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Aug 28. 2023

게으름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재택근무 두 달, 이건 아니잖아


내가 그동안 회사를 다닌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는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좋으면서도 생활이 나태해질게 뻔해 걱정이 됐다. 재택근무는 근무지가 집으로 바뀌었을 뿐 쉬는 게 아니니 출근할 때와 똑같은 컨디션으로 있어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7월 3일 재택근무 첫날, 출근할 때처럼 6시에 일어나서 아침일기를 쓰고 간단한 집안일을 했다. 첫째가 등교를 하고 막내를 깨우고 둘째도 등교를 했다. 세수하고 얼굴에 광을 좀 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막내딸이 등교할 때 함께 집을 나섰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에는 오전에 사다 놓은 재료들로 저녁을 미리 만들었다. 오후에는 집중해서 업무를 하거나 글을 쓰고 막내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을 걸 챙겨줬다. 밤 11시~12시쯤에 잠자리에 들며 출근 시와 똑같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3일 정도 지난 뒤에 막내딸이 말했다.

"엄마, 나 학교 안 데려다줘도 돼. 혼자 갈게."

"어, 그럴래?"


그다음 날부터 세수를 안 하고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늦잠을 잤다. 일곱 시가 넘어 고등학생인 아들이 등교하려고 집을 나서는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깨곤 했다.


그리고 얼마뒤에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여덟 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 대충 아침을 차려주고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별일 없으면 글을 끄적거리다가 점심을 먹고 청소나 빨래 등의 살림을 약간 하고 또 조금 일을 하거나 글을 끄적거리다 보면 저녁시간이 됐다.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이 제각각이라 저녁을 보통 세 번 차려야 했다.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자기가 집에 있는데 왜 집이 더 지저분해지냐?"

남편이 말했다.

"어, 지금 애들 방학이라서 그래."


다리를 다쳐 활동에 제약이 있는 막내딸이 집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그려서 자르고 심심하면 간식을 먹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던져놨다. 자기 책상에 더 이상 어지를 공간이 없자 식탁 위, 안방 침대 주변까지 침범했다.


집안꼴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났다. 한숨은 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게으름의 늪으로 점점 더 빠져들고 있었지만 빠져나갈 기운이 없다. 오늘까지만... 이번 주말까지만... 방학이 끝날 때까지만... 그렇게 두 달 가까이 지나갔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뭔가를 하면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나는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럴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데도 시간이 잘 가는 걸 보니 알겠다.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내가 흘려보낸 지난 두 달은 휴가였다고 생각하자. 게으름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뭘 해야 할지 난 알고 있다.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집밖으로 나가면 된다.


갈 곳을 정하자. 어디가 좋을까? 도서관을 가자. 집에서 걸어 20분 거리인 구립도서관이 딱이다.


도서관에 가서 뭘 할까?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만 있을 뿐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다. 그동안 글쓰기 관련 책을 두어 권밖에 읽지 않았는데 이번에 집중적으로 읽어볼 계획이다.


막내딸의 개학 다음 날(8월 24일 목요일) 밤에 이런 계획을 세웠다.

평일(월~금/출근일 제외 주 4회) 아침에 막내딸 등교 시키고 도서관 가기

9시부터 12시까지, 갑작스러운 업무를 대비해서 노트북 들고 갈 것

12월 24일(4개월)까지 글쓰기 관련 책 30권 읽기

실패하면 뮤지컬 <레미제라블> 못 보게 될 거야!


계획이 흐지부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상 혹은 벌이 필요하다. 고민 끝에 상이면서 벌이 될 만한 걸 생각해 냈다. 올 연말이나 연초에 서울에서 공연할 것으로 예상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내가 계획한 4개월간 글쓰기 관련 책 30권을 읽지 못하면 나는 레미제라블 티켓을 사지 않을 것이다. 성공한다면 가장 좋은 자리의 티켓을 사야지.(피케팅 전쟁이 예상되지만 30권 읽기에 성공한다면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이 돼줄 것 같다)



8월 25일 금요일, 결심 첫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대충 집안을 정리하고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채웠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 계획을 말했다. 이렇게 말해 놓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지키게 되는 효과가 있다. 


마라톤 할 때 신던 러닝화를 꺼내 신었다. 막내딸의 학교 앞을 지나 발걸음 가볍게 걷고 있는데 저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막내딸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친했던 친구의 엄마다.


우리는 반갑게 서로의 안부와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방학 동안의 힘든 일들을 털어놓으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언니, 어디 가서 차 한잔 하실래요?"

아, 나도 간절히 그러고 싶다. 아이들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는 같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엄마들과의 수다로 푸는 게 가장 확실하다. 고민이 됐으나 웃으며 말했다.


"미안, 내가 오늘 도서관 가기로 결심한 첫날이야. 오늘은 꼭 가야 할 거 같아..."

원래의 나라면 거절하지 못하고 그러자고 했을 것이다. 오늘이 금요일이니 깔끔하게 오늘까지는 놀고, 월요일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거절하고 도서관으로 향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랜만에 만난 건데... 할 말 진짜 많은데... 내가 너무 야박하게 보이진 않았을까... 더 생각해 보니 월요일 아침 일찍 병원 예약이 있다. 오늘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면 내 계획이 또 며칠 더 미뤄지고 어쩌면 없던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음이 정리되자 커피 한잔 마시자는 걸 거절했을 뿐인데 굉장히 뿌듯하다.


원래 도착 예정시간에서 15분이나 늦게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렇게 수다를 오래 떨었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글쓰기 관련 책장 앞에서 망설여졌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마음 끌리는 대로 읽어보기로 한다. 어떤 책이든 나보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쓴 책이니까.


우선 제목이 딱딱해 보이지 않는 것부터 읽기로 했다. 김호연작가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골라 도서관에서 읽다가 대출해 와 주말 동안 다 읽었다.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는 전업작가 생활을 하며 그가 겪은 실패와 좌절, 그럼에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의 생존기였다. 그의 베스트셀러 소설 <불편한 편의점>보다 더 재밌게 읽었다.


월요일인 오늘은 구립도서관이 휴무일이라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를 갔다. 주민센터 업무시간에만 문을 연다. 책이 많지는 않지만 작고 아늑한 카페 느낌이라 앉아서 책을 읽기는 충분히 좋은 환경이다. 오늘은 이윤주작가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를 읽었다.


이제 곧 9월, 게으름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달릴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 동네 주민센터 내 북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