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꽤 수다스럽고 가벼운 남자였다. 나보다 네 살이나 많았지만 오빠라기보다는 철부지 동생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 많았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늙거나 아프지 않고 영원히 소년일 것 같았다. 코로나 시기가 지나는 동안 그와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는데, 그가 혈액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전화를 걸었다.
"아니, 평생 아프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암이 웬 말이야?"
"코로나 직전에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직원도 더 뽑고 사무실도 큰 데로 옮겼는데, 잘 나가던 제품의 원료 수급에 문제가 생기고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매출이 바닥을 쳤어. 곧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텼거든. 2년을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혈액암이라는 거야."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네요."
평소 유쾌했던 그답게 목소리가 씩씩해서 다행이었다.
그는 몇 차례 항암 치료를 받고 몸속에서 암이 사라져 건강을 되찾았다. 함께 일했던 회사 근처에서 지난주에 그를 만났다. 살이 많이 빠졌다기에 못 알아보면 어쩌나 했는데, 내 기억 속의 그와 똑같은 모습의 그가 약속장소에 앉아있었다.
"아, 뭐야? 아팠던 거 뻥이었어? 왜 더 젊어진 거예요?"
"그러는 자기는 방부제를 먹었나? 애 셋 엄마가 왜 늙지를 않아?"
"립서비스 여전한 걸 보니 괜찮은가 보네. 살아났어."
"세상에 다 잃으란 법은 없더라고. 항암 할 때 머리가 쑥쑥 빠져서 걱정했거든. 그런데 누가 그러는 거야. 그때 머리를 밀어버려야 나중에 머리가 많이 난다고. 그래서 밀었더니, 진짜 전보다 머리숱이 더 많아졌어. 하하."
"와, 기억해 둘게요. 꿀팁 고마워요. 하하."
그는 여전히 유쾌하고 수다스러우며, 웃음소리가 컸다.
"내가 사업한다고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 그런데 막상 암 걸리고 몸 아프니까 다 소용없더라. 건강이 최고야. 스트레스받지 말고, 건강검진 꼭 받아."
아파 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건강이 최고라고 말했다. 흔하게 듣는 말이지만 아팠던 사람한테 들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랜만에 만난 그와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내가 20대 후반, 소규모 패션회사 디자인실에 근무할 때였다. 출근시간은 정해져 있었지만 퇴근시간은 없었고, 한 번도 느긋하게 걸어 다닌 적이 없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와 싸움을 하던 시절이었다. 공장, 패턴실, 자재과 등 타 부서의 실수로 옷이 잘못 나와 판매율이 저조하다 해도, 결국 모든 책임은 디자이너의 몫이었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쌈닭이 돼야만 했다.
그 정신없던 와중에 내 밑으로 디자이너 한 명이 입사했다. 패션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부를 대학원까지 마치고 온 남자,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 신입, 회사 임원의 지인.
이중에 가장 최악인 건 그가 임원의 지인이라는 것이었다. 회사 생활이 힘든 만큼 디자이너들(당시 친했던 3~4명의 멤버)은 서로를 많이 의지했다. 우리는 퇴근시간이 없었기에 친구를 만나거나 별다른 취미생활을 즐기지 못했다. 우리에겐 서로가 친구였고, 늦은 밤 회사 앞에서 마시는 술 한잔이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그의 입사로 인해 우리의 소소한 취미생활 마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나이 많고, 낙하산이기까지 한 남자에게 여성복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치는 건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나는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옆에서 지켜보라고 했다. 그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그가 디자인실에 있는 게 불편해서 원단시장으로 많이 내보냈다.
"이것과 비슷한 원단을 찾아오세요."
그는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었지만, 굉장히 성실한 편이었다. 한 가지 원단 샘플을 찾아오라고 하면, 짊어지고 간 배낭 한가득 샘플 조각을 쏟아내곤 했다.
"저기요. 이렇게 아무거나 말고요. 비슷한 걸 찾아오라고요."
그는 정녕 모르는 눈치였다. 어떤 게 비슷한 건지 조차.
당시 내게 친절, 다정함 같은 건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오늘 꼭 완성돼야 할 옷들과 매장에 걸려야 할 옷들로 꽉 차 있었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건 다른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할 일이 많이 주어지지 않은 그는 정신없는 우리들을 관찰하며 조금씩 도움을 주기 시작했고,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찾아냈다. 그는 그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디자인실에 살며시 스며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도 우리들의 술자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그는 작은 화제로도 소설 한 편을 만들어 내는 대단한 입담의 소유자였다. 그가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임원의 지인이지만 우리가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임원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함께 지방 출장, 해외 출장을 다니고, 함께 2002년 월드컵 응원을 했다. 그의 부모님이 사시는 전원주택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던 추억도 있다. 그는 살얼음판 같았던 디자인실에 따뜻한 난로 같은 존재였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멤버들과 가끔 연락을 하고, 아주 가끔 만난다. 얼마 전 혈액암에 걸렸던 그 외에 다른 이들도 최근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는 가슴에 혹이 생겨 시술을 받았고, 누구는 당뇨약을 먹고 있고, 누구는 남편이 암에 걸렸다고 한다. 건강하고 아름답던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이 아프고 늙어간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난 아직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다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종종 느끼곤 한다.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 건강을 잃으니 다 소용없더라는 말을 항상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