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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pr 10. 2023

한강에서 맥주 마시다 괴물 된 사연


'삑삑삑삑'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나가보니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다. 어쩐지 번호키 누르는 속도가 잽싸더라. 실망감을 감추고 미소를 지었다.

"잘 다녀왔어?"

"네. 아빠는요?"

"아직, 삼십 분이면 온다더니 한 시간 넘게 안 오네."


그로부터 삼십 분이 더 지난 후 느리게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분명 남편이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얼른 일어나 문 앞으로 갔다. 그런데... 기다리던 맥주는 오지 않고 남편만 왔다.

"맥주 안 사 왔어?"

"바람 쐬러 나가자. 한강 가서 맥주 마시는 거 어때?"

하, 지금 내 인내심 테스트 하는 거냐.


금요일 저녁 아홉 시, 뱃살이 너무 나온 거 같아 저녁을 조금 덜 먹었더니 맥주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사러 나가기 귀찮아서 퇴근 전인 남편에게 연락해 사다 달라고 했다. 삼십 분이면 온다더니 한 시간 삼십 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오래 걸린다 말했으면 내가 나가서 사 왔지, 이렇게 늦게 먹고 자면 붓는데... 슬슬 짜증이 밀려올 때쯤 남편이 빈손으로 와서는 한강을 가자고 한다. 쌀쌀한 날씨에 맥주 한잔 마시러 한강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데이트 겸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나가자."



저 멀리 강물이 보이는 자리에 차를 대고 편의점에 갔다. 날씨가 쌀쌀함을 넘어 춥게 느껴졌다.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라면 끓이는 기계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애써 라면을 외면하고 캔맥주 하나와 오징어땅콩 과자, 두유를 샀다. 한강 편의점은 맥주 할인행사를 하지 않는다. 동네에서 사 올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차 안에서 전혀 내 취향이 아닌 남편의 선곡을 들으며 나는 맥주를, 남편은 두유를 마셨다. 음악 소리와 오징어 땅콩 과자 부서지는 소리만 들릴 뿐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눈앞에 한강변을 세 번째 왔다 갔다 달리고 있는 남자가 밤 열두 시가 다 된 시간에 왜 저렇게 열심히 달리는 건지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시커먼 강물 속에서 괴물(영화 '괴물' 속 그 괴물)이 튀어나와 남자를 뒤쫓아 달리기를 하는 상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때, 남편이 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고 볼을 쓰다듬다. 생각지 못한 스킨십에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편이 매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늙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 '예쁘다' 혹은 '사랑해'라고 속삭여야 맞을 것 같은 그런 목소리로 '늙었다'라니...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자기야, 그런 말은 속으로만 쫌! 그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아도 안다고~~~~!!"


맥주 한잔 마시겠다고 한강까지 와서 '늙었다'는 친절한 고백에 얼굴이 달아오른 금요일 밤 열두 시, 남편 옆자리아까 한강변을 달리던 괴물이 앉아있다. 남편은 이 괴물과 함께 매우 괴로운 주말을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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