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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r 09. 2023

미안, 너 보이스피싱 당했을 때 쌤통이었어


  그녀는 내가 살던 아파트단지 내에 작은 피부관리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 어려서 나를 언니라 불렀고 나는 그냥 편하게 반말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피부 관리를 받으러 갔다. 그녀의 실력이 좋아 손님이 항상 많았다. 몇 달 다니면서 보니 아르바이트하는 분이 자주 바뀌었다. 성격 급하고 할 말 다하는 그녀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솔직한 성격이 나쁘지 않았기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 동안 내가 일을 해 보면 어떨까 하고 그녀에게 물었더니 그녀도 좋다고 했다.

"시급 얼마 드려요?"

"요즘 최저 시급이 얼마지? 오천 원?"

2013년 당시 최저시급은 4,860원이었다.

"에이~언니. 그건 자격증 있는 사람 얘기고요."

"아, 그래? 그럼 얼마 줄래? 삼천 원?"

"에이~그건 쫌..."

"알아서 줘."

난 얼마를 주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정말 시급 3천 원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니, 어쩜 그렇게 눈치가 빨라요?"

그녀는 나를 매우 흡족해했다. 나는 그녀 옆에 서있다가 필요할 것 같은 따뜻한 수건이라든지 팩 재료들을 배합해서 척척 건네주었다. 처음에는 수건정리 등의 잡일만 시키다가 마사지 후 마무리로 스킨, 로션을 손님 얼굴에 바르는 일을 시켰다. 얼마 후 그녀는 내게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본격적으로 얼굴 마사지 기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에 해보라고 하더니 괜찮다 싶어 지자,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손님을 제외하고는 내게도 마사지를 하게 했다. (원래 자격증 없는 사람이 하면 안 됨)


  집에만 있다가 일을 하러 나가는 게 즐거웠다. 원래 주중에만 하기로 했지만 그녀가 바쁘다고 연락하면 주말에도 나가서 일했다. 남편과 주변 엄마들이 3천 원은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그녀는 가끔 새로운 재료나 기계가 들어왔을 때 내 얼굴에 실습을 했는데 그것이 고가의 시술이라며 내게 주는 혜택인 듯 말했다. 거기다 자신이 내게 알려준 마사지 기술을 남들은 몇백만 원씩 내고 배우러 다닌다고도 했다. 샵에는 손님이 계속 늘었고 나는 일을 꽤 잘했지만 내 시급은 계속 3천 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처음 생각과는 달리 통장에 아르바이트비가 찍히면 마음이 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벼룩시장에 광고를 냈다. 샵을 꼭 팔겠다는 생각은 아니고 권리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며 꽤 비싸게 올려서 내놓았다. 광고를 낸 지 얼마 안돼 부산의 한 부동산 업자에게 연락이 왔다. 돈 많고 나이 많은 유부남이 부인 몰래 세컨드에게 샵을 차려주려고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알아보는 중이란다. 그녀는 시세보다 훨씬 비싼 금액에 샵을 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관심 갖는 사람이 나타나자 매우 들떠 있었다.


  며칠 뒤에,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했는데 그녀가 나더러 먼저 가서 주문하고 있으라고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서 거의 다 먹어가는데도 그녀가 오지 않았다. 뒤늦게 그녀가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그 부산 사는 돈 많은 남자의 세컨드한테 샵을 넘기게 됐다고 신나 있었다. 난 조금 기분이 상했다. 나한테 한 번쯤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돈 때문에 일하는 거 아니란 거 알아서 시급 적게 주는 거면 이 샵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의 내 기분이 어떨지도 알 것 같은데 배려 없는 그녀의 태도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잘 됐네.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그 부동산업자가 상가등급평가원(?) 이름도 생소한 기관에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 상가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증해 주는 기관인데 수수료가 무려 500만 원이란다. 일단 돈을 내고 등급을 받아놓으면 부동산 업자가 그 돈을 주겠다고 했단다. 부동산 업자와 그 돈 많은 유부남은 지금 바로 부산에서 출발해 샵으로 오기로 했단다.


  엥? 딱 들어도 이상한 내용이다. 수수료가 500만 원짜리 보증기관도 이상하고, 본인이 내야 할 수수료라면 계좌이체 하면 될 것을 이쪽에서 먼저 내라는 것도 이상하니 전화를 걸어 보라고 했다. 운전 중이라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단다.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그 남자는 받지 않았다. 그녀는 부산에서 그들이 도착하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 지날 때까지 미련을 못 버리고 기다리다 술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일 잘하는 알바한테 주는 시급 5천 원이 아까웠던 그녀는 결국 일면식도 없는 남자에게 500만 원을 떼이고 말았다. 그녀는 왜 굳이 나를 식당으로 먼저 보내고 그 일들을 처리했을까? 그녀 생각에도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던 거다. 그녀는 샵을 비싸게 팔고 싶은 욕심에 자신의 눈과 귀, 그리고 혹시 모를 주변의 의심과 간섭조차 막아버린 거다.


  난 그 일이 있은 뒤로 흥미를 잃어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오늘 어느 피부관리실 앞을 지나가다 문득 그녀 생각이 났고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미안, 나 사실 네가 보이스피싱 당했을 때 쌤통이라고 생각했어.

그녀가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https://www.fss.or.kr/ 보이스피싱 지킴이 : 예방, 대처방법, 피해사례 등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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