 더 잘해드리자 싶었다. 마음의 문을 다시 조금 열어보았다.


일본에 살던 형님이 재작년에  돌아왔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사업에 실패하고 도망치듯 일본으로 가서 살았었던 남편의 누나이다. 형님이 와서 달라진 건 나 혼자 설거지를 하는 동안 티브이를 보고 웃어대는 사람이 1인 늘어났다는 것뿐이었다. 전에는 나 혼자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딸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시어머니가 또다시 얄미워졌다.


십수 년의 세월 동안 그렇게  나의 마음의 문은 조용히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낡아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셀. 프. 효. 도.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은 욕심에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마음을 쓰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시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형님과 남편에게 양보하고, 난 12년째 올케의 얄미운 시어머니일 것 같은 우리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키지 않는 안부전화를 하지 않고, 형편이 안 좋은 시어머니 용돈을 친정엄마 용돈보다 더 넣지 않으며, 즐거운 주말에 시댁이라는 불편한 공간에 되도록 나를 보내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 아버님 생신이라 시댁에 갔었다. 염색을 안 한 시어머니의 머리가 하얗다. 많이 늙으신 게 보인다. 우리가 타고 가는 차를 보고 서 계신 모습을 나도 오래도록 백미러를 통해 보았다. 단하게 나이 든 한 노인이 서 있을 뿐이었다낡아버린 내 마음의 문이 다시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미운 정이 무섭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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