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번 생일에 자전거 사줘. 나 두 발 자전거 타고 싶어."
막내딸이 자신의 열 번째 생일에 자전거를 사달라고 말했다. 아이가 매년 생일 선물을 사달라고 챙길 때쯤이면, 나는 자연스레 그날이 생각난다.
나는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막내딸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두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 2014년 5월 1일이었다. 수술 한 달 전, 병원에서는 수술 전에 진통이 올 수도 있으니 최대한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나는 거의 하루종일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지내고 있었다.
편안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낮에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탄 배가 뒤집혔다는 뉴스가 나왔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하루종일 티브이를 끄지 못하고 계속 구조 소식을 기다렸다. 수술 전날까지 열흘이 넘게 티브이 앞에서 울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수술 전날이 되어 수술을 받을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 초음파를 살폈다. 그러더니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아이 심장 둘레에 평균치보다 두꺼운 물이 고여 있어요. 지난주까지는 괜찮았는데 이상하네요. 출산과 동시에 물이 빠지기도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급하게 짐을 챙겨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원래 아이를 낳으려던 5월 1일 보다 하루 늦은 5월 2일에 아이를 낳았다. 다행히 아이 심장에 고여있던 물은 출산과 동시에 거의 빠졌다고 했다. 놀랐던 가슴을 겨우 쓸어내렸다.
나는 아이 심장에 물이 고여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차가운 바닷속에서 아이를 찾지 못하고 있는 분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견디고 있는 걸까, 아이를 품에 안고서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일이면 소꿉놀이 세트를 고르던 아이가 블록을 고르고, 아이돌 앨범을 고르고, 두 발 자전거를 직접 고를 만큼 자라며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내 시간은 행복했다.
그러나 매년 막내딸의 생일이 다가오면, 아픈 기억 속에 멈춰있을 세월호 유가족들을 생각한다. 그분들께는 4월 16일이 가장 아픈 날이겠지만,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아이의 생일 역시 매년 고통스러운 날일 것 같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생일>을 보면, 세월호 사고로 죽은 아이 수호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함께 생일모임을 하기 위해 모이는 장면이 나온다. 모인 사람들은 먹거리를 준비하며 아이에 대해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울고, 웃는다.
영화 속 생일모임의 주인공인 '수호'라는 캐릭터는 실제 희생자들 이야기에서 나온 인물이고, 영화 속 사건들 중에는 실제 유가족이 겪은 일들이 포함되어 있다. 수호 방은 참사가 발생한 그날 이후 그대로 멈춘 상태다(관련 기사: 10년째 그대로인 방, 매일 4시 16분의 노래 [세월지도: 당신 곁의 노란리본] https://omn.kr/28cda ).
<생일>은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자식 혹은 형제를 떠나보내고 남은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픔을 딛고 삶을 살아간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사고를 이야기할 때는, 희생자뿐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는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일이다.
4월 16일 오후에 막내딸과 공원을 갔더니 노란 리본이 우리를 반겨준다. 아이가 태어날 즈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이야기해 줬다.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그런데 왜 노란 리본을 달아?"
"노란 리본은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는 의미가 있어."
오늘은 아이들의 영혼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쉬고 있기를, 저 노란 리본이 남은 가족들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지켜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 오마이뉴스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