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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04. 2023

출장 가는 남편의 단 한 가지 부탁


"나 부탁이 있어."

일본으로 나흘간 출장 가는 남편이 나를 보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비행기를 무서워하는 남편은 비행기 타고 출장 가는 길이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 같았다.

"뭔데?"

"아침마다 물고기 밥 좀 주라."

혹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챙겨달라는 게 아이들도 아니고 시부모님도 아니고 고작! 물고기라니. 신나는 부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어서 알겠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가로 세로 30센티미터 정도의, 구피를 키우는 작은 어항이 하나 있었다. 남편이 얼마 전에 어항을 큰 걸로 바꾸고 싶다고 졸랐다. 나는 어항 크기는 충분하다며 반대했지만 계속되는 요청에 생일선물로 하나 사던가, 했다. 신이 난 남편은 우선 어항을 올릴 수 있는 튼튼한 철제 선반을 구매했다. 그리고 지난번 어항의 3~4배는 돼 보이는 커다란 유리어항이 배달 됐다. 그리고 어항 안에 넣을 자갈과 나뭇가지(?)가 배달 됐다. 그리고 수초와 여과기, 각종 막대기들과 약품이 배달 됐다. 구피 몇 마리 키우는데 뭐 그리 필요한 게 많은 건지 정말 끝이 없었다. 늘 마지막이란다.


남편은 아침마다, 혹은 조금 일찍 퇴근한 날이면 어항 앞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물멍을 때렸다. 그걸 보고 앉아 있으면 물에서 헤엄치는 기분이 들어 좋다고 했다. 그 기분이 이해되는 바는 아니나 크게 돈이 들지 않으니 굳이 말릴 이유가 없는 취미였다.


남편이 출장 간 다음 날 아침에 물고기 밥을 주기 위해 어항 위에 등을 켜고 먹이통을 집었다. 내가 먹이통을 집어드는 걸 눈치챈 건지 물고기들의 꼬리가 매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항 위로 뿌린 먹이를 향해 물고기들이 달려든다. 힘이 세고 빠른 큰 놈들은 위에서 받아먹고 작고 약한 놈들은 주로 아래로 가라앉은 먹이들을 찾아다닌다.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인다. 나도 남편처럼 의자를 놓고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들여다봤다. 구피는 원래 새끼를 낳으면 바로 잡아먹는다. 그래서 새끼를 분리해주기도 하는데 남편은 새끼를 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주 작은 새끼가 몇 마리 헤엄쳐 다니는 걸 보니 용케도 어미한테 안 잡아먹히고 살아남은 모양이다. 녀석이 대견해 보여 쓰다듬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먹이를 다 먹은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졌지만 여전히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분주하다. 아무리 헤엄쳐봤자 어항 속인걸 뭘 그리 애쓰나. 가끔 탈출을 시도하는 녀석들이 있다. 얼마 전에 어항 앞에 웬 멸치가 한 마리 놓여있었다. 멸치를 먹은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갸우뚱하다 깨달았다. 탈출을 시도했다가 말라죽은 구피의 사체란 걸.




"살아서 돌아온 걸 환영해."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막내딸과 나를 한 번씩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옷도 안 갈아입고 불이 꺼진 어항 앞으로 간다.

"이거 이렇게 계속 꺼져 있었어? 밥 안 줬어?"

"맨날 낮에 켰다가 밤에 끄고 그랬어. 밥도 아침마다 줬고. 걱정 마셔."

남편은 첫째와 둘째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 애들이 물고기한테 밀렸다...


남편이 유튜브를 보고 있다. 물고기 사업을 하는 유튜버가 알록달록 줄무늬가 예쁜 열대어를 소개하고 있다. 내가 슬쩍 보면서 물었다.

"예쁘다. 우리도 한 마리 살까?"

"한 마리에 얼만 줄 알아?"

"뭐, 갈치보다 비싸?"

"한 사오백정도."

"뭐? 한 마리에 몇백만 원짜리 물고기가 있다고?"

아, 물고기 키우는 취미도 돈이 많이 들 수 있구나!

"자기야, 난 구피가 좋아. 작고 귀여운 게 너무 사랑스럽네. 자기 없는 동안 나도 쟤네랑 정들었잖아."

휴, 큰일 날 뻔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일을 하다 고개를 들면 눈앞에 어항이 보인다. 나도 가끔씩 어항을 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생겼다. 아무리 헤엄쳐봤자 작은 어항 속이지만, 그것이 너희들이 살아가는 이유라면 응원할게.

"계속 헤엄쳐, 계속 헤엄쳐~"

내 말은 들은 물고기들도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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