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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Feb 07. 2024

엄마한테 졸업식에 안 와도 된다는 중학생 딸

"엄마, 졸업식 때 안 와도 돼."

"오지 말라고?"

"아니, 바쁘면 안 와도 된다고."

중학교 졸업식에 엄마한테 안 와도 된다는 딸의 말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안 가면 졸업식 끝나고 그냥 집으로 오려고?"

"나 졸업식 끝나고 친구들이랑 밥 먹고 영화 보기로 했어."

"친구들은 부모님 안 오신대?"

"다는 아니고, 못 오시는 친구가 있어."


어제 딸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엄마와 이모, 삼촌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축하해 줬고, 졸업식이 끝난 뒤 다 같이 짜장면을 먹으러 갔었다. 

'요새 졸업식은 그렇게 가족들이 모여 축하를 하는 날이 아닌 건가? 코로나가 세상을 변화시킨 3년 사이,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장을 찾아가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 돼버린 건가? 아무리 그래도 졸업식이 끝나고 부모와 함께 밥을 먹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첫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어제 졸업한 둘째가 중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학교를 출입할 수 없었다. 코로나는 우리 삶에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기에 졸업식 풍경도 예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기는 하나, 졸업식에 엄마가 참석하지 않는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이 너무 바빠 부득이하게 참석할 수 없는 경우라면 몰라도 나는 충분히 갈 수 있는데 말이다.


"딸이 졸업식 끝나고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안 와도 된다는데 어떻게 하지?"

아이의 졸업식에 가려고 회사에 휴가 신청을 해놓은 남편도 당황한 눈치였다.

"휴가를 취소해야 하나?"

"아니, 그냥 가자. 안 오는 부모보다 오는 부모가 더 많겠지. 가서 사진만 찍고 오면 되잖아."



졸업식장에 가보니 졸업식 풍경은 내가 졸업하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가 함께 오거나, 할머니, 형제들까지 오기도 했다. 아주 바쁜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에 참석하는 분위기였다. 

"안 왔으면 우리 딸 섭섭할 뻔했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졸업식에 참석한 다른 엄마들하고 비교돼서 아이가 부끄러워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화사한 봄 코트를 하나 사 입었는데, 날씨가 많이 쌀쌀해서 으슬으슬 떨고 서 있었다. 


교실에 잠깐 들렀다 나온다는 딸은 뭘 하는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운동장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는데 우리 부부만 덩그러니 서있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우리를 무시하나 싶었다. 한참 만에 나온 딸은 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야, 너 옷은 왜 갈아입었어? 엄마아빠랑 사진 안 찍어?"

"아니, 난 이따 애들이랑 영화 보러 갈 건데..."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아이와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아이의 옷가방을 받아 들고 헤어졌다. 



쓸쓸한 마음으로 남편과 둘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내가 애를 잘 못 키운 것 같아."

"그건 애를 너무 자유롭게 놔두고..."

"그만, 우리 그만 얘기하자."

계속 얘기하다가는 서로를 탓하며 싸울 것 같았다. 한참을 말없이 가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우리 뭐 먹을까?"

"맛있는 거 먹자. 한우 먹을래?"

우리는 평소에 잘 먹지 못하비싼 한우를 먹으러 갔다. 소주도 잔 했다.

"자기야, 딸내미 졸업시키느라 고생 많았어."

"자기도 고생 많았어." 

생각해 보니 아이의 졸업식에 축하받아야 할 사람은 아이만이 아니다. 아이를 날마다 먹이고, 입히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해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부모 역시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다. 아이랑 왔으면 아이 챙기느라 조금밖에 못 먹었을 한우를 질리도록 먹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에 서서 속상했던 마음은 어느새 누그러졌다.  


"우리가 애를 참 잘 키운 것 같아. 부모님 못 오시는 친구랑 같이 밥 먹느라고 우리한테 안 와도 된다고 한 거잖아."

"건강하고, 친구랑 사이좋고, 학교 잘 다니고 그러면 됐지, 더 바라면 욕심이지."

"오늘 딸내미 밥값 굳었으니까 용돈 좀 보내줄까?"

아이한테 용돈을 몇만 원 보냈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 고마워요. 사랑해요.

- 졸업 축하해. 건강하게 학교 잘 다녀줘서 고맙다.


남편과 나는 '딸내미 이만큼 키우느라고 고생했고, 축하한다'라고 몇 번이고 건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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