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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13. 2023

생일 밤에 눈물을 흘린 이유


"엄마, 생일선물 뭐 갖고 싶어?"

중3 둘째 딸이 내게 물었다.


"음... 얼마짜리 사줄 거야?"


"그런 거 묻지 말고 그냥 갖고 싶은 거 말해봐."


"음... 오빠 얼마 전에 용돈 모아서 무선 헤드셋 샀잖아. 지하철에서 보니까 요즘 애들은 다 헤드셋 쓰는 것 같더라. 엄마도 하나 갖고 싶어. 너무... 비싸지?"


딸이 그걸 살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주는 용돈은 보름에 3만 원이다. 친구들이랑 마라탕에 버블티 두어 번 사 먹으면 없어질 돈이다.


"엄마, 선물~"

며칠 뒤 생일날, 딸이 예쁘게 포장한 상자를 내밀었다.


"고마워. 진짜 헤드셋 산 거야?"

"어, 이거 쿠*에서 젤 인기 많은 거야. 이거 접히는 거라 휴대하기도 편해. 좋지?"

"좋네. 이거 비쌀 텐데 돈이 있었어?"

"엄마 선물 사줄라고 용돈 모아놨었지. 그런데 이거 배터리도 30시간 짜리야. 좋지?"

"응, 정말 좋다."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들어 보니 주변 소음이 차단돼 몰입이 잘 됐다. 딸이 또 묻는다.

"엄마 어때? 좋지?"

"응, 진짜 좋다."


이후로도 딸은 몇 번이나 물었다.

"엄마 좋아? 좋지?"

그렇게 내가 선물을 정말 맘에 들어하는지를 계속 확인하고 기뻐했다. 


헤드셋 받고 딸 생일엔 아이폰을 사주게 될 것 같다는 불안한 기분이 살짝 들었지만, 오늘은 그냥 좋아만 하는 걸로.



고깃집을 하는 남편의 지인이 새해선물로 소고기를 보내줬다. 남편이 미역국을 끓이고 고기를 구웠다. 숙성된 고기라는데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아이들이 마지막 고기 한 점을 내게 양보했다.


"그래, 오늘은 생일이니까 엄마가 먹을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 둘째가 설거지를 하고, 첫째가 쓰레기 정리를 한다. 남편은 전날 사다 놓은 파 한 단을 썰고 있다. 막내는 피아노를 친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헤드셋을 쓰자 소음이 사라진다. 음악을 틀고 눈을 감는다. 효신님이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내방 침대가 아니라 구름 위에 누워있는 느낌이다.


박효신과 2020년 세상을 떠난 재즈가수 박성연 님이 함께 부른 <바람이 부네요>를 듣는데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 세상엔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바람이 부네요>

바람이 부네요 춥지 않은가요 밤 깊어 문득 그대 얼굴이 떠올라
가슴 뛴 그대 미소 떨리던 그 목소리 많은 상처에 얼어붙은 내 마음 감쌌던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
세상엔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모두~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마주 봐요
처음 태어난 이 별에서 사는 우리 손 잡아요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남편이 들어와 코를 골기 전까지는...

파 한 단을 이렇게 빨리 썰 줄이야.

다음 생일에는 파를 석 단 정도 사놔야겠다.



P.S. 예전에 남편이 비싼 중식칼을 갖고 싶어 하길래, 파를 살 때마다 이쁘게 썰어 냉동시켜 두는 조건으로 하나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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