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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y 02. 2023

세 번의 제왕절개로 낳은 금쪽같은 내 새끼들

고생했어, 내 자궁


  번째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지 9년이 지났다. 늘어진 뱃살을 들어 올려 출산의 흔적을 들여다본다. 17년 전  수술 후에는 관리를 제대로 못해 지렁이를 연상케 하는 켈로이드 흉터가 남았었다. 2년 뒤 두 번째 수술로 지렁이를 떼어낼 기회를 얻었다. 연고를 꼼꼼히 바르는 등 신경을 썼더니 뾰족한 송곳에 피부를 살짝 긁힌 듯한 하얀 실선만 남았다. 이대로 끝일 줄 알았으나 몇 년 뒤 세 번째 수술을 하게 됐다. 같은 자리를 세 번 잘라내고 당겨 꿰매니 피부가 살짝 안쪽으로 말려들어가고 만져보면 다른 부위와 달리 감각이 무디게 느껴진다. 최종적으로 내 배에는 연한 갈색의 선이 남아있고 그 부분에서 살이 접혀 덮여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수술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제왕절개는 정확히 말하면 배를 가른다기보다는 더 아래쪽 치골 사이를 가른다. 비키니를 입어도 보이지 않을 위치인데 비키니를 입을 일은 만들지 못했다.



  첫째를 낳을 때, 저녁 식사 후 진통이 시작돼 병원을 갔다. 보통 첫 아이 출산 시 너무 일찍 병원을 가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여 최대한 참다가 갔다. 간호사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했다. 아이가 두 시간 내로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난 별로 안 아팠는데, 나 되게 수월하게 낳으려나 봐' 기대하며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당시 인기였던 드라마 '주몽'을 보다가 진통을 견디다가 진통이 사라지면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간호사는 계속 두 시간 뒤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저녁 먹은 걸 다 토하고 분만촉진제를 맞고 처음 보는 의사가 와서 양수를 터트리고 제대로 힘주라고 혼나고 뭔가 분주하고 믿음이 안 가는 상황들이 이어지다가 아침이 됐다.



  "저 그냥 수술해 주세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이 한마디를 외쳤고 남편은 '좀 더 애써보지. 자연분만이 좋다던데'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 씁쓸한 표정으로 수술동의서에 서명했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덜덜 떨었다. 가운의 앞 단추가 다 풀어진 채 누워있었지만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았고 나도 부끄럽다기보다는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나 처음 본 아이의 얼굴이 빨갛고 머리끝이 뾰족했다. 나올 준비를 하느라 그랬나, 고구마 같았다.


  둘째 때는 브이백(첫째를 제왕절개 한 산모가 둘째 때 자연분만 하는 것)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철학관에 가서 좋은 날을 받았다. 부분마취를 해서 아이가 나오자마자 안아볼 수 있었다. 아이를 이렇게 편하게 낳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아이도 편하게 나와서 그런지 뽀얗고 예뻤다.


  막내를 낳을 수술날짜를 5월 1일로 잡았다. 기억하기 쉽고 나중에 직장을 다닌다면 생일이 휴일이라 좋을 것 같았다. 다니던 병원에서는 노동절이라도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수술을 며칠 앞두고 아이의 심장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됐다. 대학병원은 노동절에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막내딸의 생일은 5월 2일이 됐다. 심장 이상으로 큰 걱정을 안고 태어난 막내딸은 지금은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게 열 살 생일을 맞았다.



  막내를 낳을 때 나는 내 엄마뻘 정도의 담당 의사에게 한 가지 시술을 권유받았다. 그분이 우리 부부를 보며 물었다.

"또 낳을 거야?"

"아뇨"

"그럼 묶지 그래?"

"남편(정관수술) 시키려고요."

"배 짼 김에 묶어버려. 뭐 하러 남편을 시켜?"

"그게 한 번에 되는 거였어요? 그럼 그게 낫겠네요."

"하하하"

내 웃음은 씁쓸했지만 남편의 웃음은 유쾌했다. 둘째 출산 후 남편에게 정관수술을 권했지만 남편은 무섭다며 미루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겁 많은 남편을 구원한 것이다. 결 나는 세 번째 제왕절개와 난관을 묶는 시술을 함께 받았다.



"엄마 뱃살 좀 빼야겠다."

언제는 슬라임 같아서 좋다더니 이제는 뱃살을 빼라는 내딸에게 말했다.

"이거 살 아냐. 그냥 껍질이야. 너 풍선 크게 불었다 바람 빼 본 적 있지? 바람 빠지면 원래 크기로 작아져?"

"아니"

"엄마 배는 풍선처럼 커졌다 작아졌다를 세 번이나 반복했어. 그래서 피부가 원래대로 작아지지 않은 거지 살찐 게 아니라고."

"에이,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다. 대책 없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정신없이 살다 보면 매 순간이 두려움이고 돌아서면 외로움이고 그렇단다.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달콤한 것들을 찾았지. 넌 이해 못 하겠지만 예를 들면 맥주 같은 것들.



  5월 2일, 오늘은 막내딸의 생일이다. 뱃살을 들어 올려 이 예쁜 아이가 내 안에서 나왔다는 증거를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정말 고생했어, 내 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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