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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27. 2024

글 써서 번 돈으로 다녀온 정동진 가족여행

지난달에 남편이 동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크루즈 여행을 소개한 영상이었다. 하나의 건물처럼 커다란 배 안에 수영장, 영화관, 식당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우리도 크루즈 여행 가자. 20주년 결혼기념일에."

"20주년 결혼기념일이 다음 달인데?"

"앗, 내년 아니었나?"

"올해야. 우리가 벌써 20년이나 같이 살았다고!"


19번의 결혼기념일에 우리는 짧은 여행을 가거나 조금 비싼 식사를 했다. 20주년에는 크루즈여행 혹은 유럽여행을 갈 정도의 여유는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첫째가 얼마 전에 수능을 치른 올해, 우리의 통장은 몇 달째 마이너스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쏠게. 크루즈 여행!"

"자기가? 나 몰래 모아둔 돈이 있었던 거야?"

"응, 있어. 오마이뉴스에서 원고료 받은 거."

"그게 얼마나 된다고."


내가 자기 몰래 비상금을 모아놨길 기대했던 남편이 실망한 눈치다. 몇 해 전까지는 진짜 남편 몰래 비상금을 모으기도 했었지만, 아이들이 크면서는 조금 모았나 싶으면 꼭 돈 나갈 일이 생기곤 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비상금은 1년 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받은 원고료, 70만 원 정도가 전부인데 이 돈으로 크루즈 여행은 어림도 없지만, 크루즈 느낌 나는 여행은 갈 수 있다.


작년 가을에 딸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정동진 바닷가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바닷가 끝 언덕에 커다란 배 두 척이 놓여있는 걸 봤다. 그곳은 썬크루즈 호텔이었는데, 다음에 꼭 가보자고 딸들과 약속을 했었다. 남편이 크루즈 여행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가진 돈으로 그 호텔을 예약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runch.co.kr/@c1ac4f95da42467/473



11월 21일 목요일 아침, 정동진을 향해 출발했다. 중간에 양평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그 뒤로 쉬지 않고 달려 정동진에 도착했다. 체크인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았는데도 체크인이 가능해서 방으로 들어가 잠시 쉬다 밖으로 나갔다. 바닷가를 산책하고, 호텔 안 공원을 둘러보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바닷가 근처 식당에서 회와 대게가 나오는 코스를 주문했다. 너무 맛있어서 정신없이 먹었다. 호텔비용과 저녁식사까지, 내가 오마이뉴스 원고료 받은 돈으로 결제했다. 글 쓴 보람이 있었다.



배 터지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호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 고소한 빵냄새가 나자 모두들 거기로 몰려갔다. 빵을 하나씩 골라서 꼭대기층 전망대 카페로 갔다. 바닥이 천천히 돌아가게 돼 있는데, 너무 천천히 돌아서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카페에서 빵과 차를 마시고 방으로 왔는데, 아이들이 치킨을 시켜달라고 한다. 정말 배가 터질 것 같았는데, 치킨이 또 들어간다...


비수기라 그런지 방값이 비싸지 않아서 4인실을 2개 예약했다. 방 2개를 어떻게 나눌까 고민했다. 어른방과 아이들 방? 아니면 남자방과 여자방? 아이들이 어른방과 아이들 방으로 나누자고 했다. 그렇게 되면 딸 둘이 한 침대에서 자야 했다. 막내한테 우리 방에 와서 자라고, 그러면 침대를 혼자 쓸 수 있다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둘째가 가라고 하니까 자기가 심부름시키는 거 다 하겠다면서 거기서 자게 해달라고 한다. 아이들이 부모보다 서로를 더 의지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일출을 보려고 일찍 일어났다. 침대에 누워 일출을 기다렸다. 원래 일출시간이 7시 10분이었으나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다가 15분쯤 지나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평소 이것저것 바라는 게 참 많은 나지만, 그 순간에는 그저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는 것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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